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인데ㅡ 당시 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눈싸움 하듯 먼저 눈길을 피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좀 있었다. 먼저 피하면 왠지 지는 것 같아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도 좀 바보같긴하다. ㅡ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에 가던 중이었다. (그 땐 책을 읽는 것 보다는 도서관 자체를 더 좋아했다.) 긴 의자에 자리가 생겨 맞은 편 사람들과 마주 않아 가고 있는데 내 정면에 앉은 외국인 남성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자동반사처럼 나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오로지 먼저 눈을 피하지 않겠다는 집념에 민망함은 이미 뒷전이었다. 상대도 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한 정거장 내내 먼저 피하지 않는 걸 보니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조금 민망해지려던 차에 그가 눈길을 떨구었고 나는 속으로 안도감과 승리감에 뛸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곧 그가 다시 도전장을 들이밀었다. 다시 눈을 마주친 것이다. 2회전까지 연속으로 해본 기억이 없었기에 나는 거부의 의사표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조금 전 승부에 대해 잊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역 이름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열리기 직전. 아까 그 외국인 남성이 내 앞에 와서 " 나 여기서 내리는데"(영어) 하는 게 아닌가? 훗날 광고에서 "저 여기서 내려요"하던 그 멘트 바로 그것이었다. '어 나는 그쪽한테 관심있어서 쳐다본거 아니고 눈싸움 한거였는데....' 이걸 다 설명할 수도 없었던 영어실력의 나는 그냥 " 오 아냐 아냐"(영어) 하고 웃어주었다;;아 그때 그 민망함이란. 지금도 등꼴이 서늘해진다. 


항상 두 사람 마음이 맞으면 참 좋은데 엇박자가 날 때가 있다. 그럼 둘 중 한명은 상처를 입거나 씁쓸해진다. 그만큼 두 사람의 마음이 맞는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운명적'인 사건이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두 번째 에피소드인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병약한 몸을 쉬러 휴양지를 찾은 마르셀이 바닷가에서 마주친 소녀들에게 그야말로 큐피트의 화살을 마구마구 쏘는 이야기다. 마르셀의 관점이다 보니 홍일점이 된 마르셀을 소녀들 모두 좋아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친해져서 소녀들 속에 소년이 한 명끼어 어울리다 보니 극적인 비율차 덕을 본 것일 수도 있겠다. 마치 공학도들 사이에 낀 소수의 여학생들이 모든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것처럼.



영화 '캐롤'의 원작자로도 알려진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에도 이런 엇박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낡은 지하에 혼자 사는 데다 벽이 얇아 이웃의 소음에 노출된 채 생계유지를 위해 밤낯없이 일하던 리플리. 어느날 파티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빌려입은 명문대 자켓 때문에 졸업생으로 오해받고 그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둔 선박회사의 부호로 부터 나폴리에 있는 망나니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거금의 수고비와 함께. 그 때부터 리플리에게 뜻하지 않은 화려한 삶이 시작되고 나폴리의 자유로움과 부호의 아들 딕키(쥬 드로)의 관심에 취한 리플리는 위험한 착각에 빠져들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리플리 증후군: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에서 리플리는(전 5권) 영화와 달리 좀 더 강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영화는 짧은 시간에 5권의 분량을 영상으로 담아 내다보니 각색이 들어갔을테고 그래서 조금 맥락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멧 데이먼은 물론 부호의 아들 딕키로 분한 쥬드로의 자유분방한 연기가 볼만하고 리플리의 거짓말과 엇박자로 인한 파국의 핵심 인물인 딕키의 절친 프레디를 연기한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명연기는 더없이 인상적이다. 리플리의 거짓말과 착각,현실 부정의 3박자와는 궤를 달리하지만 마르셀 프루스트는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소설과 예술의 은유, 사랑과 갈등을 통한 삶의 불확정성을 거침없는 변주로 보여줌으로써 근대소설 리얼리즘의 범위를 풀쩍 뛰어넘는다.


P.5 <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역자 정재곤.  지성이란 다름 아닌 고통의 표현이란 말이 있다. 오로지 고통스런 체험의 담금질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지성의 힘이 길러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전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적 능력을 펼치고 있는 이 작가가 겪었을 무수한 시행착오와 형극의 고통이 저절로 눈앞에 그려진다. 


발베크의 해변

화가 엘스테르의 화실

충격적인 알베르틴(엘스테르와 비교된다)그래도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인데 눈이  쉼표라니...

프랑수와즈는 뽀빠...닮았다.

꽃핀 소녀들과 게임하며 노는 모습

모네의 그림을 떠오르게 만드는 삽화들. 만화를 그린 '스테판 외에'는 인물의 얼굴에 대해서는 

무심하지만 풍경은 디테일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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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1-07-08 04: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을 축하드립니다~~~^^
즐겁고 시원한 하루 되십시오~~

청아 2021-07-08 08:55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ㅎㅎ북홀릭님도 유쾌하고 뽀송한 하루 되세요*^^*

모나리자 2021-07-08 1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미미님~~
7월도 이 기분으로 쭈욱~ 화이팅 하세요~^^!

청아 2021-07-08 10:30   좋아요 3 | URL
모나리자님 고맙습니다~💕 7월도 함께 즐거운 독서생활 이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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