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틀리 씨와 에마 사이의 차이는 18세기동안 토리당과 휘그당을 구분했던 바로 그 차이이다. 하지만 오스틴이상상하듯이, 이런 정치적 차이는 가정의 틀 내부에 봉쇄되고 구혼 절차의 결과에 종속되면서 19세기 자유주의적 입장과 보수주의적 입장사이의 차이가 된다. 더 이상 성적 계약은 계급갈등에 어울리는 용어들을 구성하기보다는 오직 한 계급 문해력이 있는 계급 —— 내부에존재하는 상반된 견해들을 식별해 낸다. 게다가 신사계급과 귀족계급의 차이를 흐리는 경향이 있는 리처드슨과는 대조적으로, 오스틴은 시골의 지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을 가정적 규범을 고수하는 집단으로 재현한다. - P282
존슨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사전』(Dictionary)을 편찬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은 것은 영어가 너무도 급격하게 변해서 의미를 어느 정도 표준화하지 않으면 당대의 글을 다음 세대는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법을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위험을 끌어들였다.
존슨이 시인하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한 언어의 힘과 수명은 새로운 어법을 포용할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다. 언어는 이 새로운 어법에서필연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 P291
웅변술에서 진정으로 뛰어난 기량은 평이한 문체를 희생시키고 웅장한 문체를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주제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세 가지 문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이런 구분을 의도했다.
하지만 워드의 논문과 같은 수사학 논문들이 — 이런 논문들은 18세기 후반 여성용 품행지침서와 함께 그 수가급격히 늘어났다 ㅡ키케로식 범주들을 차용할 때, "암암리에 평이한문체의 수사적 역할을 불신할 정도로 비유와 비유적 용법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라틴 수사학을 변형시켰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도, 하월의 분석은 어떻게 웅변술의 문체가 암시적으로 라틴 텍스트와 가까운 정도에 따라 글쓰기에 순위를 매겼는지 보여 준다. 다시 말해, 18세기 수사학 이론이 키케로의 웅변가』(Orator)에서 수사적 원칙을 끌어올 때, 수사학을 문어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전 수사학의원칙과 상충하는 정치적 위계질서를 유지했다. - P297
존 워드(John Ward)에 따르면
저급한 문체는 증거와 정보를 제시하는 데 가장적합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웅변가는 가장 소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윤색을 하거나 장식을 덧붙이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기 때문이다.
중급 문체는 즐거움과 오락을 주는 데 가장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화려하고 벗진 비유적 표현들과 함께, 매끄럽게 잘 넘어가는 구두점과 조화로운단수 복수의 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을 지배하고 열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숭고함이 꼭 필요하다. - P298
이 소설은(제인 오스틴ㅡ에마) 여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알 때까지 반복적으로 성적 관계를 오독하게 하는 흥미로울 만큼 퇴보적인 과정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자아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이에 따라서 나이틀리 씨는 에마에게 두 개의 정신이 있음을알아본다.
하나는 허구 만들기를 자극하는 허영심 강한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이 왜곡될 때 그것을 이해하는 "진지한 정신"이다. "나는 전자가 당신을 잘못 이끈다면 후자가 당신에게 그 점을 말해 준다고 확신하오"라고 나이틀리는 설명한다(225),
허구 만들기와 맺는 이런 변증법적 관계에서 자아를 규제하는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목소리는 소설이 끝날 무렵에는 소설가의목소리와 사실상 구별되지 않는다. - P303
오스틴은 말이란 자아에서 직접 연원하기 때문에 글이 말을 모방해야 한다고 제시하지만, 소설 자체는 완전히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욕망을 언어에 선행하는 자이에 위치시키기 위해, 오스틴은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자아의 내면 영역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욕망은말로 표현되기 이전에 존재하려면 개인의 내면에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 즉, 욕망은 글로 씌어져야 한다. - P306
에마가 예의 바름의 표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타인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해 비판적 시선을 던질 때이다. - P308
이들이 언어를 풍요롭게 쓰면 쓸수록 이들의 감정은 덜 은폐되고 잘못 해석되는 빈도도 줄어든다. 이는 자아의 진정한 본질이 더 잘 드러난다는 말이다. - P311
해리엇 스미스와 베이츠 양이 오거스타 엘턴보다 더 친절하고 온화한 자아를 드러내긴 하지만, 그렇지만 베이츠 양의 장황한 수다가 주는 순진하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베이츠 양은 완전히 표면에드러나 있고 그녀의 의미는 너무도 쉽고 분명하게 해독된다. 베이츠양이 어떤 해석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떤 판본이든 『에마를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쉽게 확인된다.
