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신 것같았는데, 갑자기 내게 손을 내미시더니 떨면서 잠깐 악수를 하시고는 급히 밖으로 나가셨기 때문입니다. 감히 아버지를 뒤따라 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불안과 혼란속에서 그냥 선 채로 손수건으로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았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34
목소리가 당당하게 터져나올 때마다 그는 마치 날개를 활짝펴듯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가, 지휘자가 선율에 따르듯안정된 제스처로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놓았습니다. 목소리는 점점 더 격렬하게 휘몰아쳤고,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그는 질주하는 말의 엉덩이에서처럼 딱딱한 책상에서 음악적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섬광과도 같은 번쩍이는 비유들로 가득한 원대한 사상들을 폭풍처럼 쏟아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그 사람 이외에 그토록 감격에 빠져 진실하게 마음을 끌며 강의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P38
난생 처음으로 나는 라틴어로 ‘랍투스 (Raptus,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황홀한 심리적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 - 옮긴이)라고 부르는 것, 즉한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이끌려가는 상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휘몰아치는 그의 입술은 자신을 위해서 말한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몸 속에서 불이 일어난 사람 내부의 화염이 입술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 P38
분명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유성(遊星)과 같은 현상이라고 칭송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높이 앉아 있던교수는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인 동시에모든 세대의 정신적 진술이자, 열정적으로 변모한 시대의 감각적인 표현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의그 위대했던 시간을 단 한 번뿐이었던 황홀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황홀의 순간, 그 시대는 모든 개인의 삶이 그렇듯 모든 민족의 삶에 있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힘들이 한데 모여 영원을 향한 강력한 충동으로 급작스럽게 폭발한 시기였지요. 갑자기 지구(地球)가 넓어지고, 신대륙이 발견되었지만 동시에낡은 권력, 즉 교황권이 허물어질 위협에 처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P39
벽돌공의 손자 벤 존슨(Ben Jonson, 16세기 잉글랜드의 극작가, 시인), 신발 수선공의 아들 말로(Marlowe, 16세기 잉글랜드의 극작가, 시인 - 옮긴이), 시종(侍從)의 후손 매신저(Massinger, 16세기 잉글랜드의 극작가),부유하고 학식이 풍부한 정치인 필립 시드니가 바로 그들이었지요. - P42
이 모든 이들이 뜨거운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오늘 축제를 벌이다가도 다음날 끔찍하고 비참한 상태에빠져 죽어갔는데, 키드(Kyd, 잉글랜드의 비극작가 - 옮긴이)가 그랬고 헤이우드(Heywood, 17세기 잉글랜드의 극작가 - 옮긴이)가 그랬지요. 스펜서(Spenser, 잉글랜드의 시인 - 옮긴이)처럼 킹 스트리트에서 굶어 죽은 이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시민답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겁니다. 싸움꾼이자 통정(通情)을 일삼는 사람, 위선자, 사기꾼들이었지만 동시에 시인, 시인이었지요! 그들 모두가 시인이었던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저 이들 한복판에 있는 존재였을 뿐이지요. 그야말로 그는 ‘시대 그 자체와 몸통(햄릿 제3막 2장에 나오는 대사 - 옮긴이)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지요. 그 폭동이 그만큼 심했고 정열이 넘쳐흐르는 작품들이 연이어 쏟아졌기 때문이지요. - P42
"어째서 내가 이 강의를 역사적 순서에 따라, 처음부터 아서왕과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중세 시대 잉글랜드 시인 - 옮긴이)가 아니라 일반적인 통례와 다르게 엘리자베스 왕조부터 시작했는지 여러분들은 이제 이해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그들과 친해지고, 가장 생동감 있는 것과 친숙해지기 바란다는 것을 이제 이해합니까? - P44
체험 없는 어문학적 이해나 가치에 대한인식이 결여된 단순한 문법적인 단어란 존재하지 않아요. 젊은여러분들은 하나의 국가 그리고 그대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언어를 우선 최고로 아름다운 형식 속에서, 청춘의 가장 강력한 형태 속에서, 뜨거운 정열을 통해 만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시인들의 언어를 들어야 합니다. 언어를 창조하고 완성하는 시인들 말입니다! 우리는 문학을 해부하듯분석하기 전에 일단 호흡해야 하며 가슴으로 따뜻하게 느껴야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이고, 셰익스피어이며, 셰익스피어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그 모든 것들은그 준비에 불과하고, 후에 활기없이 뒤따른 모든 것들은 무한함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든 시도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44
그는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언어의 광휘로 낯선 나를 처음부터 사로잡았고, 더 깊은 그의 침묵, 이마 위에 떠도는 비애의 구름이 이젠 그와 친숙해진 나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고귀한 남성의 우울은 늘 젊은이의 정신을 강하게 붙드는 법입니다. 자신의 심연 아래를 응시하는 미켈란젤로의 사상과 처절하게 내면을 향해 꾹 다문 베토벤의 입, 이렇듯 세계 고뇌를 가린 비극적인 가면들은 모차르트의 은빛 멜로디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물 주위에 밝게 퍼지는 빛보다 더 강력하게 청년을 감동시킵니다. - P87
연구에 열중한 그는 가끔 내가 노크하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그 분 앞에부끄럽고 당황한 채로 서게 되면, 그가 마치 온 몸에 가면을쓰고 파우스트의 의복을 입고 앉아있는 바그너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정신은 수수께끼의 절벽과 소름끼치는 ‘발푸르기스의 밤‘(중부 유럽과 북유럽에서 4월 30일이나 5월 1일에 행하는 봄의축제로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묘사됨 - 옮긴이)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의 감각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어서, 다가오는발자국 소리도, 조심스럽게 인사하는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 P88
나는 다시금 그의 방에 동틀 무렵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선생님이 굳게 잠긴 서랍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꺼내 직접 번역하여 낭독했습니다. 얼핏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흡사 청동으로 주조한 세밀한 암호문 같은 그 작품을 그는 마법을 부려 해석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기분에 잠겨, 그가 쏟아 부으며 선사한 모든 것이 덧없이 흘러가는 말 속에서사라지는 것은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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