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나는 흥청망청한 생활에 빠져 지냈다. 낮에는 직장에서 비서로 일했는데, 일이 어찌나 지겨운지 흡연이 하루 중 내게 가장 즐거운 행사였다.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샴페인을 잔뜩 마시고 춤을 췄다. 로만폴란스키의 아파트에서 열린 파티에 가서 링고 스타나 대영제국의 기사와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주급은 28달러밖에 안 됐지만, 당시 유럽은 물가가 싸서 프랑스와 그리스로 여행을 갈 수도 있었고, 알프스에서 스키를탈 수도 있었다. 프랑스 학생들과 기차를 타고 러시아까지 가기도 했다.
- P17

1967년에 유럽에서 돌아온 후에는 보스턴에서 직장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2년 동안은 개인소득 세금 보고서를 알파벳순으로 정리해야 할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직장 생활을 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의미 있는 일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여권 운동이 태동하기 전이어서 여성들은 결혼 전까지 타이피스트나교사로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여전히 반전운동에 참가하고 있던 나는 네이팜탄 폭격에 혼비백산한 어린이들 사진을 샌드위치 보드에붙이고 하버드 스퀘어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 세대의 많은사람들처럼 사회운동에 참여하다가 여성운동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당시 유행하던 말대로) ‘문제를 일으키는 쪽이 아니라 해결하는 쪽에 속하게 되었다
- P18

술을 끊자마자 전에 없던 자신감과 에너지가 솟아올랐다. 1년도 안 돼서 나는 강연 에이전시를 찾아가 전문 강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79년에는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부드럽게 우리를 죽이는 법>을 제작했는데, 지금도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다. 70년대 후반에는 술 광고와 담배 광고를 모아 별도의 슬라이드 쇼와 영화로 제작했다. 1983년에는마침내 담배를 끊는 데도 성공했다. 몇 번의 실패 후에 얻은 성과였다. 

내가 금연에 성공한 것은 암이나 주름에 대한 공포, 또는 아침에 나오는 기침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매일 사악한 기업들에게 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담배가 해방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오히려 노예가 되는 길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건강한 반란자가 되어, 자기 파괴적 행동에 썼던 모든 반권위주의적 에너지를 진짜 권력 수많은 사람을속이고 덫에 빠뜨리는 기업들 과 싸우는 데 쓰기로 결심했다.

(담배는 역시 백해무익)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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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1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밑줄만 읽어도 이 책을 읽은거 같은 느낌을 받을거 같아요~!

청아 2021-07-21 09:16   좋아요 2 | URL
ㅋㅋㅋ조금 자제해야 되는데 이것도 중독성이 있네요😅

새파랑 2021-07-21 09:48   좋아요 2 | URL
전 이런 밑줄 많은거 완전 좋습니다 😊

청아 2021-07-21 10:0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저도 새파랑님 밑줄 잘 보고 있어요!😉

scott 2021-07-21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늘 미미님이 올려주신 밑줄 읽기 가득 가득
구절 구절 새겨둘 문장과 곰곰히 되새겨 보고 비판할 것들이 가득입니다.(◞♥ꈍ∇ꈍ)◞♥

청아 2021-07-21 17:48   좋아요 1 | URL
사례들을 많이 담았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과 깨달음이 그녀를 이 방향으로 이끈것을 보니 더 기대되요!💗(๑>ᴗ<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