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용이 울 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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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야기 여섯 번째 책인 <땅속의 용이 울 때> 땅속의 용이라는 제목의 정체는 하찮아 보이는 흙 속의 지렁이다. 60년을 이어온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문화 대탐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즈 가운데에서도 또 다른 특별함이 있는데 한국문화론의 효시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직접적으로 수정 보완하였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한국인이란 누구일까. ‘한국적이란 무슨 의미일까를 일깨워주는 듯 하다.

 

다윈은 오랜 여행으로 약해진 몸을 요양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왔는데 다음해부터 지렁이 연구를 시작한다. 지렁이가 생명이 살아가는 흙을 만든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것이다. 지렁이가 한 해에 얼마나 많은 흙을 만드는지 계측할 수 있는데 다윈은 40년간 그 지렁이 관찰을 했다.

 

저자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다고 했다. 2015년 무렵 강연을 할 때였는데 한밤중에 땅에서 들리는 소리를 녹음해서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들려주고 어떤 소리 같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윙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읭~~ 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는 지렁이 울음소리였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서문에 나오는 노부부 이야기는 실화이다. 아리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 정선, 밀양, 진도의 아리랑을 3대 아리랑이라고 하는데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래로 생활 현장인 들과 논에서 불리던 흙의 노래이다. 여느 다른 노래와는 달리 원형대로 있지 않아 민중의 공감력이 형성될 때마다 노랫말이 바뀌어 왔다. 두 노인이 손을 부여잡고, 또 그 보따리를 들고 있는 시골 장터 풍경을 보고 천년을 살아온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쫓겨 가던 뒷 모습, 우리 역사 속에서 허둥지둥 가축처럼 쫓겨 간 한민족의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던 책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다.

 

시골에서 자랐는데, 기차를 타고 고향에 도착했던 사람들은 모두 늑대와 같았다. 일본인들이었고, 조선인 아이들에게는 형을 어머니를 누이를 능욕한 짐승 같은 사람들이다. 기차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고 기차를 타고 가는 조선인들은 죄다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늘 한국 사람이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민소득으로 따져도 잘 해봐야 우리는 세계 10위에서 13위를 왔다갔다 하니까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10개 나라도 넘는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민족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고 가슴에 못질한 적도 없고 남을 침해하지 않은 민족 가운데 우리만큼 사는 민족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한다. 우리 역사가 밟은 자의 역사가 아니라 밟힌 자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영웅이 생겨나고 지도자가 있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은 일제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그 시대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23~24, 대학 4학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평생을 글을 썼다. 잘나거나 지식이 특별히 많아 강연하고 글 쓴 게 아니라 해방 이후 70여 년간 다양한 시대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 경험을 글로 꾸준히 옮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갓길 표시또는 갓길 없음표시가 나오는 걸 보게 될 것인데 저자가 만든 말이다. 그래서 별명이 갓길 장관이 되었다. 문화부 장관 하면서 뭘 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한 일이 없는데 고속도로 타고 가다 보면 , 내가 그래도 이름 하나는 바꿨구나싶단다.

 

부엌에서 가장 천한 것이지만 또 가장 요긴한 것이 부지깽이다. 부지깽이는 무엇이나 될 수 있어서 아무 나뭇가지나 하나 꺾으면 다 부지깽이로 쓸 수 있다. ‘부뚜막 위 부지깽이가 돼라라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 말인가. 그런 농담 있는데 홍도야 울지 마라를 한마디로 줄이면 !’이 된다는 그것과 마찬가지 말이다.

 

1998년부터 동아제약이 주최한 대학생 국토 대장정 행사의 고문을 맡은 적이 있었다. 임진각까지 20일 동안 걷는데 남녀 학생들의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을 보았다. 죽어서 다 흙이 되는데 나보다 앞서서 죽어간 그 사람들의 피가 내 속으로 들어온다. 신토불이라는 말을 할 때 저 흙이 내 몸이고 저 바람이 내 영혼이 되는 것이다. 대장정을 끝내고 마지막 들어오는 장면은 참 감동적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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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날개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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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 문학상 수상 작가 아사히나 아스카가 쓴, 출간 1개월 만에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온 중학교 입시 소설이다. 일본의 학기제도와 중고교 일관제, 지정 추천제, 사립중학교 입시, 편차치 등 용어를 보니 일본의 교육열이 대단하다.

