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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어요 - 선생님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임옥상.주철환 외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모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수없이 많은 말들이 오고간다. 대부분 ‘어떻게 그런 일이?, 어쩜 이럴 수가...’하는 이야기들로 얼룩져 가급적 현실을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이 시대가 너무 아프게 다가와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망을 끌어안고 살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 절망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형제나 스승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너무도 빈번한 세상을 살다보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데, 이런 세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괜찮다고, 어렵고 힘들어도 조금만 힘을 내어보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너를 보고 힘을 얻는다고...
「참! 잘했어요」는 전∙현직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선생님 이야기와 제자들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꽂아준 꽃을 차마 달지 못하고 옆에 계신 나이 드신 선생님께 꽂아드릴 수밖에 없었던, 한 때는 젊었던 나의 스승 곁에서 동료로 만나 또 한 세상을 살아가는 뭉클한 이야기, 너무도 어려운 살림 때문에 대학입시 시험을 치르는 것도 부담스러운 제자를 따로 불러내어 여비를 챙겨주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크게 두드러지지 않던 재주를 눈여겨보시고 그 길로 이끌어주시는 선견을 가진 선생님들의 이야기, 순수한 아이들의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부러움의 한숨을 쉬게 된다. 내게도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책을 읽고 며칠을 그냥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기에, 이런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한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그러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한 분도 없었니?’ 하며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 누전으로 불이 나서 집이 홀랑 타버려 동네에서 얻은 츄리닝을 입고 중학교에 다닐 때 체육이 없는 날에는 츄리닝을 입고 오는 게 예의에 맞지 않다고 하던 선생님, 레슬링인지 권투인지 생중계 방송을 본다며 숙직실에서 맥주까지 한 잔 걸치고 벌게진 얼굴로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 준비물이 찰흙인데 가난해서 찰흙 살 돈이 없어 진흙을 가지고 온 학생을 무식하게 때리고 망신을 주었다는 남편의 초등학교 때의 경험 등...
사람의 기억은 아름다운 것보다 추한 것을 더 오래, 강렬하게 기억하는가 보다. 그러다 다시 또 다른 기억을 더듬어보니 음악실기 시험 때 기타가 없는 내게 기타를 빌려주셨던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책을 좋아한다고 삼중당 세계문학을 때때로 빌려주셨던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 시험 때마다 채점을 부탁하시며 한 아름씩 과자를 안겨주셨던 나이 지긋한 교련선생님(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셨던 용맹한 군인 선생님), 내 머리통이 동글동글 예쁘다며 만날 때마다 쓰다듬으며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책을 빌려주셨던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 등 내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신 선생님들이 참 많았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을 떠올리다보니 이 선생님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많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신 선생님도 계실 테고 환갑 가까운 나이에 여전히 솔로를 고수하실 것 같은 우아한 선생님으로 남은 분도 계시겠지?
살기 어려워졌다고, 인심이 각박해졌다고, 가족 관계, 사제 관계, 이웃 관계 모두 예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에 아직은 살만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이 그저 직업일 뿐 사명으로 생각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많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더 많이 지닌 내게 밝은 면을 먼저 보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가슴 뜨끔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물으시던 국어선생님의 웃는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비오는 날 수업시간에 마른 가지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고 보석 같다며 창밖을 보라던 선생님 덕분에 늘 딸아이에게도 비만 오면 진주 방울이 달려있다고 호들갑떨며 감탄했던 게 결국 선생님의 영향이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아, 선생님... 정말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