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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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은 띠지에 쓰인 글처럼 속이 시원했다. ’갑질 세상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시작됐다.‘ 검찰, 사법부, 정치권, 언론을 망라하는 대한민국 공조 카르텔, 이제 법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악질들을 철저히 도려내기 위해 집행관들이 나섰다.

 

역사적 모티브와 경탄할 만한 상상력을 연결해 흥미진진한 역사 추리소설로 탄생시켜 온 조완선 작가가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저격한 현대 사회 미스터리로 독자들을 다시 찾는다. 베스트셀러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교양 문화 추리소설’의 패러다임을 새로이 제시하고, [제6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처럼 생생하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족시켜온 작가다.

 

역사학자 최주호 교수는 고교 동창 허동식의 전화를 받았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친일파 노창룡에 관한 자료를 부탁했다. 허동식은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작품 구상에 쓴다고 했고, 25년 만에 나타난 동창의 부탁을 외면할 수도 없고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후, 노창룡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된다.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고문 도구들과 피해자의 등에 새겨진 숫자들뿐이다. 최주호가 보낸 잔혹한 고문 자료가 살인 수법으로 그대로 이용되었다. 최 교수는 원치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고문수법에 관한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에 찾아간다.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는 노창룡의 사체 등에 숫자의 비밀을 풀어보면서 용의자들은 법을 불신하거나 법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은 자가 가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희생자는 조선시대의 형벌을 사용하였다. 인터넷이나 시민들의 반응은 범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 수법에는 관심이 없었고 민족정기에 방점을 찍었고, 사회 정의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한 심리학자는 ‘분노의 대리만족’이라는 표현으로 여론을 분석했다.

 

칼럼을 쓰는 것으로 분노를 대신하려고 했다. 나라를 거덜낸 종자들이 제 잇속만 채워도, 그들이 특별사면을 통해 면죄부를 받아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자신에게는 인간쓰레기를 단죄할 권한이, 그들을 응징할 수단이 없었다. 기껏해야 좀 더 자극적인 어휘를 골라 칼럼을 끼적대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자신만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허동식은 달랐다. 손에 피를 묻혀가며 직접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p167

 

배동휘, 안희천, 정윤주, 윤민욱, 엄기호, 양세종, 이기호, 북극성, 허동식 등은 A와 B팀으로 구성되어 각자 역할 분담을 했다. 집행관들의 공통점은 분노와 상처가 있었다.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기자, 부패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사건을 폭로한 퇴역 군인,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친일파,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될 종자들만을 골랐다. 그러나 살인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간들,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도 이들은 여전히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지 않나. 오히려 부와 영화를 대물림해 주면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든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지. 노교수의 말처럼 법이 제대로 집행되었다면, 피해자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집행관들]을 처음 펼치자마자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분노와 자존심이 맞붙는 날카로운 심리묘사와 이어지는 반전은 통쾌하지만 한편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은 ‘집행은 멈추지 않는다’로 마쳤는데 2권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금이라도 ’집행관들‘의 순수한 열정을 헤아린다면, 적폐들과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는 않을까. 정말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이 바뀐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작가의 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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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세계사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김진연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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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생각하기 위한 역사책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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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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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작가님 장편소설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이 책은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찬란한 헌사라고 쓴 것처럼 가족서사,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잔잔한 울림과 감동이 있는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훌쩍 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다고.p7

 

소설의 시작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 ‘나’ 헌이는 5년 만에 고향 J시를 가게 되었다. 딸을 잃은 헌이는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여동생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서 듣지 않았다면 J시에 가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아버지가 종종 우는 걸 봤다.

