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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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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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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
김규범 지음 / 대한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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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튜브 채널 <사월이네 북리뷰>를 통해 고전문학을 비롯 다양한 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라고 이야기하는 서양 고전문학 22편이 녹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음을 가진 이들의 예상 밖 행동에 당황할 뿐이다. 과연 당신이 생각하는 좋음이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진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게 하려면 내가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고전을 추천한다. 고전을 읽고 필터링을 하며 사색을 할 수 있다. 고전에는 실패도 있고 성공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니 스스로 배울 수 있다.

 

타인은 개인의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자신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나는 절대적인 나로 존재한다. 비교는 나의 부족함을 드러낼 뿐이다. 소설 <싯다르타>를 통해 세상이 말하는 좋음을 이야기한다.

 

싯다르타는 속세를 경험하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속세는 그가 계속 버리려고만 한 욕망, 분노, 욕심, 사랑, 물질 등을 받아들이기로 한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오랜 친구인 고빈다와 재회했다. 두 사람은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파인 노인이 되었다. <싯다르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사례는 남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성은 각자의 만족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 번 읽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모든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내 행동은 나만의 개성에 기인하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나로 설정해야 한다. 타인이 좋다는 것이 아닌 내가 좋은 것을 찾고, 누가 뭐라 해도 내 생각이 옳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삶에 당당함과 만족을 줄 것이다.

 

저자는 고전문학 완독이 어렵다는 말은 완독을 못 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완독 이후다. 읽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 읽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였다.

 

조심스러운 행동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차별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상대를 멸시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인해 생겨난 미움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상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외투>의 아카키는 9등 문관으로 성실하게 일에만 집중한다. 그는 매년 큰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을 외투 한 벌로 버텨왔지만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꽤 비싼 가격을 치르고 새 외투를 장만한다. 연회에 참석했다 늦은 밤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중요 인사에게 핀잔과 질책만 듣고 발길을 돌린다. 결국, 절망한 채 집에 돌아온 아카키는 끙끙 앓다가 사망했다. 어느날 부터 아카키의 유령이 도시에 출몰해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기 시작한다. 그 중요 인사의 외투를 빼앗은 후에야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이렇듯, 시선은 평등해야 한다. 인간이 존재하기에 예의와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선이 평등해지면 그 순간부터는 이해하지 못할 인간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고전문학을 읽는 것을 고전 독서라고 하는데 이 말을 줄여서 고독(古讀)’이라 부른다. 고전은 폭포, , 개울 등처럼 각자의 모양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힘을 전할 영감을 전하니까. 마지막 에필로그를 보고 제목을 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인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남성의 자서전을 읽어보는 액자식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자신들과 마주하는 매우 사적인 소설 이다. 지나온 삶에서 후회를 찾아내기는 쉽다. 반대로 좋은 기억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우리 삶에 후회할 일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적기 때문에 더 쉽게 찾는 것이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며 어려움에 부닥친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유이다. 저자는 책에서 제안하는 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이기적 평등, 수평적 인간관계, 나만의 질서, 버티기는 모두 니체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라고 한다.

 

책은 나는 왜 안 되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목표하는 좋음을 누가 정의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세상의 좋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전문학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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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노랑나비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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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여름 노랑 나비]는 열여섯 살 소녀와 아흔 살 할머니가 나눈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저자는 현재 전쟁 뉴스를 통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우리나라 역시 6.25 전쟁을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할까? 질문에 빠져 있을 때 엄마가 들려줬던 노랑나비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한다.

 

열여섯 채고은, 3 민감한 나이에 외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유롭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도, 할머니와 지내는 것도 나의 의지대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열일곱 살이던 때로 돌아가곤 하는데 6.25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 컨디션이 좋은 날에 이야기는 이어진다. 당시 여자들은 살림을 배워 시집을 잘 가면 그만이던 시절이었다. 친구 화자, 순덕이와 무명천에 수를 놓았다. 화자는 수실을 사기 위해 엄마 몰래 겉보리 한말을 꿍쳐다 광속에 숨겨놓고 방물장수를 기다리고 있다. 순덕이는 재밌는 이야기를 곧잘 하는데 노랑나비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장군이 의병들하고 청군과 맞서 싸우다 죽고 말았는데, 사람들이 슬퍼하자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황장군 몸에 앉아 같이 슬퍼하더란다. 나비도 같이 묻어줬다고 해서 황나비무덤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 살만한 세상이 오려나 했는데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죽을 만큼 두들겨 맞고 풀려난 사람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삼촌은 돌아가시고 오빠는 처가에서 선을 대 풀려났다.

