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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우리아이 처음 읽는 하늘빛 성경 동화 5
양연주 지음, 강종민 그림, 목창균 감수 / 문공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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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많이 보았던 그림 성경 중 하나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수자원과 기름진 옥토로 살기좋은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 풍요로워였을까요?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온갖 악한 일들을 자행합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악행을 보면 대낮에 남의 물건을 빼앗아 달아나고, 술에 취하며,

약한 자를 폭행하고 거리에서 육체적인 사랑의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죄가 너무 차올라 봐주지 못하고 멸하려 하시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을 떠보지요.

의인50, 의인45, 의인30, 의인20, 의인10..

아브라함이 자신있게 여쭙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숫자가 자꾸 내려가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보기에도 악행을 저지르는 이가 너무 많아 의인이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

이예요. 손님을 가장한 천사들이 위험을 알리며 소알까지 떠나기를 종용하지만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우습게 여겨 따라 나서지 않고, 롯의 부인은 천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멸

망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이 궁금해 돌아보았다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사람들이 생각없이 저지른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성경동화입니다.

또한 의인 10사람이 있으면 도시 전체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루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의인이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깨달았을 때 회개하는 사람’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경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라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실것을 믿고

성경 읽기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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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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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가족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좋은 부모 되기와 좋은 자녀 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공식은 왜 없는가 등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 쓰며 작가는 얼마나 많은 웃음과 울음을 삼켰을까 생각하니 마음 끝이 저릿저릿하다. 많은 부분에서 세계 최고, 세계 최초,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가정에서의 바람직한 열린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우리사회의 편견과 습관이 너무 많다.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한 번 이혼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든데 세 번의 이혼과 그로 인해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공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일이지는 굳이 책을 읽지 않고도 짐작이 된다.

  해체된 가족에서 다른 구성원과 다시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정말 순수한 가족의 의미를 일부러 져버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딪침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만큼 상대도 아프구나, 나만큼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불신과 증오는 사랑 또는 그와 유사한 감정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혼 후 친가에서 자라던 위녕은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아빠가 다른 두 남동생도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두 남동생을 사랑이란 감정으로 품을 수 있게 된 이유가 엄마를 사랑해서라는 것을 깨닫는데, 가족이라는 것이 꼭 같은 핏줄이 아니어도 가능하고 사랑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와 문제가 생기면 꼭 결손가정의 아이라 칭하며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단죄하는 모습에서, 미래를 부모가 설계하는 것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친구 쪼유의 모습에서, 빚이라도 내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며 충고하는 엄마의 친구들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끼지만, 어디선가 읽었던 ‘문제를 알면 답도 보인다’는 단순한 진리가 생각났다.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란 형제자매도 참 가지가지다. 하물며 세상 수십억 인구는 말해 무엇 할까?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와 문제 그리고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즐거운 나의 집’을 단행본으로 보면서 찔끔찔끔 감질나게 읽으면서도 매일 챙겨 읽지 못한 아쉬움이 사라졌다. 소설 속 엄마의 모습이 딱 내모습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 역시 내 고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저녁에는 어쩌다 한 번 씻는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하고 하나 있는 딸에게는 절대로 거를 수 없는 의식처럼 씻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TV에서 보이는 슬픈 장면을 보고 통곡을 하는 모습이나 사소한 일에 분개하면서도 작은 일에 감사할 거리가 산적한 것도 너무 똑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의 슬픔을 보며 친정 부모님이 보이신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의 모습에서는 내 부모님이 생각나서이다. 정말 보잘 것 없는 딸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로, 가장 똑똑한 딸로, 가장 정의로운 딸로 보는 나의 부모님.. 결혼하지 않겠다고 할 때는 ‘능력을 키워서 혼자 멋지게 사는 모습도 좋다. 자식이 넷인데 둘은 결혼했으니 혼자 살기를 원하면 그도 좋다.’ 하신 부모님, 결혼을 결심하고도 아이 안 낳고 살겠다고 하니(이 사회에서 바르게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낳은 정만 있는 것이 아니고 키우는 정도 정이다.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하신 부모님은 지금 딸아이를 하나 키우는데도 참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다. 오로지 자식을 향한 그 사랑 하나로.. 