베이츠 양의 말로 매끈하게 채워진 페이지는 건너뛰면서 빨리 훑어볼 수 있는 페이지로 확인된다. 기표에 대한 기의의 상대적 가치는 제인 페어팩스의 경우에는 정확히 그 반대이다. 제인 페어팩스의 자기봉쇄는 정교한 읽기 전략을요구한다. - P311
따라서 우리는 오스틴이 새뮤얼 존슨보다는 제러미 벤담과 같은부류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P313
이 장에서 나는 오스틴에게 글쓰기는 그 자체로 권력의 한 형식이었다는 것, 바로 이 점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런데이 권력은 주체의 물질적 몸과 가정을 구성하는 사물들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소설은 19세기 영국의 기호적 조직을 수립하는 데 일조하면서 벤담이 이론화한 조건들, 즉 대개 글로 씌어진 세계이자, 말과 사물의 차이마저 결국 담론의 기능이었던 세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 P314
앞선 계급을 대체하고자 하는 모든 새로운 계급은 단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계급의 이해를 전체 사회구성원의 공통의 이해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계급은 자기 계급의 사상에 보편타당한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이상적 형식을 취한다.< 칼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 P323
폭력으로 폭력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은 위대한 진리이다. 한동안 폭력을 없앨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겼다고 우쭐거리는 사이폭력이 일곱 명의 악마를 데리고 예전보다 더 나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라. -< 엘리자베스 개스켈, 메리 바턴> - P323
리처드슨이 가정을 개인의 권리가 실현되는 장소로 규정하고 있다면, 오스틴은 개인 속에 자기규율의 기제를 써넣는다. 예의에 대한 오스틴의 생각은 여기에 달려 있다. 에마는 자기통제에 기초한 표본이라는 더 우월한 힘을 얻기 위해 파멜라가 타인을 변화시켰던힘을 거부한다. - P329
품행지침서와나란히 가정소설은 자아의 토대가 특정 사회적 정체성에 선행하여 존재한다고 설정하는 여성 주체성 형식을 표현했다. 가정소설은 주체성의 뿌리를 성적 욕망과 그 욕망을 사회화된 목표 쪽으로 유도할 수 있는 힘에서 찾았다. 가정소설은 사회 집단의 복리(福利)가 다른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을 규제하는 데 달려 있도록 만들었다. 19세기의 특성을 보여 주는 다른 글쓰기 형식과 함께 가정소설은 이런 자아생산의환상을 산업화된 사회제도에 적합한 남성과 여성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절차로 변형시켰다. - P330
나는 왜소설가들이 광기의 여자가 그 한가운데 놓여 있는 폭력과 환영과 혼란의 이야기에 창작 에너지를 쏟아붓게 되었는가 하는 점뿐 아니라, 이런 소설로의 이행이 왜 가족을 감옥과 흡사한 공간으로 변형시키고 제한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도 설명해 보고 싶다. - P331
이 장(章)은 왜 미친 여자들이 갑자기 1840년대 후반의 위대한 가정소설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브론테, 개스켈, 디킨스, 새커리의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듯이, 이런 새로운 빅토리아 소설의생산은 텍스트에 악마적 여성들을 불러들인 후 그들을 처벌하고 추방하는 것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이 작가들이 이런 악마적 여성들을 보여 주는 방식은 이들로부터 모든 사회적 정체성을 벗겨 내는 것이었다. 이 작가들은 이런 정체성의 상실을 젠더 구별의 상실로 표현했다. 니나 아우어바흐(Nina Auerbach)의 『여성과 악마』(The Womanand the Demon), 길버트와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유명한저작들은 악마적 여성인물의 문학적 표현방식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 소설들에서는 이런 악마적 여성의 선례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악마적 인물이 지닌 힘을 인정했다. - P331
매춘이 허구에서 사용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 보면 우리는 창녀의 비유가 우리가 검토하는 괴물여성의 배면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로서 디킨스가 돈과 사랑 ㅡ빅토리아 세계를 구성하는 두 반쪽 ㅡ 의 관계를 원숙하게 다루기 이전에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설에 거의 의무적으로 등장하는 창녀가 수행하는 수사적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예라할 수 있다. 디킨스가 선량한 마음씨의 창녀 낸시를 그리는 방식은 과거의 소재에서 빅토리아 시대 특유의 논리가 만들어지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 P366
1840년대 후반에 이르러 가정소설이 극적으로재등장한 것은 그것이 수행해야 할 고유한 역할이 있음을 말해 준다. 가정소설들은 무질서를 가족 안으로 봉쇄시켰을 뿐 아니라 무질서에여성적 형식을 부여했다. 다시 말해, 서틀워스가 글을 쓴 1830년대와메이휴가 글을 쓴 1860년대 사이에 등장한 소설들은 결사를 여성성이결여된 여성으로 바꾸면서 서로 경쟁하는 사회구성체들 사이의 갈등을 더 멀리 추방시켰다.