 

소설은 전업주부가 된 아리이즈미 마도카가 여덟 살,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츠바사(날개)가 우연히 본 전국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으며 시작된다. 대형 입시학원 에이치에 들어간 츠바사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도전하기로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가족들의 지나친 관심과 주변의 간섭에 흔들리며 마도카와 츠바사는 길고 어두운 터널로 빠져들게 된다. 저자 역시도 자녀의 중학교 입시를 경험했기에 글을 쓰는 내내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 입학시험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률과 엄청난 사교육비가 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의 중학교 입시 시험 준비에 매달려 매일 녹초가 되어 있던 그때 반드시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안타까운 장면이 많았는데 특히 츠바사는 수영을 좋아한다. 중학교도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무조건 좋은데 수영 기록 점수가 모자라서 결승대회에 못 나가서 속상하다. 수영, 수학, 국어, 피아노 배우느라 노는 날이 없어진다고 했다. 학원 선생님은 아이가 머리가 좋다며 사천왕도 노려볼 만하다고 하였고 학원에 보내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니 조건을 걸었다. 수영 열심히 할 것, 학교 결석하지 않을 것이다.

 

마도카는 사천왕에 장녀를 들여보낸 6학년 학부모의 심경을 듣고 싶어 모임에도 참석했다. 거기에서 반에 떨어졌을 때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으니 극복이고 뭐고 다음에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츠바사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데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학부모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책이 나왔다는 문구가 떴고 구입해서 읽었다.

 

마도카가 6학년 시절을 떠올린다. 30명도 안되는 작은 초등학교여서 남녀 할 것 없이 사이가 좋았고 성적은 좋아서 끈기 있게 열심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입시 경험이 없는 마도카에 비해 과거 아버지에게 맞아가며 혹독하게 입시를 치른 남편이 아들에게 똑같이 폭력을 행사한다. 남편의 스파르타식 교육관에 혼란스러운 충격을 느끼면서도 자신 때문에 아이가 뒤처질까 염려가 된다. 마도카가 입시 정보를 모으고 생각을 교환하는 장소는 인터넷 세상 안에 있었다. 시간은 금방 지나고 호시나미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의 합격 발표가 뉴스 방송으로 보도되고 나면 한 것도 없이 내 아이의 학년이 바뀐다는 생각에 두렵다.

 

남편은 중학교 입시에 좋은 추억이 없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학교에 넣어줘서 지금의 대학, 회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츠바사가 차라리 공부를 더 못했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이런 길을 가지 않아도 됐는데라고 생각한다. 궁지에 몰린 츠바사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두려워 들통날 거짓말로 시험 점수를 조작하게 되었고 편의점 화장실로 숨어버린다.

 

일단 해보고 힘들면 관두면 되지라고 에이치에 등록시키기 전에 생각했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시작했던 일은 점점 과열되고, 모의 성적에 감정이 수시로 바뀌고 남편은 아이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치다 소리를 지르는 지경까지 생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도카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츠바사가 살아 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마음 다잡고 공부를 했고 부부는 각각 다른 학교에 합격자 발표 게시판에 와 있다. 츠바사는 어디에 합격했을까?

 

이 소설은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자녀를 기르듯, 얽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치열한 공부를 시키지 않았지만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부모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공부는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고 아이가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날개가 꺾이지 않게 잘 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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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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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235월 개인전 비 오는 날을 포함해 서울과 미국에서 9번의 개인전을 했고 1995년 사진예술사가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제목이 카메라 없는 사진가일까 의문이 들었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글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저자는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어 범죄를 뒤집어쓰고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힘들었던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고 독서를 하게 되었고, 소설을 읽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보다 철학서들을 탐독하였다. 그곳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시의 형식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생각을 표현해왔고 계절이 열 번쯤 바뀌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노트가 무려 17권에 달했다.

 

항소심의 선고가 있던 날 곧바로 출력을 신청했고 소지라 부르는 사동 도우미가 되었다. 천백 원의 노동 대가를 받는 노역 사동이었다.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지만 적어도 몸을 가눌 수 있었고 호흡의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생활은 언제나 고독하지만 독서의 양이 부쩍 늘어났다.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인데 고독함이 머무는 장소는 아니란다. 사진 작가였던 그에게 카메라가 사라지고 펜과 노트만 남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내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멀리 본다는 것이,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오직 한 곳 희망의 장소는 샤워장이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한 그 장소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가며 몸을 씻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고통을 피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하나도 머릿속에 머물지 못하고 그냥 시선만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구치소를 단골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13년이나 옥살이를 했다는 남자는 다양하게 구매력을 보이다가 양손을 묶이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서에서의 행동들과 이곳에서의 당당함이 다른 형태의 형벌을 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긴 여행이었다.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생의 행로가 모두 여행인 것을 왜 전에는 모르고 있었는지.p77

 

사동 도우미들이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방에서 음식 등 물품을 받는 것을 범치기라고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범치기를 해 본적은 없다. 대부분 생활은 두 평의 공간에 갇혀 살아가야 하니 죽은 멸치처럼 잠을 자야 한다. 이제 어항 속의 붕어와 같아진 것이다. 먹고 자며 또 싸우고 웃고 해야 한다. 0.2평의 화장실에서 그릇을 씻고 목욕을 해야 한다. 낮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TV 시청인데 법무부의 보라미 방송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한다. 광고는 삭제하고 보여주는데도 시청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삶들의 일상적 단어인 듯 보인다. 의정부 665평의 공간에 앉아 11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한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그리고 떠난 사람에게도 묻는다. 그래서 행복해졌냐고.

