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친구!」이반 알렉세예비치는 말했다. 당신의 호의와 친절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베푼 친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당신도, 당신 따님도 좋은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 모두가 선량하고 쾌활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너무훌륭한 분들이라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입니다!」넘치는 감정과 방금 마신 과실주의 영향 때문에 아그뇨프는 신학생이 말하는 투로 가락을 실어 말하고 있었다.
감동에 복받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모자라서 눈을 찡긋거리며 어깨마저 움찔거렸다. 쿠즈네초프역시 술기운에 감정이 넘쳐서 젊은이에게 몸을 기울이고입을 맞추었다.

(이런 상황에 부끄러움은 취하지 않은 사람들 몫이지ㅋㅋㅋㅋㅋ) - P90

지평선 위에 두루미들이 가물거리고, 산들바람이 이들의 애원하는 듯한 혹은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실어오기도했지만 몇 분 뒤에는 아무리 애써 푸른 저편을 응시해도점 하나 보이지 않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가는 과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 P91

팔월의 달밤에 깔린 안개를 바라보면서 아그뇨프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꾸며진 무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느낌은 아마도 생전 처음인 듯했다.

(이런 느낌 나도 어렴풋이 느낀 기억이 있다.
찰나를 놓치는 일반인들과 그것을 포착하는 작가들. 그 차이가 위대한 문학을 드러내겠지!) - P93

아그뇨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쿠즈네초프의 딸인 베라였다. 이 스물한 살 난 처녀는 늘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지만 재치 있는 여성이었다. 공상을 즐기고 하루 종일 누워서 손에 잡히는 책은 무엇이든느긋하게 읽으며 따분해하고 우울해하는 아가씨, 이런 아가씨들은 대체로 아무렇게나 차려입는 법이다. 자연으로부터 미적인 취미와 본능을 부여받은 이 아가씨들에게 부주의한 옷차림은 오히려 특별한 매력을 가져다준다. 

(베라! 이름도 예쁘닷) - P93

 이 치마의주름과 숄에서는 한없는 느긋함과 가정의 평화, 그리고 안온함이 배어나왔다. 아그뇨프가 베라의 단추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단순한 무언가를 읽을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지 않거나 아름다움에 둔감한 차가운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하고 시적인 그 무엇이었다.
- P94

베로치카의 드러난 머리와 숄을 바라보는 사이 아그뇨프의 기억 속에서는 지난봄과 여름의 나날들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것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잿빛 방으로부터 멀리떨어져 착한 사람들의 친절과 자연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즐기며 보낸 시간이었다. 행복에 겨운 그는 아침놀이 저녁놀로 바뀌는 것도 몰랐으며, 처음에는 종달새가, 그 다음은 메추리, 뒤이어 뜸부기가 여름의 끝을 예고하듯 차례차례 울음을 멈춘 것도 모르고 지낸 것이다……. 시간 가는줄도 모를 만큼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이었다.……. 부자도

(베로치카를 베라라고도 부르는구나!) - P97

구름아래로는 종달새가 은방울 같은 울음소리를 허공 속으로뿌리며 바삐 날아다녔고, 푸르러 가는 전답 위로는 갈까마귀가 고고하게 날개를 흔들며 선회하고 있었다.
- P98

침을 튀기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끝없이 계속되던 전형적인 러시아식 논쟁들이 기억났다.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에 끼어들고 스스로 앞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주장을 일삼으며 닥치는 대로 주제를 바꿔가면서 두세 시간씩 계속되는 그런 논쟁 끝에 사람들은 웃으며 말하곤 한다. - P99

이별과 과실주에서 비롯된 우수, 온정과 감상적인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날카롭고 거북한 소심증이 그 자리를 채웠다.  - P103

울고 웃으며 그리고 속눈썹에 영근 눈물 방울을 반짝이며 그녀는 말했다. 처음 알게 된 날부터 그의 독창성과 지성과 선량하고 영리한 눈빛, 그의 일과 인생의 목적에 감탄했으며, 그를 열렬하게, 미칠 듯이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여름날정원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에 놓인 그의 망토를 보거나 멀리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녀의 심장은 행복한 기대로 서늘해졌다고, 그가 던지는 싱거운 농담들조차도 그녀를 깔깔 웃게 만들었으며, 그의 공책에 적힌 숫자 하나하나에서 지적이고 위대한 무언가가 느껴졌고, 그의 옹이 투성이 지팡이까지도 그녀에게는 근사한나무로 만든 물건처럼 보였다고.
- P104

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마샤가나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그것은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치 꿈처럼 모호한 슬픔이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이 떠오른다.) - P116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1-07-17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단편집 표지의 그림을 보니까, 전에 이 그림을 두고 설명한 내용 읽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인다고 하는 말도 생각나고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 설명을 읽어서인지, 한 번 더 시선이 가는 것 같아서요.
주말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1-07-18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광팬이에요. 이렇게 흥미로운 소설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더군요.
반복해 듣고 싶어서 오디오북을 찾아 봤는데 제작되지 않았나 봐요.

미미 2021-07-18 13:59   좋아요 0 | URL
아 오디오북이 있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겠네요!! 더 다양한 작품들이 녹음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책의 몇몇 작품들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