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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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작가님 장편소설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이 책은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찬란한 헌사라고 쓴 것처럼 가족서사,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잔잔한 울림과 감동이 있는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훌쩍 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다고.p7

 

소설의 시작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 헌이는 5년 만에 고향 J시를 가게 되었다. 딸을 잃은 헌이는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여동생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서 듣지 않았다면 J시에 가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아버지가 종종 우는 걸 봤다.

 

아버지는 1933년 초여름에 태어났다. 여섯째였으나 전염병이 돌아 형 셋을 잃고 장남이 되었다. 조부는 아들 셋을 잃고 두려움에 차서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슬하에 두고 소학을 가르치고 명심보감을 외우게 했다. 학교에나 보내주실 일이제, 조부에 대한 원망을 내보냈다. 아버지는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차례로 잃었다. 학교 문턱도 못 가본 아버지였지만 6명 자녀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차례로 걸어놓았지만 헌이 자리만 비워있었다. 아버지 인생이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었을까.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는 아버지의 물음. 등단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렸을 때 등단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고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부모를 잃은 아버지를 안쓰럽게 여긴 아버지의 외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열네살에 양친을 잃은 아버지는 남의 밭과 논에 쟁기질을 하여 품삯을 받아 고모에게 주었다. 고모는 남동생들만 두고 시집을 갈 수 없어 고모부를 마을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가 열 두살에 해방된 것도 실감이 안 났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소집령을 받자 전주 할아버지의 지시에 손가락이 잘렸다. 종손이 군대에 못 가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네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너가 별것을 다 기억한다고 하시더라 했다. 아버지가 가게를 완전히 접은 후로는 행방이 묘연했던 나무궤짝 안에는 큰오빠가 리비아 파견근무를 할 때 편지들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편지 말미에 나는 더 바랄 거시 업따로 끝맺는다. 큰아들은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글자 안 틀리게 잘 쓰고 싶어서 야학에 나가 한글을 배우신다고 편지에 적었다. 이런 아버지의 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둘째오빠와 엄마,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어낸 박무릉아저씨와 조카 등 다른 인물들을 통해 소외되어 있었던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자다가 안보여서 찾아보면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어서 도망가라고 했다는 엄마의 말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인 거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디 나갔다 집에 오면 집 안을 둘러 보며 형만 찾는 것이 각인 되어 둘째가 겪는 설움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가지밖에 없다고 그것이 대학에 가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젊은 날 알게 된 박무릉은 빨치산에게 잡혀 두 다리를 잘리게 되었고, 아저씨 모르게 생필품을 가져다 준 이야기는 전쟁이 낳은 아픔이었다. 은퇴한 큰오빠가 집에 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안에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이 힘들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딱 한번 집을 나간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이름 김순옥과 잠깐 살림을 했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니가 좀 적어둘 테냐? 했다. 큰오빠에게 외투와 나무궤짝 안의 편지들을 남긴다.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홍이에게는 북하고 북채와 전축을 남긴다. 셋째에게는 시계와 술 한병을 남긴다. 헌이는 헛간에 세워놓은 새 자전거를 남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다섯째에게 내 선글라스를 남긴다. 막내는 텃밭의 우사 허무는 일을 맡아라. 마저 하려했으나 엄두가 안 나는구나. 헌이 엄마 정다래에게는 내 통장을 남기네. 소설을 읽고 나의 아버지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안부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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