 

고은이는 외할머니를 목욕을 시켜 주면서 늙으면 머리카락도 힘이 없어지는구나 할머니와 지내면서 늙는 게 어떤 건지 배우는 것 같았다. 6.25 전쟁이 나자 먼저 오빠와 새언니를 처가로 피란을 보냈다. 순덕이와 화자도 식구들 따라 피란을 갔다. 가족들은 방공호에 몸을 숨겼다. 수실이 넉넉해 수를 놓다보면 친구들 생각이 절로 났다. 하늘에 유엔군 비행기가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포탄이 떨어지자 그것을 먼저 줍겠다고 형보다 먼저 움직였던 삼수 동생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는데 총알이 날아다니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산 사람들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고 했다. 처음 북한군이 무서웠는데 실제 동네 사람들이나 식구들에게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단다. 북한군이 떠돌아다니는 개를 잡아먹긴 했지만 편의를 제공받은 뒤 깍듯한 인사를 한다든지, 손 댈것 없이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하고 가는 거라든지. 예의 바르고 염치도 있었다.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할까? 맘대로 오고 가던 길에다 삼팔선인가 뭔가 선 그어놓고 서로 오가지도 못하게 만들더니 이렇게 전쟁까지 일으키고!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전쟁은 이해가 안 되었어.p157

 

북한군 대장이 할머니가 수를 놓는 것을 보고 고향집 누이도 수를 잘 놓는다면서 자기 어깨에 있는 견장에 별을 수놓을 수 있는지 물었다. 고은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만약 그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할머니가 수놓은 별은 그냥 별이 아니라 그것은 기도였다. 얼릉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도였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책이나 영화로 접하는 전쟁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해 온다. 우리는 전쟁이라는 무서운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전쟁은 왜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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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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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1964년에 발표하여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머리에 이상이 있는 신생아로 태어난 아들에게 촉발되어 이 작품을 썼다. 고뇌에 찬 경험에 뿌리를 둔 작품이고 청춘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정화작용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 27세 버드는 아프리카 지도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아프리카로 출발할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버드라는 별명은 열다섯 살 무렵에 불렸는데 새를 닮았으며 작은 몸집에 깡말라 있다고 그렇게 불렀다.

 

남창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돌발적인 우정을 느낀다. 녀석과 함께 밤을 보내는 건 무리지만 딱 한잔만 마시자고 권할걸 그랬나 생각한다. 버드의 직업은 학원 강사다. 대학원 시절에 4주 동안 술에 절어 있다가 자퇴를 하고 그 대학 교수인 장인어른이 들어가게 해주었다. 자신이 왜 위스키의 심연에 빠져 들었는지를 알 수 없는 이상 다시 한번 느닷없이 그곳으로 되돌아갈 위험은 항상 남아 있다.

 

버드는 고등학교 퇴학을 당하고 대학 입시 준비하던 시절, 불량 그룹과 매주 싸움을 벌였었다. 젊은이들에게 포위되었고 난투를 견딘 자신의 체력을 자랑스러웠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이야기였다. 병원에서 아기에게 이상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뇌헤르니아라고 했다. 두개골 결손으로 뇌의 내용물이 빠져나와 버린 것이다. 정상적으로 자랄 희망이 없으니 수술을 하지 말자고 한다. 말을 하면서 의사는 킥킥 웃어 댄다. 장모는 딸에게는 심장 전문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고 나중에 숨진 것으로 하라고 했다.

 

장인에게 아기는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더라고 전했다. 조니 워커를 선물로 주었고 버드는 술을 들고 전 여자친구 집으로 가게 된다. 히미코는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자살을 해버렸다. 시아버지는 부부가 살고 있던 집을 그녀에게 주었고 다달이 생활비도 보내주고 있었다. 그녀는 낮 동안 명상에 잠겨 있다 밤이면 스포츠카를 타고 방황을 한다.

 

버드는 히미코에게 오면 대낮부터 위스키를 마시게 해줄 거다 싶어 왔다고 한다. 아기가 정상이 아닌데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를 하지 않고 전 여자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함께 잔다는게 말이 되나 싶다.

 

버드가 술을 마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토악질을 하면서까지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 여자친구 집에서, 강의를 하는 도중에 토하는 바람에 학원도 잘리는 상황이 왔다. 그러는 중에 아기의 죽음 쪽에 걸었다고 하는 사실을 의식의 표면에 확실히 고정시켰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죽는 방법을 생각한다고 할까. 장애로 태어난 것도 불쌍한데 부모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아기는 알까?

