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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4
샬럿 브론테 지음, 서유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1월
평점 :
책이 도착하고 표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인 에어’를 읽었으니까 19년 만이었는데,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하고는 있어도 그 때 책 표지가 어떤 디자인이었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로 나온 ‘제인 에어’는 상냥하고 맑고 이지적인 여인의 초상화가 표지에 실려 있다. 이 초상화가 샬럿 브론테의 것인지, 아니면 제인 에어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번 보면 바로 눈을 돌리기가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제인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잃고 삼촌 집에서 얹혀살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떠안은(그럴 수밖에 없다. 10살의 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 너머 양면의 진짜 세상을 그려볼 수는 없을 테니까)채 살다가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꿈을 꾸고 준비를 시작한 때가 열여덟 살, 사는 게 그다지 행복이라 여기지 않았던 열일곱의 내가 제인을 만나 푹 빠지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다시 만난 제인은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어릴 때는 줄거리 위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색연필로 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너무도 짧은 세월을 살다간 친구 헬렌의 통찰력 있는 말들은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이 만들어 내는 말보다도 더 값지고 유용한 말들이 많았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사물에 대해 쓴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나는 리드 아주머니와 베시, 헬렌, 템플 선생님, 페어펙스 부인과 아델라 그리고 로체스터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고 로우드 기숙학교와 손필드를 그려 볼 수 있다.
처음 로체스터를 만나는 장면부터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자신의 안에서만 감정을 추스르는 제인의 마음을 읽노라면 두근거림과 함께 웃음도 터져 나온다. 연적(실은 연적이란 말은 우습다. 제인은 이미 블량슈 잉그램의 인간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기 때문에 경쟁자의 위치까지 올릴 필요가 없었다.) 블랑슈 잉그램과 자신의 그림을 그려놓고 로체스터의 마음이 잉그램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제인을 기분 나쁘게 했던 로체스터의 냉소나 놀라게 만드는 험악함까지도 고급요리에 들어가는 맛이 강한 양념이라 생각하는 것이란 대목을 볼 때는 남편을 생각했다. 연애시절엔 나 역시 그랬다. 물론 8년의 결혼생활은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리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신혼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남편의 단점도 다시 멋진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로체스터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나 결혼을 해서 로체스터의 ‘소중한 눈동자’로 살아가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곳까지 나는 제인과 함께 울고 웃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집필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리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 같은 샬롯 브론테에게 마음이 쓰인다. 또 감사하다. 수년 후에 또 다시 ‘제인 에어’를 읽어도 나는 역시 행복해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