 

새벽 555, 아직은 어둠이 남아있는 시간에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정해진 순서에 의해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을 받아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방에 온 순서대로 7명이 모두 씻고 나오면 습관처럼 두유에 빨대를 꽂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p100

 

교도소이건 구치소이건 모든 요리는 끓는 물로 인해서만 가능하였다. 라면을 익혀서 고추장, 소시지, , 김 등을 넣어 비빈 비빔국수가 제법 수준급이라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머물렀다. 저자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유일한 취미가 커피였다. 스틱으로 된 커피를 마셔야만 했는데 어느 날 최고급 인스턴트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부정한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커피를 매일 맛보는 행운아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뛰지 않는다. 교도관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기에 타인에 의해 길들여 녹차 잎을 따는 원숭이를 닮았다고 표현한다.

 

이 책은 시와 산문으로 되어 있고 20여 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곳의 낯선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내면을 잘 묘사하였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으나 결국에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사람이라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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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음, 김민정 옮김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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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그늘 속에 방치됐던 본처 주안의 비통하고 적막한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 차오리화는 평생 루쉰의 그늘에 가려져 살아야 했던 주안의 내밀한 삶, 그녀의 쓸쓸한 결혼생활을 시종 담담하면서도 세세하게 풀어냈다.

 

주안은 저우 씨 집안에 시집간 후 3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시어머니를 모셨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 외에 집안일을 돌보아야 했다. 주안은 구시대의 평범한 인물인 그녀가 신문화운동의 선봉적인 인물이었던 루쉰 집안에 시집을 갔기에 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메일과 독자들의 피드백을 꾸준히 받았고 여성의 입장에 서서 주안이라는 구식 여성에게 깊은 동정을 보내며 탄식하고 안타까워했다. 가정주부였던 주안은 루쉰의 사후에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하니 적막한 세상 고독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루쉰의 혼사는 어머니 루뤠이가 책임지고 도맡았다. 당시 주안의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루뤠이는 주안이 온순하고 예의가 바라서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주가 사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양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쉰 집안의 조건은 형편없었으며, 루쉰은 막다른 지경에 이르러 난징으로 신학문을 공부하러 간 것으로 보였다.

 

사오싱에는 예로부터 딸은 스물여섯을 넘겨서까지 데리고 있지 않는다라는 규율이 있었는데, 주안은 이미 28세가 되어버렸다. 루 부인의 회고에 따르면, 루쉰은 일본에서 편지를 써서 주 씨 집안 처녀에게 전족을 풀라고 요구했다. 주안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야 하는 것은 좋은데,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전족을 풀어야 하고, 둘은 학당에 다녀야 한다. 주 씨 집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살아서 부부 같지 않았다. 사실 주안이 생과부와 다를 바 없이 지내는 나날도 분명 힘들었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는 그녀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 마음속 번민을 해소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몇몇 지인들의 회상에서 주안이 베이징에 있을 때 한가해지면 말없이 혼자서 물담배를 피우곤 했음을 알 수 있다.

 

루쉰은 쑨푸위안에게 사석에서 구식 부인에 대해 자주 불평했던 것 같다. 주안의 요리 솜씨는 상당히 훌륭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도 주안은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주안은 남편을 잘 섬기고 시어머니께 효도하면 언젠가는 상대방이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주안의 생각과는 달리 루쉰은 쉬광핑과 함께 떠났다. 두 사람이 상하이에서 동거한다는 사실도 둘째 마님이 알려주었다. 베이징에서 주안의 곁에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아무도 마음속 번민을 풀어줄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6, 루쉰은 상하이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지킨 사람은 쉬광핑, 저우젠런과 일본 간 호부뿐이었다. 루쉰의 죽음은 고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오랜 세월 외부와 거의 단절된 세상에서 살아온 주안의 슬픈 표정은 조문객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문에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루쉰이 사망한 해에 쉬광핑은 서른여덟이었고 아들 하이잉은 일곱 살이었다.