 

입원 수속을 위해 3만 엔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다. 아프리카 여행 자금으로 3만 엔이 약간 넘는 저금이 있었다. 버드는 끔찍하고 갈망하는 기분으로 더없이 반사회적인 성교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주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꿈을 꾸면서 스와힐리어로 고함을 지른다. 아내는 아기를 죽게 버려둔다면 나는 당신과 이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곧 죽을 것 같다고 아기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고 물건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버드가 마음적으로 힘들고 외로움을 히미코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의사는 아기가 체력을 회복하면 수술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버드는 수술을 하면 정상적으로 자랄 가망이 있는 걸까요? 물어보고 아이를 가져가겠다고 했을까? 부모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장애가 있는 아기를 둔 아빠이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짠했다. 책을 몰입해서 읽었는지 주인공에게 화가 났었는데 마지막 정신 차리는 대목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버드는 어린 학생이 일러준 대로 가이드라는 직업을 준비할 것이다.

 

자넨 변해 버렸어하고 교수가 약간은 애석하다는 느낌도 담긴 따스한 육친의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에겐 이제 버드라는 어린애 같은 별명은 어울리지 않아.“p276

 

[개인적인 체험]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영혼 편력,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그리고 있다. 오에는 소설이 아들이 태어났을때의 기반을 둔 것은 맞지만 주인공 버드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어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이다. 오에의 작품은 난해하지만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끌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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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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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제목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읽어보니 역시나 좋았다. 저자는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너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일으켜 세운 것은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 병치레와 잦은 이사로 친구가 없었는데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곧잘 받아 커서 작가가 될거야 덕담도 들었지만 독자가 되리라 결심했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나무에 기대어 울었다.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없는 가난한 여자가 무슨 글을 쓰겠는가? 읽고 싶은 책만 살 수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해야 하는 너에게]에서 경탄하는 지점이 있다. 작가는 아들 김비주에게 의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행복에 대하여 [한중록]에서 역사적 사실과 수필 문학의 묘미를 깨닫는 느낌의 대목은 저자의 탁월한 끌어내기 방식이다.

 

책 때문에 연애에 실패한 적이 있다. 데이트를 시작하며 서점에 갔는데 나머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랑에는 변명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고 연애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누가 첫사랑을 물으면 책방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직장일이 바빠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을 때 광주 이모라는 분이 집에 계셔서 요리와 청소를 해주었다. 이모는 나이가 들면서 행동은 느려졌고 잔소리 대신 청소기를 돌렸다고 한다. 사람과 헤어지려면 정이 들기 전에 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힘이 들어서 쉬어야겠다고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병원에 찾아갔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떤 책은 읽고 바로 독후감을 쓰지 못하겠다. [바이마르 문화]가 그렇다. 저자는 츠바이크가 격찬한 문학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외부자로 부리는 유대인,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전위예술가들이 합심해서 만들었다면 무너트린 자는 보수와 우익, 사법부와 귀족의 기득권층인 내부자들이었다.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21세기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우리는 행복동에 살고 있습니까였다는 것을 깨닫는다.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상념으로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저자가 살아 온 어느 지점과 맞물린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커피를 내리러 일어났다가 문득 친구를 생각했다. [얼음 속을 걷다]는 혹한의 계절을 관통하는 도보 여행기다. 책을 읽는 동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보로 얼음길을 걷는 동안 추위 속에서 눈과 비를 만나고 헛간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과거와 현실이 뒤섞이고, 있거나 있었거나 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책은 한 청년이 존경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가는 도보 여행이다.

 

저자는 연속으로 책을 두 번 읽는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인데 그의 지적 소양에 반해서, 자가 진단과 자가 치료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최연호 교수의 [기억 안아주기]는 나쁜 기억에 관한 치유서이다.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의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는 치유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읽어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저자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과학책을 읽는다. 사실은 과학을 좋아한다. 대중 과학서인 [중력의 키스]는 과학자가 쓴 연구 보고서가 아니라 과학자들 틈에 끼어서 과학적 발견이 검증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한 사회학자의 민족지다. 도올다운 소설 [슬픈 쥐의 윤회]를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는데 종내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말았다. 아무리 어려운 글을 인용해도 투명하다. 어렵게 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소설을 쉽게 쓰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은 서평들 사이에 저자의 어려웠던 인생사를 썼다. 글을 쓰면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잊었다.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한다.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 날 깨닫게 될 것이다. 읽었다면 한 줄이라도 써두자. 아주 오래 기억에 담길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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