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를 권하다 -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5
이진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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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강은 전국 대학 교수진의 명강의를 엮은 시리즈로, ‘서가명강의 자매 브랜드이다. [개인주의를 권하다]는 니체 철학의 대가, 우리 시대 대표 철학자 이진우 교수님의 신간이다. 시리즈 다섯 번째 책으로 개인주의자를 꿈꾸며 철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8가지 질문이 담겼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는 개인이 없다는 진단에서 출발했다. 개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지만, 우리는 개인화의 영향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우리 시대에는 정신분열증과 경계선 또는 성격 장애가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신경증은 탐욕과 욕망이 가부장적 권위로 억압받을 때 발현되지만, ‘성격장애는 충동이 자극되고 왜곡되어 이를 만족시킬 대상이 없을 때 일어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새로운 개인이 탄생한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라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마치 요새를 들고 다니는 개별적 개체가 된 것처럼 오히려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힘들어진다.p33

 

내면이 좋은 것으로 가득하면 밖으로 좋게 나타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옛말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본심은커녕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속마음은 착한데 겉으로만 무뚝뚝하다는 말은 그야말로 헛소리인데, 본심이 정말 착한지는 보이는 것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외면은 내면에 우선한다.

 

자기 보존을 위해 필요한 원초적인 나르시시즘과 달리 현대사회의 병리적 나르시시즘은 현대인이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문제로 나타난다. 나르시시즘을 자기 사랑, 자기주장이라고 했는데 라쉬는 자아의 상실이라고 이야기한다. 현대인들은 자아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지만, 자아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파멸을 맞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외부환경의 조그만 변화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감정적으로 출렁거린다. 이때 외부환경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짓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계속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자기계발서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리적 생존을 위해 자아의 기술이 필요하다.




니체는 개인의 탄생을 몇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르네상스와 같은 역사적 전환기에 이기적 개인이 탄생했다. 이기적인 개인은 태양빛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나무들처럼 성장의 경쟁심을 가진다. 이러한 폭발적 이기주의는 번영을 가져올 수도, 퇴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기주의로 축적된 힘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은 개인주의다. 타인의 인정을 통한 자기 인정, 자기 인정을 바탕으로 한 타인의 인정. 이 두 가지가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건강한 개인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존경과 권리를 교환하는 것은 모든 교류의 본질로서 사물의 자연 상태에 속한다는 니체의 말은 여전히 타당하다.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한 우물만 깊이 파서 오랜 기간 축적하는 전문지식보다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트렌디한 정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조직적 혁신이다. 자신의 선택을 완벽하게 확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세대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예게스는 이들을 가리켜 결정장애 세대라고 이야기했다.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 타인과 신뢰를 쌓는 일도 쉽지 않은데, 자신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연악한 기반에 놓인 삶을 확신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일상의 습관루틴을 만들어 존재론적인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만들어두었다면 일상에서의 안정감이 커진다. [개인주의를 권하다]를 읽고 내 삶을 사랑하는 개인으로 사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개인주의, 자존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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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 책 속의 한 줄을 통한 백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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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문학자, 지식큐레이터로 세상에 존재하는 현명한 지식과 그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책은 저자가 경험했던 많은 고민들, 그 고민을 해결할 통찰을 제시해 준 책들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은 베스트셀러 800권을 선정하여 한 권에 모았다. 책을 읽다 제목을 검색 하고, 다음에 읽을 책을 적어두기도 하였다.

 

14개 파트로 구성 되어 있어 순서를 정하지 않고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된다. 파트1 실패, 불안, 좌절, 고통, 자존감, 위안, 치유, 극복하는힘을 시작으로 파트14 창조적아이디어, 자기계발, 천재, 아이데이션, 창의력,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인생에서 겪는 모든 경험은 그 사람의 재산이다. 재산이니만큼 좋은 것만 쌓으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이다. 행복한 나날만 계속되는 인생은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행복도 불행도 아니 그저 그런 나날이 계속되다가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불행한 것이 인생이 아닐까?

 

022 누구에게나 역경은 있다. 특히 젊은 날에 경험하는 여러 힘든 일들은 삶에 대한 연륜이 쌓였을 때 겪는 역경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고, 되돌아 보면 그런 좌절의 순간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추춧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090 버리고 비우기의 최고 경지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물건만이 아닌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 욕심, 집착.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소중한 것만 지니고 살아가고 싶다.

 

내가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내 안의 지식이 줄어 드는 것은 아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내 안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그 사랑이 고갈되는 경우는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다.