 

아버지는 1933년 초여름에 태어났다. 여섯째였으나 전염병이 돌아 형 셋을 잃고 장남이 되었다. 조부는 아들 셋을 잃고 두려움에 차서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슬하에 두고 소학을 가르치고 명심보감을 외우게 했다. 학교에나 보내주실 일이제, 조부에 대한 원망을 내보냈다. 아버지는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차례로 잃었다. 학교 문턱도 못 가본 아버지였지만 6명 자녀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차례로 걸어놓았지만 헌이 자리만 비워있었다. 아버지 인생이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었을까.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는 아버지의 물음. 등단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렸을 때 등단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고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부모를 잃은 아버지를 안쓰럽게 여긴 아버지의 외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열네살에 양친을 잃은 아버지는 남의 밭과 논에 쟁기질을 하여 품삯을 받아 고모에게 주었다. 고모는 남동생들만 두고 시집을 갈 수 없어 고모부를 마을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가 열 두살에 해방된 것도 실감이 안 났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소집령을 받자 전주 할아버지의 지시에 손가락이 잘렸다. 종손이 군대에 못 가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네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너가 별것을 다 기억한다고 하시더라 했다. 아버지가 가게를 완전히 접은 후로는 행방이 묘연했던 나무궤짝 안에는 큰오빠가 리비아 파견근무를 할 때 편지들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편지 말미에 ‘나는 더 바랄 거시 업따’로 끝맺는다. 큰아들은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글자 안 틀리게 잘 쓰고 싶어서 야학에 나가 한글을 배우신다고 편지에 적었다. 이런 아버지의 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둘째오빠와 엄마,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어낸 ‘박무릉’ 아저씨와 조카 등 다른 인물들을 통해 소외되어 있었던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자다가 안보여서 찾아보면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어서 도망가라고 했다는 엄마의 말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인 거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디 나갔다 집에 오면 집 안을 둘러 보며 형만 찾는 것이 각인 되어 둘째가 겪는 설움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가지밖에 없다고 그것이 대학에 가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젊은 날 알게 된 ‘박무릉’은 빨치산에게 잡혀 두 다리를 잘리게 되었고, 아저씨 모르게 생필품을 가져다 준 이야기는 전쟁이 낳은 아픔이었다. 은퇴한 큰오빠가 집에 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안에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이 힘들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딱 한번 집을 나간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이름 ‘김순옥’과 잠깐 살림을 했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니가 좀 적어둘 테냐? 했다. 큰오빠에게 외투와 나무궤짝 안의 편지들을 남긴다.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홍이에게는 북하고 북채와 전축을 남긴다. 셋째에게는 시계와 술 한병을 남긴다. 헌이는 헛간에 세워놓은 새 자전거를 남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다섯째에게 내 선글라스를 남긴다. 막내는 텃밭의 우사 허무는 일을 맡아라. 마저 하려했으나 엄두가 안 나는구나. 헌이 엄마 정다래에게는 내 통장을 남기네. 소설을 읽고 나의 아버지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안부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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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내 책 -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 ㅣ 난생처음 시리즈 4
이경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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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내 책]은 이경 작가의 세 번째 책이다. 예순여섯 곳의 출판사에 투고한 끝에 메타소설인 첫 책을 출간하고, 두 번째 책은 스물네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의 여러 방법 중에서도 ‘투고’를 통해 편집자를 만나고 출간을 해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전한다.

 

1만 자의 메일을 보내준 편집자가 한 작가 지망생의 구원 천사가 되어줄 수 있을지, 혹은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마음을 다시금 반려라는 바늘로 터트려버릴지. 편집자의 의견대로 원고를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한 편집자는 인터뷰를 통해 편집자 인생 7년간 투고 원고로 책을 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글을 쓰고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 기간 동안에도 마음속으로 구원의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담당 편집자와 꾸준히 메일을 주고받았다. 김서령 작가가 한 일간지에 쓴 <교정지>라는 글을 읽었다. 교정을 본다는 건 원고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련 많은 여자처럼 자꾸 뒤돌아본다고도 썼다.

 

책 제목 못지않게 저자명도 고민스러웠다. 본명이 중성적이기는커녕 여성이 많이 쓰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들었다. 이름에서 한자를 떼고 이경으로 정했다. 첫 책을 준비하면서 표지 날개에 들어갈 저자 소개 글을 써야 했고, 그 마지막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필명 ‘이경’은 아내가 불러주는 이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책의 보도자료를 얼마나 신뢰할까. 사실 독자들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100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고, 책도 한 권 낸 그 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급하다 싶을 때는 문자를 주고받았을 뿐, 신기하리만큼 전화 통화 없이 일을 진행해나갔다.