  결혼하기 전에는 가난의 수렁에서 건져내지 못한 아빠의 무능과 폭발적인 성격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지금은 아빠의 황금과도 견줄 수 없는 멋진 말씀들이 생각난다.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을 사는 지금, ‘사람은 두 번 돌아보지 않게 생겼으면 된 거다. 너무 이뻐서 돌아보는 것도, 너무 못생겨서 돌아보는 것도, 너무 뚱뚱한 것도 아니면 좋다.’하시고, 오랜만에 친정에 놀러가서 위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사회성이라는 게 아래층에 피해주니 뛰지 말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윗 층에 뛰어다닐 연령의 아이들이 살고 있으면 그걸 참아주는 것도 사회성이다.’하신 아빠의 말씀들. 

  책을 읽으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어 참 기쁘다. 어떤 형태로의 가족이든 사랑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이 책으로 인해 더 빨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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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2009-11-19 11:34 
    바람직한 ‘함께 살기’에 대한 사색 외국에 터를 잡은 동생이 올 연말까지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며 이 땅을 찾았다. 바다를 사이에 놓고 떨어져 있으니 만나기도 어렵고, 평소 전화도, 인터넷 메일이나 채팅도 잘 하지 않아 서로 연락도 잘 못하고 지내는 편이다. 그나마 한 해 한 번씩 한 달 정도 다니러 오니까, 그때 얼굴도 보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10대 시절에는 가족이라며 함께 어울려 지내던 동생들도 지금은 뿔뿔..
 
 
 
제인 에어 2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4
샬럿 브론테 지음, 서유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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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도착하고 표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인 에어’를 읽었으니까 19년 만이었는데,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하고는 있어도 그 때 책 표지가 어떤 디자인이었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로 나온 ‘제인 에어’는 상냥하고 맑고 이지적인 여인의 초상화가 표지에 실려 있다. 이 초상화가 샬럿 브론테의 것인지, 아니면 제인 에어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번 보면 바로 눈을 돌리기가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제인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잃고 삼촌 집에서 얹혀살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떠안은(그럴 수밖에 없다. 10살의 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 너머 양면의 진짜 세상을 그려볼 수는 없을 테니까)채 살다가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꿈을 꾸고 준비를 시작한 때가 열여덟 살, 사는 게 그다지 행복이라 여기지 않았던 열일곱의 내가 제인을 만나 푹 빠지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다시 만난 제인은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어릴 때는 줄거리 위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색연필로 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너무도 짧은 세월을 살다간 친구 헬렌의 통찰력 있는 말들은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이 만들어 내는 말보다도 더 값지고 유용한 말들이 많았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사물에 대해 쓴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나는 리드 아주머니와 베시, 헬렌, 템플 선생님, 페어펙스 부인과 아델라 그리고 로체스터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고 로우드 기숙학교와 손필드를 그려 볼 수 있다.