 

루뤠이는 죽기 전에 자신에게 매달 주던 용돈을 자신이 죽은 후에도 평생 자신을 모신 며느리에게 계속 지급하라고 저우쭤런에게 신신당부했다. 주안에게도 그녀의 돈이니 꼭 받으라고 당부했다. 가끔은 쉬광핑이 주안에게 생활비를 부쳐주었는데 두 차례에 걸쳐 보내주신 60만 원은 진작에 받아서 쌀과 밀가루, 석탄 사는데 썼네. 나는 돈을 벌 능력이 없으니 최대한 아껴 써야지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년이 흘러 루쉰이 떠난 지 10주기가 되었을 때, 백발이 성성한 두 여인은 라일락 나무가 하늘거리는 정원에서 재회했다. 감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들의 최후의 만남이었다.루쉰 부인 주안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기자는 다음과 같이 그녀의 일생을 탄식했다. “주 부인은 쓸쓸하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쓸쓸한 세상에 이렇게 쓸쓸한 사람이 하나 사라졌다.”

 

루쉰은 중국의 위대한 문호이자 사상가, 문화 투사, 청년들의 스승이라고 존경을 받으며 살았으면서 구식 여성이고 배움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었던 부인 주안의 일생이 너무 비참하고 암담했을 것을 생각하니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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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 끌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글쓰기 기술
도제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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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끌렸다. 내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 편의 에세이를 써보려 할 땐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하다.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쓰는 건 늘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현직 편집자이자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하였고 에세이 쓰기의 방법과 노하우를 담았다.

 

저자는 글이란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법서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랐단다. 좋은 에세이의 특징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것을 자신의 글에 반영하도록 돕는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장 마다 주제에 맞게 직접 써보는 실습란이 있고, 다 읽고 따라서 쓰고 나면 한 편의 에세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숲속 오두막에서 살면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 저자의 이야기에 사회과학적 관점을 더한 에세이다. 경수필이 가벼운 소재를 다룬다고 해서 메시지가 가볍지 않은 법이다. 독자는 저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해 읽을 따름이지, 무엇이 더 고급 문학이다 아니다 할 수는 없다.

 

저자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받은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솔직하게 써도 괜찮으냐는 거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대로,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공중에 내보인 셈이다. 좋은 에세이의 관건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멋스러운 말로 하자면 진솔함이다. 솔직하다는 건 자기 이야기를 용기 있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에세이란 바로 그것을 꺼내서 타인에게 공개하는 글인 것처럼 솔직한 글이 호소되는 이유는 아마도 에세이스트 이반지하의 말대로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있게 몰입하면 그것은 보편에 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솔한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서 한도 끝도 없이 솔직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독자가 궁금해하지 않을 내용까지 모두 끄집어내 글에 반영하면 주제를 약화하기도 하고, 지루해지고, 호감을 잃는 포인트가 된다. 그러니까 지나친 솔직함은 무리를 일으킬 수도 있다. 글을 타인에게 공개할 경우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솔직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을 사람에 비유하면 표지는 옷이나 머리 모양, 메이크업 같은 외양이 될 테고, 안에 실린 내용은 생각이 될 테고, 제목은 이름이 될 것이다. 만약 그 글이 책에 담기지 않고 한 편의 글뿐이라면 제목은 더욱 중요해진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일까? 사용 어휘가 풍성하고, 문장 연결에 리듬감이 있으며, 참신한 비유가 있어 글의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가닿는다는 뜻이다. 독자는 여러곳에 밑줄을 치고, 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글을 기억한다.

 

글에서 첫 문장이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첫 문장과 첫 문단이 중요할 텐데 급한 성격 못 버리고 어서 본론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했다. 다만 처음부터 첫 문장과 첫 문단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첫 문장과 첫 문단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면, 시작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끝 문장을 인상적으로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이 쓰이는 방식에는 수미상관이 있다. 첫 문장과 호응하는 문장을 넣어서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타인의 평이란 글쓴이 입장에서는 야누스 같은 존재이다. 한쪽에는 기대심이 다른 한쪽에는 긴장감이나 반감이 드리워 있다. 내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그래도 나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글을 쓰면서 확신을 얻은 포인트가 있다면, 설령 그에 대해 안 좋은 지적을 받아도 고수하는 지은이만의 뚝심이 필요하다.

 

아직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에게 가장 손쉬운 글쓰기는 일기이다. 처음에는 단순 사실 나열도 괜찮다.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런 기분이었다 정도로만 써도 괜찮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어느 날은 그날의 일을 좀 더 상세히 기록하게 되고, 거기에 감정을 싣게 되고, 결국 자신의 생각까지 정리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즐거웠다. 작법서, 특히 에세이 작법서를 쓰리라곤 예상해본 적이 없기에 뭔가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 좋은 에세이도 많아서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하는 끝말이 신선하고 좋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날까지 열심히 독서하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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