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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꽃밭 한락궁이 ㅣ 우리 설화 그림책 6
김춘옥 글, 한태희 그림 / 봄봄출판사 / 2011년 9월
평점 :
많고 많은 책 중에서 표지에 시선이 한참 머무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그림책은 워낙 걸출한 삽화가가 많기에 덩달아 높아진 독자의 눈은 화가가 공들여 그렸을 그림에 잠시 잠깐 눈길을 줄 뿐, 바로 책 내용을 확인하는데 급급하다. 그런데, ‘서천꽃밭 한락궁이’의 표지는 첫눈에 시선을 확 사로잡게, 마치 내 자신이 향기롭고 화려한 꽃밭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연꽃, 장미, 백합,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 알록달록 수많은 꽃들로 빚어진 색채의 향연 속에서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꽃향기를 맡는 사내아이의 모습에서 와락 호기심이 생긴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한다는 서천, 그곳에 자리한 꽃밭, 그리고 소년 한락궁이. 그래서 제목이 ‘서천꽃밭 한락궁이’인가보다. 책을 읽으면서 한락궁이가 사람 이름인줄 알았지만.
아주 먼 옛날, 자식이 없던 임진국과 김진국이 살았단다. 여기서 이들의 이름은 왜 ‘진국’일까, 두 사람은 어떻게 같은 마을에 살고 이름까지 같을 수 있을까? 게다가 운명인 듯 자식까지 나란히 없으니... 또 이들은 운명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 원강아미와 아들 사라도령을 낳고, 열다섯 살 되던 해에 결혼을 한다.
어느 날, 같이 잠이 든 꽃다운 이 부부는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데, 옥황상제가 사로도령을 서천꽃밭의 꽃대왕으로 임명해 어서 길을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원강아미는 임신한 상태였지만, 사라도령을 따라 서천꽃밭으로 먼 여행을 떠나고, 멀고 험한 길에서 너무나 지친 원강아미는 그만 잠시 신세를 지기로 한 천년장자 집에 홀로 남아 모진 고생 끝에 아들 한락궁이를 낳는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시 먼 길을 떠날 용기가 없었던 원강아미는 천년장자의 집요한 결혼 요청을 거부하며 힘들게 살다가 아들 한락궁이의 아버지에 대한 의문과 천년장자의 괴롭힘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도록 한다. 이에 분노한 천년장자는 원강아미를 죽였고, 아버지와 만난 한락궁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고 아버지로부터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트일꽃, 웃음꽃, 울음꽃, 수레명망악심꽃을 받아 죽은 원강아미를 다시 살려낸다.
그리고 우리 옛이야기 대부분이 행복한 결말이듯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꽃밭으로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을 맺는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이나, 어머니를 다시 살리기 위한 일 등이 어디선가 접해보았던 설화를 연상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주도에서 전해오는 ‘이공본풀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뒤표지에 잠시 언급된 ‘이공본풀이’에 흥미가 생겨 검색을 해보니, 무속에서는 서천 꽃밭을 인간 생명의 근원이 되는 환생꽃과 멸망을 주는 주화를 가꾸는 곳이라 생각하고, 이곳을 관장하는 이를 ‘이공’이라고 했다. 주화로 인한 재난을 막고 환생꽃으로 집안의 번영을 빌기 위해 이공본풀이를 하는데, 이 이야기가 ‘서천꽃밭 한락궁이’로 재탄생한 것이다.
처음엔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이야기 자체는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자꾸 등장하는 이들의 범상치 않은 이름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기도 하고, 서천꽃밭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기에 원강아미가 그토록 고생하면서도 남편을 뒤쫓아 가지 못했을까, 천년장자는 왜 그리도 당당하게 원강아미와 한락궁이를 못살게구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등, 갖가지 생각에 쉽지 않은 그림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검색을 하면서 원강아미가 자신과 태어날 아기를 담보로 천년장자에게서 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사라도령이 무사히 서천꽅밭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문이 풀렸다.
정말 이 세상 어딘가에 이렇게 신비로운 꽃밭이 있다면, 호기심 많은 인간들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하는 우스운 생각 한편, 그 꽃밭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한태희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강한꽃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두껍게 그렸다고 한다. 덕분에 그림책의 내용보다 그림이 훨씬 인상적으로 남아 눈을 감아도 꽃밭이 보인다. 아마도 누군가 가장 아름다운 꽃밭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한태희 선생님이 그린 서천꽃밭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