177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생각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파장이다. 그리고 파장은 같은 파장을 끌어들인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347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기가 쉬워진다. 8km를 달리는 것보다는 우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 20쪽에 달하는 기획서를 쓰는 것보다 일단 책상에 앉기가 어렵다. 20명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 것보다 일단 전화기를 집어 드는 것이 더 어렵다. 동기부여가 있어도 시작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단 시작을 해야 끝내야겠다는 동기도 부여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의 기본 공식은 이렇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면 행복해진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와 일에 매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656 우리는 평생을 통해 수많은 인연을 쌓는다. 삶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인연들 중에 어떤 인연이 과연 좋은 인연일까 생각해 보면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상력은 창조력과 문제해결력의 기초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지속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인터넷을 뒤지면 웬만한 것을 다 얻을 수 있고 손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다.

753 매일 한 편씩 블로그에 글을 쓰지만,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글을 잘 쓰면 이렇게 매일 쓰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글을 못 쓰니까,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자꾸자꾸 씁니다. 영어 공부든 글쓰기든, 어떤 일을 잘하는 비결은 매일 연습하는 것 말고는 없거든요.

783 ‘인생

후회하는 인생은 이라는 보석만 줍는다.그때 할껄. 배울껄. 고백할껄. 투자할껄. 노력할껄 보람되고 성공한 인생은 라는 보석만 줍는다.노력했다. 시도했다. 고백했다. 배웠다. 믿었다.

 

이 책을 꾸준히 반복해서 읽는다면 베스트셀러 작가 800명의 탁월한 생각을 훔쳐 자기 성장의 밑거름으로 만들 수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읽어야 하는 책을 깊게 음미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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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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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동훈 신부는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천주교 사제의 길을 택했다. 도록 속 그림을 실제로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길을 나설 만큼 여전히 걸어보지 못한 예술의 길에 미련이 크다. 책에 담은 글들은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의 잡지 [분도]에 몇 년에 걸쳐 연재했던 것들을 다듬고 보탠 것이다. 미술과 문학, 교회와 사회, 현재와 과거를 인간이라는 열쇠 말로 통섭적으로 이해하고자 애쓰며 또 이를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총 네 가지로, 현대문명과 오늘의 사회에 관한 질문을 담은 1,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조명한 2,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는 종교와 교회의 내일을 묻는 3, 시대와 이념, 신념과 체제,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힘겹게 피워낸 예술가들의 성취를 담은 4부로 이루어졌다. 책의 표지 그림은 퀴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패질하는 사람들>이다.

 

파시즘이란 말이 과거 로마제국 군대의 권위와 계급을 의미하는 도끼나 화살 꾸러미를 묶던 끈, 파쇼에 뿌리를 둔 것이나 중세 튜턴 기사단의 번들거리는 갑주를 온몸에 두른 히틀러의 초상이나 그들의 예술적 취향은 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것’, ‘근대적인 것은 오히려 역사에 대한 기계적 진보를 확신한 공산주의의 전유물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군림했던 시대의 예술은 엄밀한 의미에서 혁명 예술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준비한예술이고, 오히려 혁명의 진정한 예술적 적자는 다음 세기에나 도래할 낭만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찰스 디킨스가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에 담아낸 모순 가득한 다비드의 시대다.




저자는 도록에서 우연히 작품을 발견하곤 꼭 한번 직접 보겠노라고 마음먹었었다.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을 도스토옙스키도 작품을 두 눈으로 확인하곤 공포에 휩싸여 한동안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바젤이라는 도시는 그를 단순한 종교화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해 봄 아예 시 전체가 신교로의 개종을 선언했다. 성상 파괴 운동과 같은 극단적 폭력만이 아니라, 교회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에 비판적이었던 프로테스탄트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더는 이전처럼 교회로부터 제단화와 같은 성화를 의뢰 받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도 여느 화가들처럼 종교화 대신 초상화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던 것 같다.

 

15세기 이탈리아 중부에서 시작해 북상하며 전유럽을 뒤덮었던 르네상스의 진원지 피렌체가 미켈란젤로의 고향이다. 르네상스의 의의를 인간의 재발견이라고 정의하지만, 왠지 고상하고 관념적으로 들리지만, 예술가들에겐 매우 현실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그는 생애 굶주려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고자 했고, 역사에 붙들려있으면서도 거기에 반항하던 내적 분열로 신음하는 최초의 고독한 근대적 예술가였다.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은 완연한 황혼기의 작품이다. 청년기 완벽한 비율의 <피에타>조각상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하나같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과 과장된 몸짓 등으로 더러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지나 일탈의 매너리즘에 접어든 작품이란 평가도 있지만 매우 풍부한 현실적 모티브를 담고 있다.




