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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 먹고 똥이 뿌지직! - 약이 되는 열두 달 옛이야기 ㅣ 큰돌고래 1
김단비 지음, 안경자 그림, 곽준수 감수 / 웃는돌고래 / 2011년 11월
평점 :
“엄마, 그거 알아? 풀로 못 고치는 병은 과학으로도 못 고치는 거?”
‘찔레 먹고 똥이 뿌지직!’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계획을 세웠던 딸아이가 내린 결론이다. 처음엔 자세히 읽지 않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책 표지 맨 윗부분에 작은 글씨로 쓰인 ‘음식으로 고치치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응용한 듯하다. 재미있는 책은 좀 아껴서 천천히 읽으라고 해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아이는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목련 꽃눈을 따와서 환약을 지을 태세다. 귀여워라, 귀찮아라, 재밌어라.

길고 긴 겨울, 봄이 오긴 오나 하고 추위에 지쳐갈 무렵이면 잎도 없는 마른 가지에 소담한 꽃을 피워 움츠린 어깨를 펴고 높게 달린 꽃송이를 보면서 덩달아 하늘도 보게 만드는 목련의 꽃눈이 비염이나 축농증, 치통이나 충치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늘 보기를 즐겨하는데, 언젠가 목련의 꽃눈이 한 겨울에 눈에 띄어 온난화 때문에 얘가 꽃필 때를 헷갈려하나 보다 했더니만, 그게 꽃눈이란다. 에고, 창피해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지경이면 다른 이들보다 더 봄을 간절히 기다렸을 그 옛날, 변을 보지 못해 시름시름 앓던 사람들의 속을 확 풀어주었던 고마운 존재가 바로 찔레꽃이라고 한다. 장미와는 다른 달큼한 꽃내음이 좋아 길가다가도 여러 번 멈춰 서서 향을 맡곤 했었는데, 그 꽃에 이런 효능이 있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 중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글공부가 싫어 마음의 병까지 얻은 도령의 신경질과 불면증을 단번에 고쳐 준 자귀나무 껍데기, 그 꽃은 타박상으로 인한 통증과 허리나 다리 통증에도 좋다고 한다. 가늘고 예쁜 꽃잎 어디에 그런 효능이 숨어 있는지, 생각해보니 가까운 산에 올랐을 때 예쁘게 생긴 꽃이라 생각하고 이름을 궁금해 했던 꽃이 이 자귀나무 꽃이었다. 내년 초여름엔 아이와 함께 산에 올라 이 예쁜 꽃을 감상해보리라 다짐한다.
추운 겨울, 떨고 있는 고라니에게 장옷을 벗겨 줄 만큼 고운 마음씨를 지닌 딸의 마음에 감동해 아픈 어머니에게 필요한 약초를 남겼다는 전설이 있는 복수초는 심장의 힘을 튼튼히 하는 약으로 심장병과 협심증에 좋을 뿐만 아니라 부스럼과 통증에도 효능이 있고, 오줌을 잘 나오게 하는 효능까지 있다고 한다.
요즘과 달리 진료 한 번 받기 어려웠던 그 옛날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가 되었던 열두 가지 식물에 얽힌 재미난 옛이야기와 함께 그 효능이 함께 실린 이 책은 식물부분은 식물도감처럼 세밀한 그림으로, 이야기 부분은 푸근하고 잔잔한 수채화로 그려져 보는 즐거움이 더하다. 의학의 발달로 수많은 병을 고치기도 하지만, 남용된(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약으로 인해 내성이 생긴 우리 몸에 천연의 약재로 병을 치유하면서 자연과 더 가까운 생활을 하면 참 좋겠단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다.
책을 읽고 겨울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해보니 ‘호두곶감쌈’이다. 매주 한 시간씩 품앗이로 하는 책놀이에서 ‘호두열매 덕에 부자 된 차돌이’를 읽고 곶감과 호두를 이용해 쌈을 만들었더니 굉장히 재미있어 한다. 예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된 시간이라 그런지 만들기도 전에 입으로 들어가는 게 더 많았어도 즐거운 음식체험까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주에는 통후추(동네 마트를 여러 군데 다녔어도 파는 곳이 없었다. 재래시장에 가봐야 할 듯)를 사서 배숙을 만들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