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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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235월 개인전 비 오는 날을 포함해 서울과 미국에서 9번의 개인전을 했고 1995년 사진예술사가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제목이 카메라 없는 사진가일까 의문이 들었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글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저자는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어 범죄를 뒤집어쓰고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힘들었던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고 독서를 하게 되었고, 소설을 읽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보다 철학서들을 탐독하였다. 그곳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시의 형식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생각을 표현해왔고 계절이 열 번쯤 바뀌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노트가 무려 17권에 달했다.

 

항소심의 선고가 있던 날 곧바로 출력을 신청했고 소지라 부르는 사동 도우미가 되었다. 천백 원의 노동 대가를 받는 노역 사동이었다.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지만 적어도 몸을 가눌 수 있었고 호흡의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생활은 언제나 고독하지만 독서의 양이 부쩍 늘어났다.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인데 고독함이 머무는 장소는 아니란다. 사진 작가였던 그에게 카메라가 사라지고 펜과 노트만 남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내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멀리 본다는 것이,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오직 한 곳 희망의 장소는 샤워장이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한 그 장소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가며 몸을 씻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고통을 피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하나도 머릿속에 머물지 못하고 그냥 시선만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구치소를 단골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13년이나 옥살이를 했다는 남자는 다양하게 구매력을 보이다가 양손을 묶이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서에서의 행동들과 이곳에서의 당당함이 다른 형태의 형벌을 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긴 여행이었다.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생의 행로가 모두 여행인 것을 왜 전에는 모르고 있었는지.p77

 

사동 도우미들이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방에서 음식 등 물품을 받는 것을 범치기라고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범치기를 해 본적은 없다. 대부분 생활은 두 평의 공간에 갇혀 살아가야 하니 죽은 멸치처럼 잠을 자야 한다. 이제 어항 속의 붕어와 같아진 것이다. 먹고 자며 또 싸우고 웃고 해야 한다. 0.2평의 화장실에서 그릇을 씻고 목욕을 해야 한다. 낮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TV 시청인데 법무부의 보라미 방송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한다. 광고는 삭제하고 보여주는데도 시청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삶들의 일상적 단어인 듯 보인다. 의정부 665평의 공간에 앉아 11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한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그리고 떠난 사람에게도 묻는다. 그래서 행복해졌냐고.

 

새벽 555, 아직은 어둠이 남아있는 시간에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정해진 순서에 의해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을 받아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방에 온 순서대로 7명이 모두 씻고 나오면 습관처럼 두유에 빨대를 꽂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p100

 

교도소이건 구치소이건 모든 요리는 끓는 물로 인해서만 가능하였다. 라면을 익혀서 고추장, 소시지, , 김 등을 넣어 비빈 비빔국수가 제법 수준급이라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머물렀다. 저자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유일한 취미가 커피였다. 스틱으로 된 커피를 마셔야만 했는데 어느 날 최고급 인스턴트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부정한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커피를 매일 맛보는 행운아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뛰지 않는다. 교도관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기에 타인에 의해 길들여 녹차 잎을 따는 원숭이를 닮았다고 표현한다.

 

이 책은 시와 산문으로 되어 있고 20여 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곳의 낯선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내면을 잘 묘사하였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으나 결국에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사람이라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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