 

출판사 대표가 기획하는 글을 써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획하고 목차까지 짜주는 거니 1쇄에 대한 인쇄는 없다고 했다. 책이 망해도 저자에겐 책이 남지만, 출판사로서는 출간하는 모든 비용을 대고서 망하면 곤란하니, 결론은 제가 즐겨 듣지 않는 음악이라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는 말로 메일을 보냈다. 글을 쓰며, 출간을 준비하며 겪은 단연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작가 지망생이 이런 제안을 받는다면 헐값에 자신의 글을 팔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가끔은 작법서 한 권보다 글쓰기에 관한 짧은 명언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짧고 명쾌한 문장은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다.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쓰기 팁 대부분은 글쓰기라는 삶 속에 앞서 뛰어든 사람들의 명언이다. 신춘문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화려한 등장에 있을 것이다. 새해 첫날 신문에 글을 띄우며 멋스럽게 등장할 수 있지만, 꾸준히 글을 쓰지 못한다면 상금 한 번 받고 잊힐 수도 있다. 신춘문예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출판사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리는 병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내 글 구려 병‘이고, 하나는 정반대 성격의 ’작가 병‘이다. 내 글 구려 병에 걸리면 자신감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다. 작가 병에 걸리면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넘쳐흐르게 되고 주변의 어떤 이야기도 안 들리는 지경에 빠진다.p176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와 랜선 친구가 되었고 1년간 글을 주고받았다. 비밀댓글을 달아가며, 책 이야기, 원고 이야기, 투고 이야기 등을 나누었던 것. 그렇게 나눈 이야기는 데뷔작의 소재가 되어 이른바 메타소설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가제에 쓰인 ’구원의 천사‘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 등장하는 표현이었다. <난생처음 내 책>은 분명 글쓰기 관련 에세이지만, 실용적인 내용은 그리 많지 않고 이제 겨우 두 권 낸 초보 글쟁이의 경험담과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실용적인 팁을 하나 건넨다면, 제목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늘 어딘가에 글을 써오긴 했지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도통 하지 못한 채 서른 중반을 넘긴 직장인, 그런 저자가 누군가의 '책 한번 내보면 어때?'라는 말에 혹해서 출간의 꿈에 빠져든다. 마냥 꽃길은 아니지만 수없이 투고하고, 희박한 확률 속에서도 계속 문을 두드리니 화답해주는 출판사가 있었고, 편집자를 만나, 첫 책을 내고 작가의 꿈을 이룬 사람이 전하는 글쓰기와 출간에 관한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이 작가 지망생이나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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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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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문기자 이은선의 에세이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는 라디오 MBC FM4U ‘FM영화음악’의 한 코너 ‘이은선의 필(름) 소 굿’에서는 목소리로, 각종 영화 GV에서는 직접 관객과 영화인을 만나며 영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토대로 한 사려 깊은 질문과 태도로 좋은 인상을 남긴다. 이 책에 실은 글들은 영화 속에서 슥 지나쳐간, 혹은 인상적으로 기억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줄리&줄리아>는 두 여성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그들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설의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 그의 요리 책에 소개된 524가지 요리를 365일 동안 직접 만들어보고 후기를 올리기 위해 블로그 연재를 시작한 줄리가 그 주인공이다.

