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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땐 그 두께에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파트 10까지 구성되어 있어 내용도 많은 데다가 한편 한편이 아주 짧긴 하지만 일단 그 두께를 보면 기가 질리는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 두께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첫 장부터 읽다가 내용도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어이없는 내용을 진지한 투로 전개해나갈 때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가 해머튼의 출생년도를 보고 나서야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늘어놓느라 힘을 빼놓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글도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의 출생년도는 1834년이다. 그러니 거의 160년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보니까 자신은 대단히 혁명적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처럼 고루하고 진부하게 - 다르게 말하면, 감정의 개입없이 착실하게 - 지금은 거의 상식적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저자에 대해 측은함이 들면서 내가 읽다 막힐 때 책을 집어던진 것을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그땐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우와~ 대단하네!! 그것까지 알고 있었어? 그러고나니깐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비교해서 이해하게 되고 소위 사교계라는 무대가 있는 그의 나라인 영국의 세계와 그런 것이 없는 한국의 평범한 나의 세계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 딱딱하게 너무 지적으로 적은 그의 문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메모를 놓해 그의 사상을 남겨놓기까지에 이르렀다. 물론 내 기억을 못 믿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그의 시대에서는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까지 알 수 있었기에 내심 20세기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의 책은 한 마디로 지적 노동자에게 사색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지적 생활을 쉽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육체적 기반, 정신적 기반, 교육, 시간, 금전, 결혼, 교제와 고독, 지적 즐거움, 직업과 천직, 환경, 총 10파트에 아우르는 것을 충고해주는데 그 표현이 독특하다. 편지글이니깐... 처음엔 이것도 엄청 열받은 것 중의 하나였다. 도통 누구에게 편지를 하는지 몰랐으니깐. 그런데 소제목에 씌인 대상에게 편지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자마자 처음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41페이지에 나오는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에게..]라고 쓰인 부분에서는 '당신'은 바로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리키는 줄 알고 나도 그건 안다고~~~를 연발하며 책을 집어던졌더랬다. 얼마나 열받았을지는 상상도 못할거다. 장장 2주를 이 책을 가지고 씨름을 했으니깐. 뭐, 중간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도 했지만.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점차적으로 운동을 해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연구를 계속하라고 하기도 하고, 결혼을 할 때는 자신과 지적인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고르는 것이 좋다는 것, 돈이 없으면 푼돈을 벌기 위해 귀중한 연구를 할 시간이 빼앗긴다는 것을 제시해주면서 풍족한 사람들이 그런 연구자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등 다방면에 걸쳐서 조심스레 충고해준다. 이때 이 사람의 문체도 대단하다.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대충 읽어가면 그게 무슨 의도로 전달한 것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서 말이다. 가장 독특한 점은 그 시대에서 활동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러셀이나 스콧, 괴테, 셸리, 워즈워스, 바이런 같은 문학가나 앵그르, 터너 같은 화가의 예화를 거침없이 들어주면서 우리에게 충고를 해준다는 점인데 내가 그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생활환경을 모조리 아는 동시대의 사람이었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니였기에 나는 별천지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뭐, 읽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시간을 두고 한 파트씩 읽어나가면 나도 소위 말하는 지적 노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즉, 그 시대가 바라보는 여성의 지적인 면에 대해서다. 그가 말하길, 아니 그 시대가 말하길 여성은 혼자서는 스스로 지적인 작업에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정말 읽으면서 어이없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 시대에서는 그 말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는 여성들이 많았겠지만 너무 차별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남성들은 라틴어를 배우고, 여성들은 프랑스어를 배우도록 하는 등 차별적인 교육을 받게 했으면서 여성에게 지적인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무시해버리긴... 더군다나 여성 중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그런 여성을 이끌어주었던 남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선 완전 돌아버렸다. 그야 당근 지적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연구를 할 수 있었겠지만 워낙 받을 수 있었던 교육의 한계로 주변에 있던 사람이 남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상황이 달라서 여성은 지적인 활동을 하게 하고 남성에겐 집안일을 하게끔 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세상의 위인은 다 여성이지 않았을까. 저자도 말하길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는 아예 없었다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마는 억울한 건 억울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나에게 어떤 책이든 능히 읽을 수 있는 인내심과 지적 호기심이 있었다는 것과, 세상에는 내가 읽어봐야할 고전이 많이 쌓였다는 것과,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작가와 화가가 많이 있다는 것과, 160년 전의 영국에서도 여성을 하대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단 다시금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예화로 들려준 많은 작가와 화가를 모아보고 그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가 들어주었던 예화 중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예를 들어, 바이런이 부도덕하다는 것이나 셸리가 신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 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