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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ㅣ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화를 내고 분노가 일어나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다가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풀리기도 하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면 속상할 일도 화가 날 일도 훨씬 줄어들 텐데,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만만하고 편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예요. 마구 화를 내며 다투다가도 어느새 풀어져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기도 하죠. 15살 소녀 다인이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였어요.
엄마와 함께 몽골로 여행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맛깔나는 이야기로 펼쳐져요. 엄마와 단 둘이 떠났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이 되었겠지만...엄마 친구들과의 여행이라...역시...다채로웠어요. 별별 일들이 다 벌어졌고요. 여행을 함께 떠나보면 그 사람의 속내를 깊게 알 수 있다고도 하죠. 24시간 같이 지내면서 그동안 몰랐던 상대의 습관이나 마음 씀씀이를 적나라하게 느껴볼 수 있고요.

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눠져 있어요. 딸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똑같은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입장에 되어 본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딸의 말도 맞고, 엄마 말도 맞고, 같은 상황을 전혀 색다르게 묘사한 것도 재미있고요. 다인이와 바뜨르의 풋사랑도 은근히 빠져들게 되고요. 딱 그나이에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정, 나중에 돌아보면 도무지 이해도 안되고, 왜 그랬지 싶기도 하면서도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덜 익은 사과같은 풋사랑이요. 다인이의 감정이 정말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요. 한편으로 걱정도 되면서, 왜 그러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도 같았고요. 그것을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도 흥미진진 해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바로 그 때는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이금이 선생님의 표현은 정말 톡톡 튀어요. 차분하게 조목조목 짚어주는 맛도 깊고요. 15살 소녀의 마음을 어찌 그리 잘 헤아려주시는지, 아마 본인들 보다도 더 섬세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속 구석구석 끌어내오는 솜씨가 최고예요. 고비 사막에서 지낸 여정도 실감나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시원한 물 한 잔 맘껏 마실 수 없었던 그 시간이 왜 그리운 걸까요. 여행의 묘미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다인이의 이야기도, 엄마의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엄마가 느끼는 혼란과 불안함, 자신의 삶과 아이들의 인생 사이에서 오락가락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맛깔나게 그려져 있어요. 특히 오빠와 겪게 되는 마음속 진실들..엄마라면 늘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문제들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춘희에게 딸이 반하게 되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조차 충분히 이해되고, 또 공감되었습니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 딸과의 동행...엄마 숙희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되짚어 볼 수 있는 숙제를 남겨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