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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의 일기장
전아리 지음 / 현문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천재’
올해 겨우 스물 셋인 전아리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푸른작가 청소년 문학상, 문학사상 청소년 문학상, 정지용 청소년 문학상, 세계청소년 문학상 등의 수상 목록이 이를 증명한다. 그녀가 쓴 글을 읽기도 전에 그 풋풋한 나이 ‘스물 셋’이 주는 설레임에 내가 그녀만할 때 나는 무엇을 했었나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 ‘싫다’에서 ‘견딜 수 없다’로 바뀐 뒤, 내 잔잔한 일상을 뒤엎을 만한 것을 찾아 헤매다 59명의 남자들 틈에 끼어 자동차정비란 걸 배우며 내 스스로가 선택한 일에 대해 후회하면 안 된다는 오기로 기름단지에서 손을 담근 채 1년을 살았던 나의 스물 셋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부럽다. ‘읽고 또 읽었더니 쓰고 싶더라’는 전아리.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사람들 얼굴만 봐도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그녀. 좋아하는 것을 일찍 찾아 전념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었으니 정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래봤자 갓 스물 넘은 아가씨가 쓴 글이 얼마나 대단하겠어?’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내 손에 담긴 푸른색 배경에 재미난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는 책 「직녀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어디에서 어긋나 냉담한 부부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부모님과 엄마의 모든 기대를 받으면서 그다지 선전하지 않는 한 살 위의 오빠를 둔 직녀. 직녀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학교의 짱이며 오감의 느낌 그대로가 행동으로 나오는 못 말리는 여교생이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왕따의 자리로 추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살아남기 위한 사고를 치는 직녀와 공부도 좋지만 대학 가기 전에 좀 놀아봐야겠다며 직녀 패거리에 자진해서 들어온 모범생 민정이, 쿨한 엄마가 계시기에 그 미래가 밝아 보이는 가벼움의 대명사 연주가 함께 벌이는 일상속의 소소한 일들이 통통 튀는 문체로 그려진다.
겉보기엔 온 동네가 인정하는 노부부지만, 틈만 나면 노래방에서 노는 불량 할아버지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용돈을 챙기고 엄마와 소원한 관계인 아빠의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 실속을 챙기는 영악한 직녀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격인 못 말리는 초딩에게 당해 절도범으로 몰려 유치장 경험도 하는 어리숙한 면도 있다. 전국에 자판기를 설치해 그 동전을 수거하며 살겠다던 엉뚱한 꿈을 갖고 있던 직녀가 연주가 맹장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간호사를 보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며 처음 듣는 지방대의 간호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하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은 웃기지만 순간순간 읽어 내려간 부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읽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남이 훔쳐 읽어도 절대 앞뒤 상황을 예측할 수 없도록 한 줄로 쓴 직녀의 일기만 하더라도 그냥 쓱 읽고 지나가기 쉽지 않을 정도의 여운을 남긴다.
읽기에 부담이 없는 단문과 빠른 상황전개는 쉽게 소설 속에 빠져들게 만들면서도 청소년들의 일상과 일탈, 고민들이 잘 버무려져 맛을 내는 전아리의 「직녀의 일기장」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들의 나이에서 크게 웃돌지 않는 작가 자신의 생각과 감성이 소설에 녹아 있어 어색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 젊기에 전아리가 독자들에게 풀어줄 보따리의 크기를 짐작할 수가 없다. 전아리의 성장에 따라 그녀의 작품도 성장을 거듭할 것이고, 그 작품을 읽는 이들도 함께 성장해 갈 것이다. ‘읽고 쓰는’것이 일상인 그녀에게서 또 어떤 맛깔 나는 책 읽기를 할 수 있게 될까를 기대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책 속에서...
“왜 자기 마음을 아는 게 더 어려울까? 내 생각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거 같아. 사람이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야. 그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해도. 때문에 나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을 품기에 앞서서, 나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알아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타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더러 삶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며 살라는 세상의 암시가 아닐까. ‘끝은 이렇게 간단하고 순식간이야. 그런데도 너 계속 그렇게 미적거리며 우울하게 살래?’라는 투로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어떤 매뉴얼이 있는 모양인지, 아이들만 보면 지칠 줄 모르고 물어 대는 질문의 유형이 뻔하다. ‘넌 커서 뭐 될래?’, ‘넌 대체 왜 그러니?’등등. 그러나 정작 ‘너는 어떤 사람이니?’,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은 없다. 본인들이 묻고 싶은 질문만 툭툭 던지고는, 그 답이 자신들이 지닌 모범 답안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따라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가름한다. < 메모..2008년 9월 5일 가온아, 넌 누구니? 엄마 딸! 그리고? 엄마의 보물! 또? 무엇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석! (앞으로 1년 후,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엔 어떻게 대답할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