 

월간 <스크린>으로 시작해 월간지, 주간지, 일간지까지 다양한 마감 사이클을 겪어내며 영화 전문기자로 일하다 2016년 9월에 회사를 그만뒀다. 제주에서 이듬해 2월까지 겨울을 났다. 시간이 많은 날은 밑반찬이나 육수를 만들어두는 데 열중했다. 양배추와 비트를 넣어 피클을 만들어두고, 언제든 국물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다시마와 밴댕이 그리고 태우듯 구운 대파를 넣고 끓인 육수도 준비했다. 낮 시간은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흘려보냈다. 오름이나 숲, 좋아하는 해변에 가서 마음껏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집에 돌아와선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다.제주 동쪽 월정리와 세화 사이, 행원리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 그곳은 나와 친구들이 편히 숨쉬며 좋은 것들로 시간을 채운 ‘리틀 포레스트’였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혜원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꽁꽁 언 땅에서 뽑은 배추로 끓인 배춧국이다.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에 그럴싸한 식재료가 있을리 없다.

 

 

 

‘언택트’라는 기묘한 단어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사이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행복, 그러니까 아끼는 사람들과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최대의 사치로 느껴졌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피자 장면에서도 주인공이 마르게리타를 먹는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리즈 얘기다. 주방에서는 피자를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중이다.

티라미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시애틀 이사온 샘이 심야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아들 조나 덕분에 애니라는 운명의 여성을 만나게 되는 내용이다.

 

혼자 살게 되면서 꼭 갖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달걀말이용 사각 팬이다. 애초에 둥글게 말린 것을 억지로 사각형으로 만드는 과정은 왠지 멋있지도 않았다. 지금 가진 사각 팬은 사촌 언니의 선물인데 이 팬으로 만든 달걀말이를 먹은 사람들 중에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도 있다. 영화업계의 위기는 저자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속절없이 미뤄지는 개봉일을 신호탄으로 영화관 GV를 포함한 오프라인 해설 프로그램은 모두 취소됐다. 광고 수익이 줄어든 매체들 역시 당분간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했기 때문에 원고를 의뢰받는 일도 확 줄었다. 1년 내내 행복도 끝도 없이 유예하고 있다는 기분을 삼켜야 했다. 불안과 체념은 한 몸처럼 계속 붙어 다니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에게 소중한 것, 혹은 상대가 기뻐할 만한 무언가를 주고 싶은 건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의 본질이다. 이 마음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불문율과 같다. 고 박지선과 절친이었던 저자는 만날 때마다 함께 밥도 먹었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일이 언제까지나 가슴 미어지는 고통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실제로 그건 생각만으로도 벌써 고맙고 따뜻하다고 했다.

 

 

음식에 얽힌 누군가와의 추억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오래 머문다. 그것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의 것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아하는 건 토마토소스다. 직접 조리할 때 실패의 부담이 적고, 초행인 음식점에 가더라도 웬만해선 평균의 맛을 보장하는 메뉴라고 했다.

 

평생 술과는 거리가 먼 ‘알코올 쓰레기’로 살아온 저자는 스페인에서는 몇 번인가 하우스 와인을 주문하고 말았다. 와인 몇 모금에 대체 왜 해장이 필요하냐고 묻지 말아달라고.

배우 주디 갈란드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IPTV 채널에서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스칼렛 요한슨은 세 살때부터 주디를 보고 배우를 꿈꿨다고 이야기해왔다. 스칼렛 요한슨과 주디 갈란드의 삶을 단순 비교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인생은 그런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부터, 주디 갈란드가 동시대의 스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게 됐다. 불행하게도 세상의 모든 배움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배움이 전혀 소화가 안 된 상태로 처음 혼자 진행했던 모 배우와의 인터뷰는 지금 떠올려도 아찔하다.

 

인터뷰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어느 날, <카모메 식당>을 보게 됐다. 때가 때여서 그랬는지 갑자기 영화가 좀 달리 보였다. 지금도 인터뷰를 하기 전, 마음 안에 향긋한 시나몬롤과 따뜻한 커피를 내려놓고 마주 않은 사람이 들려줄 영화와 인생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코로나19로 영화관에 못 가본지 일년이 넘어간다. 몇 편은 다운 받아 보고 특선영화로 방영되어 봤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게 제맛인데 유일한 취미를 앗아가 버렸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영화와 음식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풍성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라고 했는데, 영화가 당장 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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