뒤러 자신의 정신적 자화상으로 알려진 <멜랑콜리아>는 작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50대 때의 작품이다. 접힌 날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을 암시하는 사다리, 온갖 측량 도구들 사이 턱을 괴고 있지만 번득이는 눈, 저 뒤 동틀녘 서광처럼 빛나는 해는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는 뒤러를 말해준다.

 

모호한 색의 이름이 등장할 때면 수식처럼 따라붙는 화가가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조토는 이 색을 자신만의 것인 양 즐겨 사용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스크로베니 경당의 블루는 화가 자신이기도 하다. 투시도적 비율과 그림에 배경이라는 것을 최초로 도입해 인물들의 몸짓과 행동, 표정을 일상에서 마주할법한 정제되지 않은 현실의 사람들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은 천 년간 고수된 정형의 틀을 부수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이 책은 종교화, 세속화, 그림과 함께 하는 교회 역사는 생소하고 어렵다. 미술 관련한 책을 한 두권 읽어서인지 유명 작품들이 눈에 띄어서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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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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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는 자음과모음에서 2021년 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한 계절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작품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봄의 시 안미옥의 [사운드북]사운드북을 작동하면서 아기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된다. “이해는 젖은 신발을 신고 신발이 다시 마를 때까지 달리는 것이어서”(p11) 사랑은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보고 배워야 가능한 것이다. 사운드북은 아기를 키우는 양육자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육아템인 것 같다. 이 시를 읽는 동안은 잠깐, 자기 자신에게 오롯이 붙들려 읽고, 감상하셨으면 좋겠고, 자연스러운 각자의 흐름과 호흡으로 읽었으면 한다.

 

봄의 소설 손보미의 [해변의 피크닉]은 성장소설이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열한 살 나는 여름방학 부산에 친할머니 집으로 내려간다. 삼촌과 삼촌의 여자, 할머니와 해변가로 갔다.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들다 생각했다. 그 더럽고 지저분한 세계를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은 그 세계의 바깥에 포함되고 싶다는 열망이 반영된 행위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 열망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외국 생활로 이중 언어로 고생하는 꼬마가 왜 그렇게 꽉 맞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았고,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나의 모습에 울었던 것은 누구나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지만, 그게 곧 모든 사람의 삶이 공평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겠지.

 

여름의 시 신이인의 [불시착]은 오랫동안 꾸고 있는 꿈을 체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심정이 담겨 있다. 운석이 떨어져 거실 바닥이 패이고 별이 선물처럼 왔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불시착 노래가 떠올려진다.

 

여름의 소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K-장녀로서 의무가 어깨를 누른다. 성인 웹툰을 그리는 친한 언니는 탈모약을 복용하면서 담배를 다시 피웠다. 마조는 술집-레종 루틴을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흡연자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집을 비워줘야 함을 걱정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동네를 걷는데 시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타주의자. 휴머니스트. 누군가 나를 쉬게 해주기 위해 만든 집인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만큼의 공간에 욱여넣기 위해 만든 집인지 명확하게 느끼며 엄마와 미조는 집을 구하러 다녔다. 미조는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살 집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미조의 엄마처럼 일상과 창작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병행하는 존재들을 소설로 썼다.

 

가을 시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는 우리가 자라온 시간과 늙어갈 시간보다 오래된 나무들을 생각한다. 열매들이 나무에 매달린 채로 썩어갈 때 우리는 꽃의 모양을 본다.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물질이 형태를 결정하는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시간을 생생하게 느끼고 바라본 경험을 통해 이 시를 쓰게 되었단다.

 

가을의 소설 최은영의 [답신]은 언니의 딸이자 조카인 너에게 보내는 편지다. 네 살 무렵 엄마와 헤어지고 고모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면서 아빠는 일하러 돌아다녀서 두 딸들에게 무심했다. 21살 언니는 15살 많은 교사와 결혼을 했다. 그가 언니에게 좋은 사람이고, 언니의 삶이 내가 분명히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소설은 실패하는 사랑이지만 계속되는 사랑의 이야기이며 그 나이였을 때의 세상을 향한 나 자신에게 보내는 대답이다. 저자의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모른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겨울의 시 조혜은 [모래놀이]는 누구도 도울 수 없기 때문에 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굉장한 절망에 떨어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돌봄의 관계와 늘 마주하는 놀이의 세계에 대해서 모래놀이터에서 여러 해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털어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과 감정에 기대어 쓴 시다.

