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작은 의자
길지연 옮김, 스즈키 마모루 그림, 다케시타 후미코 글 / 홍진P&M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여기 작은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작은 의자는 한 아주머니에 의해 아기가 태어나는 집으로 선물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 의자에 앉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은 즐거운 기다림이었습니다. 아기는 금세 자랐고 의자를 무척 좋아해서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의자는 때로는 책상으로, 때로는 자동차로, 때로는 터널로 바뀌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게 됩니다. 아기가 자라 소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의자가 작아져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고 의자는 창고로 옮겨집니다. 창고는 어둡고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해서 답답하고 심심했습니다.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어졌을 때 의자는 몸에 잔뜩 힘을 주게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의자가 움직일 수 있잖아요. 의자는 이제 처음 자신을 만드시던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귀여운 아기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아이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곤 어느 숲에 이르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다가 의자를 주워갑니다. 할머니 집에는 아이가 없고 인형들만 가득했어요. 할머니는 작은 의자에 인형을 앉혔습니다. 예쁘게 생겼지만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인형이 작은 의자에 앉고 난 얼마 후 할머니가 병이 나서 먼 도시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며칠 후 낯선 사람들이 와서 할머니의 짐을 옮겨갔고 다시 내렸을 때는 낡은 물건을 파는 가게였습니다. 그 가게에서 작은 의자는 오래 있었습니다. 인형이 팔려간 후에도 한참을 더.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부부가 가게 앞을 지나는데 남자가 의자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작은 의자도 남자를 보며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을 보았는데 누구였더라?’ 남자도 말합니다. ‘잠깐만, 이 의자 본 적이 있어.’  어릴 때 작은 의자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을 남자는 기억합니다. 그리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작은 의자를 사갑니다.

  ‘작은 의자’는 짧은 내용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작은 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숲의 일부였다는 것, 그리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 아닌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할아버지의 바람을 담고 탄생한 물건입니다. 작은 아이를 생각하고 어느 곳 하나 날카롭지 않게 튼튼하게 만든 할아버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작품인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아기가 단지 부모님의 기쁨이요 축복이 아닌 관계 맺어 진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소망 속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자를 선물하신 친척 아주머니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 의자에 앉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하는 아기아빠에게 엄마는 금세 자랄 것이라 말하지요. 나도 내 딸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아이는 정말 우리가 알게 모르게 금세 자란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의자에 애정을 느끼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내 딸이 작은 박스 하나에도, 찢어진 종이 한 장, 줄 끊어진 목걸이의 구슬 한 개에도 애정을 보이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건이 그냥 물건이 아니라 만든 이의 정성과 소망이 담긴 물건일 때, 그 소망대로 쓰이지 못하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겠구나, 사람을 만드신 조물주도 우리가 아름답게 살지 못하면 많이 슬프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은 너무 많은 물건들이 흔하게 있어서 물건의 소중함을 정말 모르지만, 이 책을 보며 아이들이 자기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자라서 더 이상 물건이 필요하지 않을 때 그냥 버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잘 쓸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을 품으며 책을 덮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의자
길지연 옮김, 스즈키 마모루 그림, 다케시타 후미코 글 / 홍진P&M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여기 작은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작은 의자는 한 아주머니에 의해 아기가 태어나는 집으로 선물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 의자에 앉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은 즐거운 기다림이었습니다. 아기는 금세 자랐고 의자를 무척 좋아해서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의자는 때로는 책상으로, 때로는 자동차로, 때로는 터널로 바뀌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게 됩니다. 아기가 자라 소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의자가 작아져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고 의자는 창고로 옮겨집니다. 창고는 어둡고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해서 답답하고 심심했습니다.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어졌을 때 의자는 몸에 잔뜩 힘을 주게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의자가 움직일 수 있잖아요. 의자는 이제 처음 자신을 만드시던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귀여운 아기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아이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곤 어느 숲에 이르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다가 의자를 주워갑니다. 할머니 집에는 아이가 없고 인형들만 가득했어요. 할머니는 작은 의자에 인형을 앉혔습니다. 예쁘게 생겼지만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인형이 작은 의자에 앉고 난 얼마 후 할머니가 병이 나서 먼 도시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며칠 후 낯선 사람들이 와서 할머니의 짐을 옮겨갔고 다시 내렸을 때는 낡은 물건을 파는 가게였습니다. 그 가게에서 작은 의자는 오래 있었습니다. 인형이 팔려간 후에도 한참을 더.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부부가 가게 앞을 지나는데 남자가 의자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작은 의자도 남자를 보며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을 보았는데 누구였더라?’ 남자도 말합니다. ‘잠깐만, 이 의자 본 적이 있어.’  어릴 때 작은 의자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을 남자는 기억합니다. 그리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작은 의자를 사갑니다.

