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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평점 :
이 책은 미술 작품을 보려고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거리 곳곳에 미술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파트 단지, 회사 건물, 식당가 건물 앞 등 어렵지 않게 야외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장점으로 관람 시간 제한 없이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 가득하다.
여의도 빌딩 숲 사이 상큼하면서도 당당한 ‘레몬색 조각’은 김병호 조각가의 작품으로 IFC 서울 건물들이 ‘ㄷ’자 형태로 감싼 중정의 초록 잔디 위에 놓인 이 노란 조각물은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길에 있다. 작품명 <조용한 증식>의 외양은 파스타 면 다발을 움켜쥐고 중간쯤에서 구부린 뒤 한쪽 끝을 부채처럼 펼친 형국이다. 꽃의 수술과 꽃잎을 합성한 느낌이기도 하고, 꽃 피는 장면을 초고속으로 촬영하여 처음과 마지막을 합친 느낌이기도 하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상은 김세중 조각가의 작품이다. 동상은 통치자가 국민에게 통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구에서는 19세기에 엄청나게 생겨났다. 동상이 국내에 건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미술이었다.
울릉군 북면 추산리. 병풍처럼 둘렀나 수직 암벽의 귀퉁이가 송곳니처럼 우뚝 솟아 있어 송곳산으로 불리는 산 아래, 코스모스 리조트가 있다. 객실 수는 많지 않아도 되고 수익이 적게 나도 좋은데 버킷 리스트에 올릴, 그런 건축물을 지어주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세계적인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신축 사옥 일명 ‘달항아리 건물’로 불리는 신사옥이다. 리도 헤어린스, 리도 푸로틴 삼푸 1980년대 유행했던 제품인데 추억이 돋는다. 건축가 치퍼필드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공중정원의 연못 바닥은 신사옥의 자랑인 거대한 아트리움 유리 천장에 닿아 있다. 자연 채광이 건물 로비까지 투과하도록 얕은 물로 채워놓았다.
1974년 무렵, 세종문화회관 설계 공모에 당선된 뒤 예산 부족으로 머리를 싸매던 엄덕문 건축가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평양대극장, 인민문화궁전 등 한옥 지붕 형태를 띤 평양의 대규모 문화시설을 거론하며 세종문화회관 설계를 변경하라는 날벼락 같은 지시를 했다. 엄덕문은 세종문화회관 건축에서 전통을 우리 식으로 어떻게 현대화했을까. 그가 거부한 대로 세종문화회관에는 한옥의 기와지붕과 서까래 형태는 없다. 대신 추녀와 서까래를 추상화해 그런 전통적인 미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통 목조건축에 쓰이는 배흘림기둥 형태에서 따왔다. 전통 그대로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한국적인 냄새가 난다. 추녀와 서까래, 공포, 기둥 등에서 전통 건축이 지니는 선(線)의 맛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의 한 아파트에 설치미술가 김승영의 작품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 작가가 직접 쓴 작품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들만의 안식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실적인 장소, 마음속의 풍경 또는 그리운 사람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마음속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중략) 작품에서 발견되는 문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정 전달과 대화의 매개가 되기를 바란다.“(p219) 작가가 벽돌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2001년 무렵, 벽돌을 쌓아 만든 벽체 위에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영상으로 흘려보내는 작품을 ‘PSI 보고전’을 통해서다. 벽돌은 개체가 모여 담이 되고 성이 된다.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 ‘예술이 있는 지하철역’을 표방하고 국내외 작가와 건축가들의 예술 작품을 설치한 것은 2019년 3월이다. 서울시가 전문가들과 함께 꾸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프로그램에 녹사평역이 대상지로 선정됐다. 제목은 ‘지하예술정원’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식물’과 연관 있다. 역명인 ‘녹사평은 성루 용산구에 있던 조선시대의 지명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온 작품이 갖는 한계는 적지 않다. 작품 옆에 큼지막하게 붙은 코로나19 방역 지침 안내판, 개찰구의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프레임 등 시각을 어지럽히는 요소들이 오롯이 작품 감상하는 것을 방해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