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람들'이 곁에 있어 살 수있다 < 가시고백>

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하필, 남보다 뛰어난 기술이 도둑질이다.

빠른 손놀림을 타고 났는데 겨우 남의 물건을 슬쩍 하는데 재능을  써버리다니..

훈남 해일의 이야기다. 고2 쯤 되면 세상 알만큼 알고, 하면 안되는 것도 알고, 나쁜 습관정도는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여리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를 쓴 김려령 작가의 새로나온 책이다. 신작이 기다려지는 작가 중 하나인데, 너무 너무 반갑다. 청소년 소설이 뭘까?  경계가 애매하고, 정의하기도 아리송한 시대에 딱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의한 글을 쓰는 작가다. 무뚝뚝한 듯한 문체 안에 따뜻한 숨결이 숨어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더해진다. 자존심 때문에, 무섭고 두려워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고백!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면서 가시처럼 박힌 아픔을 끌어안고 혼자 끙끙대야 하는 기억들. 누구든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외모와 시크하면서도 푸근한 성격을 지닌 해일은 분명 호감가는 아이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가끔 설레게 하고 지켜보게 만드는 매력도 갖고 있다.

하지만 해일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본인은 그다지 고쳐야겠다는 결심도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하는...어처구니 없는 손버릇을 갖고 있다. 옆자리 친구의 전자수첩을 슬쩍하고, 친구 아빠의 넷북을 가방에 슬그머지 집어넣을 수 있는 마력의 손을 원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칭찬할 수도 없고...해일은 하루 하루 답답하다. 푸근하고 따뜻한 집, 사랑이 넘치는 엄마와  유머가 넘치는 형이 있는 곳, 그곳에서 별 고민없이 살아가는 듯보이지만 그의 가슴을 늘 무거운 걸로 눌리는 듯하다.

어느날, 유정란을 사오고 생선가게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얻어다가 병아리를 키우려 한다. 부화가 될까?  해일의 가슴이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  두근두근 아슬아슬하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하나 둘씩 생긴다. 해일의 마음을 점점 무거워지는 듯하다. 잘못을 덮고 두 얼굴로 살아가는 해일의 실체는 드러날까? 친구들은 그의 원래 모습을 알면 돌아설까?

김려령 작가 특유의 짧지만 강한 어조가 돋보인다. 툭툭 튀어나오는 위트가 슬그머니 웃게 만든다. 도대체 거울은 누가 만든 걸까? 전부 감추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일이라면 가슴이 서늘하겠지. "너지?"

서툴지만 늘 아이들 편인 담임과 학생들,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어색한 권력구조, 사람마다 지닌 성향들, 아이들의 다툼과 갈등...우당탕탕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진다. 생선가게 아저씨와 분식집 아줌마, 능청스럽지만 동생을 무척 사랑하는 듯한 형, 달걀이 병아리가 되어가는 것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지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친다. 참으로 따스하고 믿음직스럽다. 크게 용기내어 스스로 가시를 뽑는다 해도, 가시가 뽑힌 자국에 상처가 덧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재미와 감동을 주는 따뜻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