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그라드>

통상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포로들에게는 상대방도 우리 군 포로들에게 똑같은 것을 제공하리라는가정하에 식량, 숙소, 치료가 제공된다.

히틀러는 이러한 관례를 뒤집어엎고자 했다. 소련군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을 통해, 독일 군인들은 자신들 역시 포로가 된다면그와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낄 테고, 결국 그들은 적의 손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하리라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 P314

스탈린 또한 히틀러와 비슷한 관점을 취했는데, 붉은 군대의 군인들은 절대 산 채로 적에게 붙잡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련의 군인들이 퇴각한다거나적에게 투항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소련군은 오직 앞으로 나아가 적을 섬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의 손에 죽.
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솔체니친의 <수용소군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스탈린의 만행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적에게 포로로 잡힌뒤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온 소련군을 심문하고 괴롭히도록 했다.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적과 싸운 군대는 승리하거나 전투에서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의 불신은 에초 혁명의도와 상반될만큼 자국의
농민부터 지식인, 나라를 위해 싸운 붉은 군대와 자신과 함께한 당원까지 예외가 없었다.) - P314

 스탈린은 1941년 8월독일군에게 붙들린 소련군은 탈영병으로 간주될 것이며, 본국의 가족들 역시 체포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것은 심지어 자신의 아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독일의 포로가 되자 스탈린은 곧바로 자신의 며느리를 투옥시켜버렸다. 
- P314

이같은 소련의 무자비한 공격일변주의는 더 많은 소련 군인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결과를 불러왔다. 

소련군 지휘관들은 퇴각 명령을 내리길 두려워했는데, 그럴 경우 자신들에게 인신 공격적 비난(숙청 그리고 처형)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한곳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머무는 일이 잦았고, 사방에서 포위당해 붙잡히기 일쑤였다. 

히틀러와스탈린이 택한 정책들은 결국 소련 군인들을 먼저 전쟁포로로, 다음으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악순환을 빚어내고 있었다.
- P314

독일이 점령한 소비에트 벨라루스 지역에 있었던 가장 악명 높은포로수용소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1941년 11월 말까지 이곳 수용소들의 사망률은 하루 2퍼센트에 다다랐다. 

민스크 근처의 스탈라크352는 어느 생존자의 회상처럼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포로들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차서는, 선 채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대략 10만950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벨라루스 동부에 위치한 도시 모길료프의 굴라크 185, 127 및스탈라크 341에서는 철조망 밖 곳곳에 매장되지 못한 시신으로 이뤄진 시체의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 P320

동쪽 땅에 설치된 수용소의 구조는 슬라브족이든 아시아인이든아니면 유대인이든 독일이 이들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그대로 드러냈고, 바로 그것이 그 같은 대규모 기아를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한 원인이었다. 

전쟁 기간에 붉은 군대 포로들이 갇혀 있었던 독일 포로수용소의 사망률은 575 퍼센트였다. 바르바로사 작전직후 8개월 동안의 사망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게 틀림없다. 반면 독일이 서방 연합군 포로들을 가둬두었던 포로수용소의 사망률은 5퍼센트에 못 미쳤다. 

1941년 가을 어느 하루 동안 사망한 소련군포로들의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목숨을 잃은 영국군과미군 전쟁포로 전체 숫자와 맞먹었다 - P325

먼저 포로들은 주변이 꽤 시끄러운 축사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흰색 겉옷을 걸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자신들이 진찰실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흰색 겉옷을 걸친 자들은 의사인 척하는 나치 친위대원들일 뿐이다. 이들은 포로에게 각자 키를 잴 것이라며 특정 벽을 마주 보고 서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들이 벽을 재빨리 살펴보는것은 포로의 목이 벽에 뚫어둔 구멍 안에 들어오는지를 가늠해보는작업이었다. 이 벽 반대편 방에는 또 다른 나치 친위대원이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벽의 구멍을 통해 포로의 목이 보이면 그는 즉각 방아쇠를 당겼다. 

시신은 "검사실"이라 불리는 세 번째 방으로 던져져 빠르게 닦이고, 다음 포로가 안으로 들어온다. 과거 소련의 그것보다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부분은 한데 묶인 35~40구의 시신이 트럭을통해 화장터로 보내졌다는 점이다.

- P329

독일로 보내진 몇몇 소련 포로가 맞이했던 운명은 이후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를 보여준다.

1941년 9월 초, 아우슈비츠에서는 소련 포로 수백 명이 앞서 수용소내 폴란드 포로 막사를 소독하는 데 쓰이던 살충제, 곧 시안화수소가스(일명 치클론 B)를 마시고 숨을 거둔다. 

뒤에 유대인 약 100만 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치클론 B에 목숨을 잃게 될것이었다. 비슷한 시각 작센하우젠에 있던 소련군 포로들 역시 이동식 가스실 실험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 P333

이타 스트라시는 빌뉴스에서 살아남은 극소수 유대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19세 소녀였던 그녀는 리투아니아인 경찰의 손에 끌려 이미 시신들로 가득 찬 구덩이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제 끝이구나. 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총알은 그녀를 비껴갔지만 공포심에 구덩이로 떨어진 이타의 몸은 뒤이어 총에 맞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뒤덮였다. 누군가가 시체 더미 위로 걸어와 아래쪽을 향해 총구를 당겼다. 한 명도빠짐없이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총알 하나가 이타의 손에박혔지만,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녀는 조심스레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타의 말을 마저 들어보자. "그때 나는 신발조차 신고 있지 않았답니다. 시체들을 밟고서는 걷고 또 걸었지요. 시체더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 P347

아녀자 살해는 힘러가 확실하게 부숴버리고자 했던 일종의 심리적벽이었다. 심지어 아인자츠그루펜이 일반적으로 유대인 남성만을 죽이고 있던 그 시점까지도, 힘러는 나치 친위대 소속 전투 부대인 자신의 무장친위대를 보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유대인 공동체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키도록 했다. 

1941년 7월 17일 히틀러는 힘러에게점령 지역을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만들 것"을 지시한다. 이틀 뒤 힘러는 무장친위대 소속 기병대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사이에 위치한폴레시아 늪지대로 파견했는데, 이들은 힘러로부터 유대인 남성들을사살하고 여성들은 끌고 가 늪에 밀어넣으라는 직접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지시를 빨치산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했다.  - P357

인간의 마음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정하고자 애쓸 때라면 인간의 정신우 보통 모방,복종,그리고 결국 소멸로 쏠리게 된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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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절반 읽으신거죠? ㅎㅎ 이 책 리뷰 대회의 결과가 기대됩니다^^

청아 2021-04-25 12:15   좋아요 1 | URL
빨리 읽어야 리뷰를 쓸텐데 저 너무느려요ㅋㅋㅋㅋㅋ
😳😭 소설 읽고픈데 참는중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엄두가 안 나는데 대단하심요. 미미님 격하게 응원합니다. 영차영차!!!^^

청아 2021-04-25 13:20   좋아요 1 | URL
아~♡ 책읽기님 고맙습니당ㅋㅋ 응원받아 오늘은 진도를 좀 나가볼께요! 점심먹으면서 읽는중예요! 으쌰으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