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를 도와 집 안 청소를 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막내인 엘리사를 돌보기 시작했다. 틈이 나도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도서관에서 빌린 델레다, 피란델로, 체호프,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었다. 이따금 아버지의 구둣방에서 일하고 있을 릴라를 찾아가 특히마음에 들었던 인물들이나 너무 좋아서 통째로 외워버린 문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생각을 떨쳐버렸다. 말해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았다. - P154
이내 소박한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1등은 라파엘라 체룰로, 2등은 페르난도 체룰로, 3등은 눈치아 체룰로, 4등은 리노 체룰로, 5등은 엘레나 그레코, 그렇다. 5등은 나였다.
(도서관 대출상!ㅋㅋㅋㅋㅋㅋㅋ 친구인 릴라가 책을 좋아해 가족들 이름으로 빌림) - P156
"말도 안 되는 소리. 넌 공부를 계속해야 해." 나는 놀라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학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중학교 다음에어떤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인문계 고등학교나 대학 같은 단어는99내게 와닿지 않았다. 소설에서나 읽을 수 있는 그런 단어였다. "안 돼요. 부모님이 보내주지 않으실 거예요." "작문선생님이 라틴어 점수를 어떻게 주셨니?" "9점이오." 정말?" "네." "그러면 내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구나." - P158
릴라는 못된 아이였다. 나는 마음속 깊은 은밀한 곳에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다. 릴라는 말로 상처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살인도 서슴지 않을 아이였다. 그런데 이제 이 정도의 잠재력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릴라가 지금보다더 악한 모습을 드러내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85
마르첼로는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뇌의 기능마저 상실한 사람처럼 릴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음악이 끝나도 마찬가지였다. 엔초가 내가 있는 구석으로 릴라를 이끌자 눈 깜짝할 사이에 스테파노와 마르첼로가 동시에 릴라를 향해 움직였지만 파스콸레가 한 발짝 빨랐다. 릴라는 동의한다는 의미로 사랑스럽게 폴짝 뛰어보이고는 행복하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다양한 연령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강인함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네 남성이 열네 살짜리 작은 소녀를향해 동시에 다가간 것이다. - P193
릴라는 파스콸레에게서 얻은 빈약한 정보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으며 체계화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느낄 수 있었던 추상적인 긴장감에 구체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익숙한 얼굴을 접합시켰다. 파시즘, 나치즘, 전쟁, 연합군, 왕정과 공화정같은 개념들을 동네의 길, 건물, 사람들, 돈 아킬레와 검은 가방으로상징되는 암시장, 공산당 알프레도 펠루소, 마피아 출신의 솔라라네증조부, 마르첼로와 미켈레 형제보다도 뼛속까지 파시스트인 그들의 아버지 실비오 솔라라, 그녀의 아버지인 구두수선공 페르난도 그리고 내 아버지와 결부시켰다. 어두운 죄악으로 골수까지 오염된 이들은 모두 그녀의 눈에 냉혹한 범죄자나 아니면 고작 빵 부스러기때문에 범죄자에게 협조한 공범자들로 비춰졌다. 릴라와 파스콸레는 나를 그 끔찍한 세계로 이끌고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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