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는 빈사의 상태로 니혼바시 다리를 향해 걸어간 아빠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빠는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용기를 내라, 진실로 부터 도망치지 마라, 자신이 믿는 대로 하라, 라고.
눈물이 넘쳐흘렀다.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졌다. 이제야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좀 더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까, 왜 아빠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유토는 그렇게 후회하며 자신을 질책했다.
그런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리라, 아바는 산재 은폐 따위의 비열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해도 나만은 믿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사람의 죽음은 슬퍼할 만한 일이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평안을 주기도 합니다. 결국 인생을 희극으로 볼지, 비극으로 볼지는 엔딩을 어떻게 하느냐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요.
부모를 잃은 친구가 말하길 "부모를 여읜다는 것은 죽음과 자신 사이에 놓여 있던 가로막이 없어지고 허허벌판에 내던져지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경험이 이 사람의 ‘현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귀어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야 한다.
"인생 경험이 충분히 있는 어른은 자기가 해야 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 없이도 알찬 나날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있다. 스스로 ‘조금이나마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정해진 틀이 없는 ‘우정‘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다. 각자의 세월을 거쳐 현재에 이른 동성, 이성 친구들과 남은 시간을 풍요롭게 공유하변서 나이를 먹고 싶다.
한참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빨간 책방과 영화 덕분에 재독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이사벨은 삶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하다는 것을 생생히 깨달았다.
고민이 있더라도 가슴에 묻어 두어야 했으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다고 해서 어려운 세상살이가 더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죄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욕구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는) 살아가는 일이 앞으로 오랜 기간 자신의 의무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이런 확신에 고무되어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아직 힘이 남아 있으며, 언젠가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증거였다. 고통만을 위해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어쨌든 그녀는 아직 젋고 아직 많은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나하고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너는 나를 붙잡고 있을 테니까. 네 마음속에 나를 간직해 두렴. 나는 지금까지보다 너와 더 가까이 있을 거야. 이사벨, 살아있는 게 더 좋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랑이 있으니까. 죽음도 좋지만, 죽음에는 사랑이 없어."
"가급적 당신의 인생을 지켜야 돼요. 일부분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끼지 잃어선 안 돼요. 겉으로 보이는 상황,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세상의 형편없고 우둔한 짓거리 따위를 걱정하는 건 당신 자신에 대한 모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