  ‘작은 의자’는 짧은 내용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작은 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숲의 일부였다는 것, 그리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 아닌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할아버지의 바람을 담고 탄생한 물건입니다. 작은 아이를 생각하고 어느 곳 하나 날카롭지 않게 튼튼하게 만든 할아버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작품인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아기가 단지 부모님의 기쁨이요 축복이 아닌 관계 맺어 진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소망 속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자를 선물하신 친척 아주머니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 의자에 앉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하는 아기아빠에게 엄마는 금세 자랄 것이라 말하지요. 나도 내 딸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아이는 정말 우리가 알게 모르게 금세 자란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의자에 애정을 느끼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내 딸이 작은 박스 하나에도, 찢어진 종이 한 장, 줄 끊어진 목걸이의 구슬 한 개에도 애정을 보이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건이 그냥 물건이 아니라 만든 이의 정성과 소망이 담긴 물건일 때, 그 소망대로 쓰이지 못하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겠구나, 사람을 만드신 조물주도 우리가 아름답게 살지 못하면 많이 슬프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은 너무 많은 물건들이 흔하게 있어서 물건의 소중함을 정말 모르지만, 이 책을 보며 아이들이 자기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자라서 더 이상 물건이 필요하지 않을 때 그냥 버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잘 쓸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을 품으며 책을 덮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어휴, 이렇게 엉뚱하고 답답하며 또 공감 가는 이야기가 있었던가? 로큰롤과 텔레비전을 끼고 살며 여성 해방의 최전선인 가정에서 육아와 살림을 맡아 하는 주인공 마티는 아내에게 버림을 받고 만다. 아내가 사회생활을 최적의 상태에서 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봐주고 식생활에서도 최고의 것만을 직접 만들어주며 아이가 아플 때에는 엄마를 대신해 밤을 새워 돌보는 마티. 그런 자신을 집 밖으로 내몰려는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공감이 가는데 이유는 여성이 주부로서 온전히 살 때, 남성들은 여성들이 집 밖의 생활도 있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이 집안일을 대신할 때는 왜 그렇지 못한가? 아마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옛날부터 관습적으로 여성은 여성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남성은 남성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알게 모르게 배우고 생활 속에 뿌리깊이 녹아있기 때문은 아닌가싶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티는 불쌍하게 아내에게 버림을 받는 남편으로 보이지만 아내 헬레나의 입장에 서면 그렇지만도 않다.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사회적 부적응자가 분명한 남편을 바라볼 때 얼마나 애가 타고 답답했을지 상상이 간다. 정작 문제가 산더미처럼 커진 자신들의 것은 어떤 노력이나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으면서 말로서 세상을 바꾸려 하는 남편.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성향과 다른 정치적 발언을 들으며 양동이를 놓고 토하는 남자를 도대체 어떤 여자가 참고 살 수 있을까?

  아내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곁으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정원이 딸린 아담한 집을 마련하는 것이라는데 결론을 내린 마티. 그때부터 ‘내 집 마련’의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그러나 보통의 방법, 즉 부동산을 통해 시세를 알아보고 자신의 자산과 은행 대출을 고려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남자 마티가 자신의 집을 갖는 데는 괴상망측하고 어이없는 방법을 동원한다. 턱없이 높은 집값으로 시작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마티의 내 집 마련은 직장과 장물 취급, 마사지사로서의 생활을 병행하게 한다. 여기에 엽기적인 행각은 계속되어 집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스크랩하고 관련한 사람들의 신상을 필요이상(스토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으로 수집한다. 이웃의 휴대폰을 몰래 훔치고, 이웃으로 점찍은 자들의 집에서 오줌을 누는가 하면 그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자 다시 접근하는 사이코적인 행동을 예사로 한다. 급기야 사고자 마음먹은 노인의 집을 내놓은 값의 80%도 안주고 억지로 계약서에 싸인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일로 마티는 결국 경찰서행이 되고 만다.

