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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3학년..
버스요금이 40원인가 했는데, 학교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다녀야만 했던 그 시절, 집과 학교의 중간지점에 있는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죽음을 생각했었습니다. 아이다운 생각으로 '어떻게 죽으면 아프지 않까?'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가장 편안한 죽음으로 '약물'을 마음으로 택했고, 그 약물을 구하는 것 까지는 어린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시절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저와 참 많은 것이 닮은 것을 느꼈습니다. 저자는 좋은 집 과 자동차 그리고 일에 젊음을 바쳐 미친듯이 매진했지만, 전 이룰 수 없는 막연한 꿈 과 내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안절부절하며 살다가 서른 다섯살을 맞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저자는 노은사 '모리'교수님을 다시 찾게 되면서,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과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것에 대에 되돌아 보고, 교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하는 축복도 누립니다.
우리의 문화가 인간들을 행복하게 못하고, 제대로 된 문화란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 이 그것을 따르려 애쓰지 말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 왔던 문화적인 충돌에 대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을 나갔을 때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움 받던일, 개인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아 불 이익 당했던일, 여자란 이유로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일 등등.. 업무나 인간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 전혀 지장받지 않아도 될 일들이 금지되고, 활동의 폭이 좁아질 때 그저 울분만 가지고 살았는데, 당당하게 나를 내세우지 않고 살았던 날들이 참 아쉬웠 습니다.
모리 교수님에게 감동 당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 천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자식, 제자들, 동료들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평생을 사셨을 때, 선생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다른 사람들은 들고 가지 못하는 사랑과 존경과 오래 기억남을 추억들을 함께 가지고 가십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란 문구가 사랑과는 무관하게 사뭇 비장한 느낌을 주지만, 요즈음 세계적으로 다시 들고 일어나는 민족주의나 인종 차별주의, 가정의 해체, 부정모정의 실종들을 볼 때, 위의 글처럼 우리를 깨우쳐 사랑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글도 없는듯 합니다.
처음 교수님이 천천히 쇠락하는데 가장 두려운게 뭐냐는 테드 코펠의 질문에 어느날 누군가 자신의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고 답했는데, 피할 수 없는 일은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막상 그 상황이 왔을때 좌절하지 않고 가까이 온 죽음과 친숙해지려는 선생님의 의연한 모습은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 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라는 말씀을 몸으로 실천해 앞으로 죽게 될 모든 인간들에게 진정 살아 있음을 즐기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든 아직 살아 있는 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사는게 힘들고 지겹기도 해서, 어느날 눈 떠 보니 마흔살이 되어 있 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흔살이 되면 참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인것 처럼 느껴졌던 어린 생각이었지요. 젊고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 하긴 하지만, 그 마음에서 벗어나 현재의 일흔 넘은 나이에 흠뻑 젖어 산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정신이 번쩍 드는 이유는 저는 선생님처럼 지나간 10대, 20대, 그리고 지금의 나이를 맞으면서 무엇이 좋고 진실되며 아름다운지를 찾으려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흠뻑 빠져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살아 봤기에 어린애의 기분을 알고 느끼며, 서른 다섯의 나이엔 또 서른 다섯을 느낄 수 있고 즐기는 것.. 정말 기쁜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한 삶의 나마지 분량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리 교수 님으로 인해 전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내 사랑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고,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 것이며, 분란을 야기시키는 사람이 아닌 평온함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죽음 역시 막연한 두려움으로 기다리지 않고, 행복한 죽음을설계해 보아야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계속 살아갈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