괴물여성들이 모두 중산계급 출신이 아니라는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P368
나는 두 자매가 쓴 소설의 역사적 중요성과 우리가 이 소설을 역사화하는 데 겪는어려움 사이에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다른 어떤 소설가보다 보편적 주체성의 형태와 더 연되어 있다.
만일 오늘날 브론테 자매의 글쓰기가 역사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면, 그것은 이 두 자매 소설가가 소설을 역사에 구속된 글쓰기에서 구별해 내는 비유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들은 모든 형태의 정치적 지식을 심리적 언어로 바꾸었다. - P375
브론테 자매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 작품의 심미적 과정을 확장시켜 모든 역사적 소재를 욕망의 비유에 새겨 넣도록유혹하고 있다. - P376
정신분석학적성향의 비평들은 이 동어반복적 논리를 뒤집어 브론테 자매가 결국 사랑이라는 전통적 형식을 따름으로써 진정한 욕망을 추방하거나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브론테 자매의 소설은 결과적으로 승화와억압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 P377
브론테 자매의 전기적 증거를 살펴보면, 이들이 글쓰기를 억압적 기제로 생각했다. 는 가정을 확인해 줄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전기적 증거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개인의 만족을 생각하고 있었고, 당시 다른 여성들이 아내나 어머니가 될 준비를 했던 것처럼 소설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브론테 비평이 기대고 있는 근본 전제, 즉 글쓰기와 욕망은 존재론적으로 다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된다는 특이하게도 완고한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 P382
브론테 자매는 오스틴이 드러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민담에서 초자연적 비유를 빌려 오고 로맨스에서 열정의 비유를 가져온다. 이들은 이런 소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의 진정한 감정적 힘을 표현하도록 했다. 이들이 특정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욕망의 형태를문화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이런 욕망 형태들이 자아의 본성의 새로운 토대를, 새로운 인간 본성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살럿의 오스틴 비판은 이런 형태의 성을 소설미학의 기초로 정립하는 유명한 문장으로 끝난다. "제인 오스틴은 완벽하고 가장 분별력 있는(sensible) 숙녀였지만 매우 불완전하며 다소 감수성 없51는(insensible) (그러나 무감각한 senseless 것은 아닌) 여성이었다. - P386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대상을 제대로 찾아 정확히 전달되는 순간 곧바로 결혼한다. 하지만 브론테 자매는 여주인공들에게 소유할 수 없는 대상 —— 히스클리프와 로체스터을 향한 욕망을 부여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 사이의 일치를 무너뜨린다. 브론테의 여주인공들이 욕망했던 남성들은 역사적으로 시대에뒤떨어진 인물들이다.
이렇게 전통적 소설의 (행복한 결말을 좌절시키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욕망을 표현할 기호적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 준다. - P387
오스틴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찾으면 이야기는끝난다. 하지만 브론테 소설에서 인물이 원하는 것을 찾게 되면 이야기는 지하로숨는다. 이들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사회가 결혼을 금지하는 남자를 욕망하는데, 여기서사회적 관습은 개인의 욕망과 본질적으로 대립한다는 관념이 생겨난다. - P388
제인은 전통적인 신부의 모습을 이렇게 왜곡함으로써 욕망의 사회적 형식과 개인적 내용 사이에 불길한 간극을 만들어 낸다. 결혼식에 대한 이런 상징적 수행들이 모여 관습적 의미에서 환상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재현 형식을 구성한다. 이런 상징적 실행들은과거를 후일 프로이트가 순전히 심리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낮의잔여물 (day-residue material)이라 부른 것과 흡사하게 만든다. - P390
미친 여성이 드러나면서 여성의 욕망을 읽어 낼 모든 가능성들이 글쓰기의 세계 안에서 펼쳐진다. 우리는 성관계를 다시는 액면 그대로 바라볼 수 없다. 이제 성관계는 억압된 개인사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 - P392
브론테 자매는 사회관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면서 개인을 특별한 지식의 영역으로 재구성한다. 그런데 이 지식의 영역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이거나 계보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의 운명이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여성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 버사 메이슨(Bertha Mason)의 발견이 로체스터의 무뚝뚝한 성격을 설명해 주는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캐서린 1세의 발견이 히스클리프의 잔혹한 성격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줄 때, 여성 주체성의 가능성과 그것이 지닌 특권적 힘은 무한히 커지는 것 같다.