  처음 로체스터를 만나는 장면부터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자신의 안에서만 감정을 추스르는 제인의 마음을 읽노라면 두근거림과 함께 웃음도 터져 나온다. 연적(실은 연적이란 말은 우습다. 제인은 이미 블량슈 잉그램의 인간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기 때문에 경쟁자의 위치까지 올릴 필요가 없었다.) 블랑슈 잉그램과 자신의 그림을 그려놓고 로체스터의 마음이 잉그램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제인을 기분 나쁘게 했던 로체스터의 냉소나 놀라게 만드는 험악함까지도 고급요리에 들어가는 맛이 강한 양념이라 생각하는 것이란 대목을 볼 때는 남편을 생각했다. 연애시절엔 나 역시 그랬다. 물론 8년의 결혼생활은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리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신혼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남편의 단점도 다시 멋진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로체스터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나 결혼을 해서 로체스터의 ‘소중한 눈동자’로 살아가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곳까지 나는 제인과 함께 울고 웃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집필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리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 같은 샬롯 브론테에게 마음이 쓰인다. 또 감사하다. 수년 후에 또 다시 ‘제인 에어’를 읽어도 나는 역시 행복해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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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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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
  버스요금이 40원인가 했는데, 학교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다녀야만 했던 그 시절, 집과 학교의 중간지점에 있는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죽음을 생각했었습니다. 아이다운 생각으로 '어떻게 죽으면 아프지 않까?'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가장 편안한 죽음으로 '약물'을 마음으로 택했고, 그 약물을 구하는 것 까지는 어린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시절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저와 참 많은 것이 닮은 것을 느꼈습니다. 저자는 좋은 집 과 자동차 그리고 일에 젊음을 바쳐 미친듯이 매진했지만, 전 이룰 수 없는 막연한 꿈 과 내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안절부절하며 살다가 서른 다섯살을 맞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저자는 노은사 '모리'교수님을 다시 찾게 되면서,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과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것에 대에 되돌아 보고, 교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하는 축복도 누립니다.

  우리의 문화가 인간들을 행복하게 못하고, 제대로 된 문화란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 이 그것을 따르려 애쓰지 말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 왔던 문화적인 충돌에 대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을 나갔을 때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움 받던일, 개인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아 불 이익 당했던일, 여자란 이유로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일 등등.. 업무나 인간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 전혀 지장받지 않아도 될 일들이 금지되고, 활동의 폭이 좁아질 때 그저 울분만 가지고 살았는데, 당당하게 나를 내세우지 않고 살았던 날들이 참 아쉬웠 습니다.

모리 교수님에게 감동 당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 천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자식, 제자들, 동료들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평생을 사셨을 때, 선생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다른 사람들은 들고 가지 못하는 사랑과 존경과 오래 기억남을 추억들을 함께 가지고 가십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란 문구가 사랑과는 무관하게 사뭇 비장한 느낌을 주지만, 요즈음 세계적으로 다시 들고 일어나는 민족주의나 인종 차별주의, 가정의 해체, 부정모정의 실종들을 볼 때, 위의 글처럼 우리를 깨우쳐 사랑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글도 없는듯 합니다.

  처음 교수님이 천천히 쇠락하는데 가장 두려운게 뭐냐는 테드 코펠의 질문에 어느날 누군가 자신의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고 답했는데, 피할 수 없는 일은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막상 그 상황이 왔을때 좌절하지 않고 가까이 온 죽음과 친숙해지려는 선생님의 의연한 모습은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 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라는 말씀을 몸으로 실천해 앞으로 죽게 될 모든 인간들에게 진정 살아 있음을 즐기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든 아직 살아 있는 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사는게 힘들고 지겹기도 해서, 어느날 눈 떠 보니 마흔살이 되어 있 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흔살이 되면 참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인것 처럼 느껴졌던 어린 생각이었지요. 젊고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 하긴 하지만, 그 마음에서 벗어나 현재의 일흔 넘은 나이에 흠뻑 젖어 산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정신이 번쩍 드는 이유는 저는 선생님처럼 지나간 10대, 20대, 그리고 지금의 나이를 맞으면서 무엇이 좋고 진실되며 아름다운지를 찾으려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흠뻑 빠져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살아 봤기에 어린애의 기분을 알고 느끼며, 서른 다섯의 나이엔 또 서른 다섯을 느낄 수 있고 즐기는 것.. 정말 기쁜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한 삶의 나마지 분량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리 교수 님으로 인해 전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내 사랑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고,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 것이며, 분란을 야기시키는 사람이 아닌 평온함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죽음 역시 막연한 두려움으로 기다리지 않고, 행복한 죽음을설계해 보아야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계속 살아갈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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