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수성 수업 -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감수성 수업]은 삶을 견디는 힘과 세상을 새롭게 느끼는 힘을 길러준 감수성 훈련의 기록이다. 저자는 매일 훈련해온 감수성 덕분에 행복한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훈련 방식은 더 많이, 더 자주 느끼고, 깨닫고,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며, 타인과 함께 공감하기다.
책은 개념과 낱말, 장소와 사물, 인물과 캐릭터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아무리 충격적 상황에서도 ‘그동안 내가 읽고 배우고 경험한 사건들’ 속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내고, 그 모든 순간의 깨달음을 지혜롭게 종합해 영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수없이 타인에게 실망할지라도 우리는 혼자선 자신을 위로할 수는 없는 존재이며, 타인에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처의 뿌리일지라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를 견디게 해준 작은 위로는 식물을 바라보는 기쁨이라고 한다. 식물을 키우는데 재주가 없었지만, 꽃다발이나 화분을 선물 받을 때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속에 진정한 휴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티격태격, 겉은 무뚝뚝하고 속만 따듯한 ‘츤데레’같은 사랑 말고, 겉과 속이 비슷하게 다정하고 예의 바른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낳아줘서 고마워. 내 엄마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가장 따스한 사랑이 마침내 우리를 버티게 한다.
매일 진지한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리뷰형 글쓰기를 추천한다. 매일 아주 짧은 글을 한 편씩 읽고 그 글에 대한 느낌을 써보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꿈꾼 삶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글쓰기를 해보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세 번 정도 읽은 뒤 문장을 가다듬고 더 나은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궁리한다.
저자는 힘들 때마다 미래의 나를 향해 구조신호를 보낸다. 미래의 나는 매번 온힘을 다해 나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보다 자유롭고 강인한 미래의 나를 통해 매일매일 치유되고 있다.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일으키고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이방인이 될 때도 있는데 타인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불교의 자비심과 기독교의 이웃 사랑에 공통으로 숨어 있는, 인류를 살리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 챙김의 비결이 아닐까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매일 상처받지만, 타인을 통해 매일 위로받기도 한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온갖 비난의 말들은 날카롭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건네는 말, 나를 지켜주는 책 속 문장, 영화나 드라마 속 명대사는 따스하다.
가끔은 사람들이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데서 벗어나 상상하고 토론하며 마음껏 꿈꾸었으면 좋겠다. 남들의 비웃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제 갈길만 바삐 걸어간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낭만은 도달할 수 없는 꿈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런 낭만을 품고 살아가는 삶에는 언젠가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아스라한 희망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기차는 자체로 먼 곳에의 그리움을 상징하는 미디어였다.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가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를 겪는다는 설정은 근대 초기 문학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광수의 <무정> 속 주인공, 닥터 지바고의 눈 덮인 설원에서 라라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에 가득 차 기차를 타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 시마무라가 요코를 처음 만난 장소도 기차 안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에게 기차가 ‘유혹에서의 도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면, 브론스키에게 기차는 ‘도망치는 그녀를 붙잡는 추적’의 공간이다.
저자의 감수성에 큰 영감을 준 사람이 수전 손택이다. 손택의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비평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손택은 비평가에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에서 연극연출가로 활동했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이 공작새의 찬란한 무지갯빛 날개처럼 한 몸에서 우러나온 여러 개의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어떤 고통에도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세상 모든 꽃을 잘라버릴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라고 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기 힘들다면, 당신에게도 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가장 나다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