  1년 전 아내가 곁을 떠났을 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해 맨 첫 장의 글과 같은 똑같은 글로 마무리된 ‘그 남자는 불행하다’는 주인공 마티와 아내, 위층 사람들, 이웃, 부동산 중개업자, 경찰등 모두 1인청 화법으로 글을 써 나가 생동감 있지만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 등장인물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면면을 모두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모양만 다를 뿐이지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가족을 이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갖기는 우리나라나 이웃 일본, 멀리 유럽의 핀란드까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렵게 찾은 사랑과 행복을 또다시 자잘한 실수로 떠나보내지 말고 황혼의 나이까지 잘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핀란드식의 블랙 유머, 잘 읽었습니다, 카리 호타카이넨씨.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 마음이 자라는 나무 14
모모 카포르 지음, 김지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 오고 비오는 날, 운전하는 남편과 언니, 그리고 동생들을 걱정하는 것. 새벽녘 추위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에서 딸아이가 이불을 차내고 자는 것은 아닐까 하며 딸의 방문을 열고 확인하는 것. 무더위에 허름한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청소에 여념이 없는 아빠를 볼 때 가슴이 저리는 것. 고기라면 입에는 물론 젓가락이 닿는 것도 싫은데 아이와 남편을 위해 양념육을 사 와 맛있게 먹을 저녁 시간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살면서 느끼는 사랑이다.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나 역시 사랑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느 날 저녁 별 무리 중에서 작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싸냐의 무릎에 점으로 내려앉는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바냐와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결혼에 이르지만, 싸냐만을 사랑하겠다는 바냐의 굳은 맹세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세상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만다. 싸냐에게만 시선을 두지 못하는 바냐는 싸냐가 그의 곁을 떠났을 때에라야 겨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싸냐를 찾아 끝을 향해 내닫는다. 왜 바냐는 함께 별을 바라보던 순수의 시간, 꽃을 선물하던 아름다운 시간, 새로 산 자전거와 오래 기다린 그네를 양보하던 배려의 시간들을 잊었던 것일까?

  가로등을 밝히기 위해서 별을 쫓는 가로등지기 노인처럼, 자신의 가슴을 빛나게 해주는 훈장을 갖고 싶어 별을 쫓는 힘 센 장군처럼, 반짝이는 귀걸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귀부인처럼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 자체로 인정하고 보호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리고 처음 사랑했던 본질은 잊은 채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결국 사랑했던 기억마저 부정하는 사람들.

  이제 나도 바냐를 보며 알게 되었다. 아니,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정이 되고 나를 바꾸고 싶게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가 될지,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알 수 없지만, 정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하리라. 줄어든 몸 때문에 너무 커진 바지를 접어 입고 쓸쓸히 고개 숙인 싸냐의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지 않기를, 사랑이 떠난 후에 사랑의 흔적을 찾아 내 발치만을 내려다보며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에어 2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4
샬럿 브론테 지음, 서유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도착하고 표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인 에어’를 읽었으니까 19년 만이었는데,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하고는 있어도 그 때 책 표지가 어떤 디자인이었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로 나온 ‘제인 에어’는 상냥하고 맑고 이지적인 여인의 초상화가 표지에 실려 있다. 이 초상화가 샬럿 브론테의 것인지, 아니면 제인 에어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번 보면 바로 눈을 돌리기가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제인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잃고 삼촌 집에서 얹혀살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떠안은(그럴 수밖에 없다. 10살의 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 너머 양면의 진짜 세상을 그려볼 수는 없을 테니까)채 살다가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꿈을 꾸고 준비를 시작한 때가 열여덟 살, 사는 게 그다지 행복이라 여기지 않았던 열일곱의 내가 제인을 만나 푹 빠지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다시 만난 제인은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어릴 때는 줄거리 위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색연필로 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너무도 짧은 세월을 살다간 친구 헬렌의 통찰력 있는 말들은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이 만들어 내는 말보다도 더 값지고 유용한 말들이 많았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사물에 대해 쓴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나는 리드 아주머니와 베시, 헬렌, 템플 선생님, 페어펙스 부인과 아델라 그리고 로체스터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고 로우드 기숙학교와 손필드를 그려 볼 수 있다.

  처음 로체스터를 만나는 장면부터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자신의 안에서만 감정을 추스르는 제인의 마음을 읽노라면 두근거림과 함께 웃음도 터져 나온다. 연적(실은 연적이란 말은 우습다. 제인은 이미 블량슈 잉그램의 인간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기 때문에 경쟁자의 위치까지 올릴 필요가 없었다.) 블랑슈 잉그램과 자신의 그림을 그려놓고 로체스터의 마음이 잉그램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제인을 기분 나쁘게 했던 로체스터의 냉소나 놀라게 만드는 험악함까지도 고급요리에 들어가는 맛이 강한 양념이라 생각하는 것이란 대목을 볼 때는 남편을 생각했다. 연애시절엔 나 역시 그랬다. 물론 8년의 결혼생활은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리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신혼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남편의 단점도 다시 멋진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로체스터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나 결혼을 해서 로체스터의 ‘소중한 눈동자’로 살아가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곳까지 나는 제인과 함께 울고 웃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집필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리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 같은 샬롯 브론테에게 마음이 쓰인다. 또 감사하다. 수년 후에 또 다시 ‘제인 에어’를 읽어도 나는 역시 행복해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