 

겨울의 소설 염승숙의 [프리 더 웨일]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직장을 다니고 더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나의 이야기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과 직장인으로 사는 현실이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신춘문예 당선자라 경력직으로 입사하였고 직장과 가정 사이, 존재의 의미, 노동의 책무는 결국 이 세계와 사회에서 차지해야 하는 자리에 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배경으로 싱글맘이던 나와 또 다른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 있는 시소는 소설은 자주 읽지만 시는 잘 읽지 못했는데 소설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시소 시리즈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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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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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 작품을 보려고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거리 곳곳에 미술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파트 단지, 회사 건물, 식당가 건물 앞 등 어렵지 않게 야외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장점으로 관람 시간 제한 없이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 가득하다.

 

여의도 빌딩 숲 사이 상큼하면서도 당당한 레몬색 조각은 김병호 조각가의 작품으로 IFC 서울 건물들이 자 형태로 감싼 중정의 초록 잔디 위에 놓인 이 노란 조각물은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길에 있다. 작품명 <조용한 증식>의 외양은 파스타 면 다발을 움켜쥐고 중간쯤에서 구부린 뒤 한쪽 끝을 부채처럼 펼친 형국이다. 꽃의 수술과 꽃잎을 합성한 느낌이기도 하고, 꽃 피는 장면을 초고속으로 촬영하여 처음과 마지막을 합친 느낌이기도 하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상은 김세중 조각가의 작품이다. 동상은 통치자가 국민에게 통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구에서는 19세기에 엄청나게 생겨났다. 동상이 국내에 건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미술이었다.




울릉군 북면 추산리. 병풍처럼 둘렀나 수직 암벽의 귀퉁이가 송곳니처럼 우뚝 솟아 있어 송곳산으로 불리는 산 아래, 코스모스 리조트가 있다. 객실 수는 많지 않아도 되고 수익이 적게 나도 좋은데 버킷 리스트에 올릴, 그런 건축물을 지어주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세계적인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신축 사옥 일명 달항아리 건물로 불리는 신사옥이다. 리도 헤어린스, 리도 푸로틴 삼푸 1980년대 유행했던 제품인데 추억이 돋는다. 건축가 치퍼필드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공중정원의 연못 바닥은 신사옥의 자랑인 거대한 아트리움 유리 천장에 닿아 있다. 자연 채광이 건물 로비까지 투과하도록 얕은 물로 채워놓았다.

 

1974년 무렵, 세종문화회관 설계 공모에 당선된 뒤 예산 부족으로 머리를 싸매던 엄덕문 건축가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평양대극장, 인민문화궁전 등 한옥 지붕 형태를 띤 평양의 대규모 문화시설을 거론하며 세종문화회관 설계를 변경하라는 날벼락 같은 지시를 했다. 엄덕문은 세종문화회관 건축에서 전통을 우리 식으로 어떻게 현대화했을까. 그가 거부한 대로 세종문화회관에는 한옥의 기와지붕과 서까래 형태는 없다. 대신 추녀와 서까래를 추상화해 그런 전통적인 미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통 목조건축에 쓰이는 배흘림기둥 형태에서 따왔다. 전통 그대로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한국적인 냄새가 난다. 추녀와 서까래, 공포, 기둥 등에서 전통 건축이 지니는 선()의 맛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의 한 아파트에 설치미술가 김승영의 작품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 작가가 직접 쓴 작품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들만의 안식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실적인 장소, 마음속의 풍경 또는 그리운 사람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마음속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중략) 작품에서 발견되는 문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정 전달과 대화의 매개가 되기를 바란다.“(p219) 작가가 벽돌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2001년 무렵, 벽돌을 쌓아 만든 벽체 위에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영상으로 흘려보내는 작품을 ‘PSI 보고전을 통해서다. 벽돌은 개체가 모여 담이 되고 성이 된다.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 예술이 있는 지하철역을 표방하고 국내외 작가와 건축가들의 예술 작품을 설치한 것은 20193월이다. 서울시가 전문가들과 함께 꾸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프로그램에 녹사평역이 대상지로 선정됐다. 제목은 지하예술정원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식물과 연관 있다. 역명인 녹사평은 성루 용산구에 있던 조선시대의 지명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온 작품이 갖는 한계는 적지 않다. 작품 옆에 큼지막하게 붙은 코로나19 방역 지침 안내판, 개찰구의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프레임 등 시각을 어지럽히는 요소들이 오롯이 작품 감상하는 것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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