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속머리 위 약 50미터쯤 되는 곳에서 별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인간의 얼굴과도 흡사한 존재를 실은 두 개의 반짝거리는커다란 강철 날개를 보았다. 처음으로 반인반신을 본 그리스인처럼 나 또한 감동했다. 눈물도 흘렸다. 

소음이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왔다는 걸 인지한 순간 — 비행기가 아직 드물 때였다. — 내가 처음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비행기라는 생각에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신문에서 감동적인 말을 기대할 때처럼,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비행기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비행사는 가는길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앞에 ㅡ습관이 나를 포로로 하지 않는다면 내 앞에도 ㅡ모든 공간의 길, 삶의 길이 열려 있음을 느꼈다. 

그는 조금 더 멀리 날더니 몇 초 동안 바다위를 활주하면서 갑자기 결심한 듯, 중력과는 반대되는 어떤힘에 끌린 듯, 마치 자기 나라에 돌아가려는 듯, 금빛 날개를 가볍게 움직이면서 하늘을 향해 곧바로 돌진했다. - P314

* "일하시오, 일하시오, 내 친애하는 친구여, 유명해지시오.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그대의 것입니다." 퐁탄이 샤토브리앙에게 1798년에 보낸 편지의한 구절로, 샤토브리앙이 『무덤 너머의 회고록』에서 인용했다. 퐁탄(Louis deFontanes, 1757~1821) 후작은 미미한 작가로, 공포 정치 후 런던에서의 망명 시절 동안 샤토브리앙과 친교를 나누었다.(소돔」, 폴리오, 615쪽 참조.) - P319

암소 몇 마리만이 울음소리를 내며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밖에 남아 있었고, 몇몇 소들은 인간에게 더 관심이 있는지 우리가 탄 마차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어느 화가만이 좁은 언덕 위에 이젤을 세우고 이 거대한 고요와 가라앉은 빛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암소들은 무의식적으로, 또 무보수로 화가의 모델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귀가한 후에도, 그들의 관조하는 모습과 고독한 존재감이 그 나름대로 저녁이 발산하는 강력한 휴식의 느낌을 주는 데 기여했으니 말이다.  - P322

나는 내 삶이이렇게 세 개의 도면 위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다중적인 양상에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한순간 과거의 인간이 될 때, 다시 말해 오래전부터 자신의 모습인 자아와는 다른인간이 될 때, 우리의 감수성은 더 이상 습관에 의해 약해지지않고, 아주 작은 충격에도 강렬한 인상을 받으면서 이전의 인상들을 모두 희미하게 만들며, 또 그런 강렬함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이 느끼는 일시적인 흥분과 더불어 그 인상들에 빠져든다.  - P323

그사이 나는 남작이 손에 들고 있는 발자크의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은 첫해에 그가 내게 빌려주었던 베르고트의 책처럼 그저 우연히 구입한 종이 표지의 책이 아니었다. 

그 책은 그의장서 중 하나로 "나는 샤를뤼스 남작에게 속하느니."란 명구나, 때로는 그런 명구 대신 게르망트의 학구적인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항상 전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In proeliisnon semper.)",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Non sinelabore.)" 같은 명구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모렐을기쁘게 하기 위해 이 명구가 다른 명구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될것이다.  - P330

*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즉 "크세주?(Que sais-je?)"는 몽테뉴의 명구로『레몽 스봉의 변호』(1588)의 부록에서 설명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정면에 새겨져 있다.
- P35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5-31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샤토브리앙! 스테이크 맛나는 안심살 구이가
갑자기 생각 ㅎㅎㅎ
미미님은 벌써 잃시찾의 구름위를 활공중이쉼 ~٩ʕ◕౪◕ʔو

미미 2021-05-31 16:26   좋아요 2 | URL
아~‘구름위를 활공‘ 프루스트 감상에 더없이 적합한 표현이네요~♡
{´◕ ◡ ◕`}♡주석도 훌륭해서 작품 읽는 재미가 배가 되요ㅋㅋㅋㅋ👍

새파랑 2021-05-31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내용이 더 심오해지는거 같아요. 하지만 문장은 여전하네요. 암소의 감정까지 표현하다니 ^^

미미 2021-05-31 22:57   좋아요 2 | URL
저 조금전에 ‘잡담‘에 관해 읽었는데 모든 게 이런 식이니 계속 감탄 연발입니다. 보는 만큼 쓴다는 말을 엇그제 김영하작가님의 (예전) 팟케스트에서 들었는데 그걸 증명하는 프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