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을 끄면 별이 떠요 ㅣ 상상의집 지식마당 7
서지원.조선학 지음, 양종은 그림, 김정애 감수 / 상상의집 / 2012년 10월
평점 :
가까이 사시던 시부모님이 정읍으로 이사 가셨다. 모르는 이들은 시부모님이 멀리 가셔서 좋겠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뵙던 분들을 못 보는 아쉬움과 사시는 곳 가까이에 병원이 없어 혹여나 아프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더 크다. 태어나면서 쭉 같이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재를 더 크게 느끼는 딸아이도 안쓰럽고. 그래도 시부모님이 하루에 버스도 몇 번 지나지 않는 곳으로 이사 가셔서 좋은 점이 생겼다. 우리에게도 ‘시골’이 생긴 것이다.
기대하던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아 ‘시골’을 내려갔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아서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초록이고, 집 앞 텃밭에 온갖 종류의 채소를 심으셨다. 어디서 나왔는지 두꺼비가 며칠을 뒷마당으로 소풍 나오고, 소 키우는 앞집에서 풍겨오는 소똥냄새도 마냥 좋은 시골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말 좋았던 건 하늘이었다. 온통 전깃줄로 도배해 놓은 듯한 도시의 하늘과는 달리 낮에 보면 새파란 하늘만 따로 떼놓고 볼 수 있었고, 밤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로등 불빛 빼면 창백하게 빛나는 달만이 빛을 내는 존재였다. 구름이 잔뜩 끼어 별은 보이지 않고, 이 구름이 달마저 가리면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워져 보이는 것 하나 없다. 도시의 소음과 빛 공해가 없는 시골에서의 밤은 저절로 사색이 가능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정읍시 옹동면의 하늘(낮과 밤)
‘불을 끄면 별이 떠요’란 책 제목에서 말해주듯 우리는 너무 많은 빛의 공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내를 다니다보면 밤중에도 대낮같이 밝게 켜진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시간을 잊게 된다.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도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너무 강해 예민한 날은 수면 안대를 하고 잠을 청해야 한다. 이롭게 쓰려고 만든 것들이 오히려 불편을 끼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로운 것을 이로운 상태로만 사용할 수 있는 절제의 미덕이 함께 한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이 이를 따르지 못해서일까? 책에서는 들이와 들이의 가족의 생활을 이야기의 줄거리로 삼아 전기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밤가시 마을의 정전으로 인해 ‘전기란 무엇일까?’에 관심이 쏠리게 되면서 전기의 발견과 전류, 자기장까지 확장해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전기와 이렇게 편리한 전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는 한편 자연의 힘으로 오염 없는 전기를 만들려는 노력과 전기를 아끼는 방법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수많은 자원과 위험을 감수하고 전기를 생산해내도 전력대란이 일어나는 시대지만, 각 가정마다 넘쳐나는 전자제품으로 전기계량기는 휙휙 돌아간다. 전기요금명세서가 올 때면 다들 한숨을 쉬거나 울상을 지으면서도 끌어안고 사는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엔 친정엄마도 포함된다. 못살던 시절에 대한 한이 맺혔던지 곡식과 채소를 비롯한 식재료와 과일을 쟁이고 쟁여 냉장고가 4대나 된다. 엄마의 변명은 자식들 오면 무언가 해서 싸줄려면 그만한 공간이 필요하다는데 실상은 저장고가 생기니 그만큼 채우게 되고, 채우다보면 공간이 부족해 새로운 저장고가 늘어나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친정에 갈 때마다 쟁이지 말고 퍼주면서 냉장고를 하나씩 줄이라고 당부하다보니 예전에는 내가 엄마한테 듣기 싫었던 잔소리로 되갚아 주냐며 서운해 하신다. 에고, 나 어렸을 때 엄마도 나의 부족한 부분과 잘못 들인 습관 때문에 꼭 필요한 잔소리를 하셨을 텐데 그걸 몰랐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아껴야 나와 내 후손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불끄기 운동’에 우리 가족이 참여했던 일이 생각난다. 불도 켜지 않고, TV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촛불을 켜고 예쁜 잔에 국화차를 내어 서로 대화를 하자며 시도했던 일, 평상시엔 스스럼없이 잘도 말하던 우리 셋은 참 어색한 가운데서 힘들게 30분을 견뎠다. 이는 빛과 소음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습관에 익숙해짐이 필요한 때에 우리 가족부터 등 하나라도 덜 켜고 전자제품 하나라도 더 구매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