여성에게 이런 추동력을 넘겨주는과정에서 소설이 일정한 역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것은 중요하다. 워더링 하이츠와『제인 에어의 마지막 대목에서 일어나는 사회관계의 재배치를 이해하려면 더 이상 역사로 간주되지 않는 역사, 다른 질서의 역사가 필요하다. 이 다른 역사는 여성이 말하는이야기이다. 그것은 성의 역사이다. - P395
브론테가 표현하듯, 욕망은 그 자체로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 P397
한때 가정소설은 파멜라가 그랬던 것처럼 에로틱한 욕망의 얼룩을 지워 버림으로써 정숙함에 도달하고자 갈망했다. 하지만 브론테 자매와 더불어 소설의 역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손에서가정소설은 욕망을 사회화하려는 격렬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욕망의 기원과 변천이 인간의 성장 가능성뿐 아니라 진정한 정체성을 구성한다. - P398
나는 개인적 욕망을 위한 브론테 자매의 미학적 선언이 전통적 비평가의 수중에서 얼마나 급진적으로 보편화되었는지 말하고 싶다. 또1895년에 이르면 성은 전통적 도덕의 저항세력이 아니라 그 수단이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성이 이렇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왜냐하면 브론테 자매는 산업화되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범주들을 반박하면서 성적 욕망을 정치적 범주들과 구분하고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것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 P399
「광부의 교리문답」("Miner‘s Catechism")은 어떻게 교리문답이 정치적경쟁의 수단으로 쓰였는지 보여 준다.
문1 :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답: 피터 가난입니다. 문2: 누가 그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답: 세례 받을 때 대부와 대모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세례에서 저는 검은 석탄구덩이의 일원, 노예제의 자손, 햇빛 하나 들지 않는 탄광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문3 : 그러면 대부와 대모는 네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 답: 대부와 대모는 제 이름을 길고 세 가지를 약속하고 선언했습니다. 첫째, 저는 제 주인의 의지에 반대하는 행동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둘째, 저는 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제의 이익을 위해 말해지고 행해졌다고 믿어야 한다. 셋째, 저는 매사에 저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순종해야 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해야 하고, 제 인생의 하루하루를 가난과 결핍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세 가지입니다. - P403
한 개인이 자기 ‘바깥에 있는 것‘을 읽을 때, 그/그녀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면서 해방적이거나 치유적인 혜택을 얻는 것 같다. 이는 제인이 붉은 방에서 겪는경험에도 적용된다. 이 경험은 제인이 숙모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이후에 학교로 보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소통은 자아와 타자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자기대면(self-confrontation)이다. - P409
문화 속에 존재하는 이런 공간은 변화를 허용한다. 그 공간은 오래된지식이 스스로 밀폐된 텍스트로 뚫고 들어가 새로운 지식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중산계급 문화에서 그런 공간을 상징적으로 감독하는 인물은 여성이다. 가정용품을 감독하는 사람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어떤 물건이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사람 역시 여성일 것이다. 골동품은 먼지를 털어 낸 다음 가정으로 돌아올 때 그 가치를 획득한다. 가정에서 골동품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제의적가치" (cult value)라고 부르는 것을 일정 부분 소지하고 있다. - P421
브론테는 공식적인 삶의 의식들(ceremonies) 사이의 틈새에 관심이 있고, 여가시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여성의 정신활동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 - P425
지금 현재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로 돌아가 수세대 동안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전해 주는 걸 듣는 건 즐거울 거예요. 이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은 이제 더 이상 무덤이 아니라 정원이나 들판으로 변해 있을 거예요. (113)
샬럿 브론테ㅡ셜리 - P429
당신 안에 있는 무언가와 잘 어울려요. 이 구절은 당신의 본성을 일깨우고, 당신의 마음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솜씨 있는 장인처럼 당신의 심금을 울릴 거예요. (…) 영광스러운 윌리엄[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가와 연주하도록 놔두세요. 당신은 그가 어떻게 그 화음으로부터 영국적 힘과 선율을 뽑아내는지 보게 될 거예요. (114)
샬럿 브론테ㅡ셜리 - P431
문자화된 언어가 발화될 때는 모든발화 행위에 앞서 존재하고, 그래서 자아 내부의 전(前)언어적 근원에서 생기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게 된다는 점이다. 근대적 주체성의 한 형태로 되살아난 셰익스피어는 독자의 내면에 이와동일한 주체성을 재생산하는 수단이 된다.
캐럴라인은 『코리올라누스 같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당신을 각성시키는 것이고", "당신에게새로운 감각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삶을, 당신의 미덕뿐만 아니라 나쁘고 비뚤어진 점까지도 강렬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에요.
독서가 당신에게 주는 느낌을 통해서 당신이 참으로 고귀한 동시에 참으로 저급하다는 것을 깨달으세요." (115) - P432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환 덕분에 로버트가 획득하는 ‘영국적 힘‘은 근대적 용어로 자신을 아는 힘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브론테가 캐럴라인의 애정 어린 보호감독 아래에서 로버트가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경험하는 변화를 묘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 편견의 좁은 궤도에서 빠져나와 인간 본성의 큰 그림을 즐기고, 자기 앞에 놓인 책의 페이지로부터 말을 하는 인물들에게 새겨진 리얼리티를 느끼기 시작했다." (116)
셜리 중에서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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