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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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제목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읽어보니 역시나 좋았다. 저자는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너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일으켜 세운 것은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 병치레와 잦은 이사로 친구가 없었는데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곧잘 받아 커서 작가가 될거야 덕담도 들었지만 독자가 되리라 결심했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나무에 기대어 울었다.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없는 가난한 여자가 무슨 글을 쓰겠는가? 읽고 싶은 책만 살 수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해야 하는 너에게]에서 경탄하는 지점이 있다. 작가는 아들 김비주에게 의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행복에 대하여 [한중록]에서 역사적 사실과 수필 문학의 묘미를 깨닫는 느낌의 대목은 저자의 탁월한 끌어내기 방식이다.

 

책 때문에 연애에 실패한 적이 있다. 데이트를 시작하며 서점에 갔는데 나머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랑에는 변명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고 연애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누가 첫사랑을 물으면 책방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직장일이 바빠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을 때 광주 이모라는 분이 집에 계셔서 요리와 청소를 해주었다. 이모는 나이가 들면서 행동은 느려졌고 잔소리 대신 청소기를 돌렸다고 한다. 사람과 헤어지려면 정이 들기 전에 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힘이 들어서 쉬어야겠다고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병원에 찾아갔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떤 책은 읽고 바로 독후감을 쓰지 못하겠다. [바이마르 문화]가 그렇다. 저자는 츠바이크가 격찬한 문학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외부자로 부리는 유대인,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전위예술가들이 합심해서 만들었다면 무너트린 자는 보수와 우익, 사법부와 귀족의 기득권층인 내부자들이었다.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21세기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우리는 행복동에 살고 있습니까였다는 것을 깨닫는다.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상념으로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저자가 살아 온 어느 지점과 맞물린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커피를 내리러 일어났다가 문득 친구를 생각했다. [얼음 속을 걷다]는 혹한의 계절을 관통하는 도보 여행기다. 책을 읽는 동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보로 얼음길을 걷는 동안 추위 속에서 눈과 비를 만나고 헛간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과거와 현실이 뒤섞이고, 있거나 있었거나 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책은 한 청년이 존경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가는 도보 여행이다.

 

저자는 연속으로 책을 두 번 읽는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인데 그의 지적 소양에 반해서, 자가 진단과 자가 치료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최연호 교수의 [기억 안아주기]는 나쁜 기억에 관한 치유서이다.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의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는 치유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읽어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저자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과학책을 읽는다. 사실은 과학을 좋아한다. 대중 과학서인 [중력의 키스]는 과학자가 쓴 연구 보고서가 아니라 과학자들 틈에 끼어서 과학적 발견이 검증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한 사회학자의 민족지다. 도올다운 소설 [슬픈 쥐의 윤회]를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는데 종내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말았다. 아무리 어려운 글을 인용해도 투명하다. 어렵게 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소설을 쉽게 쓰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은 서평들 사이에 저자의 어려웠던 인생사를 썼다. 글을 쓰면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잊었다.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한다.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 날 깨닫게 될 것이다. 읽었다면 한 줄이라도 써두자. 아주 오래 기억에 담길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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