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 P79

눈썹-1987년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飯店)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아니 아버지는 심어 주지도 않을 꺼면서ㅋ) - P90

당신이라는 세상

술잔에 입도 한번 못 대고 당신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 많은 술을 왜 혼자 마셔야 하는지 몰라 
한다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실 때면 나는 자식을 잃은 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없는 목사의 딸을 버리고 삼치 같은 생선을 잘 발라먹지못하는 친구를버린다 버리고 나서 생각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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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1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짙고 검푸른 능선의 지리산 ㅎㅎㅎ
박준시인의 아버지도 시인 ^ㅅ^

청아 2021-05-01 16:44   좋아요 2 | URL
아 그렇네요!!ㅋㅋㅋㅋ역시 스콧님의 통찰력👍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는 읽었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다행히도. ㅋㅋ

청아 2021-05-03 23:51   좋아요 1 | URL
ㅋㅋㅋ기억 안나면 어때요! 시적 감수성 소화 잘 하고 계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