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료를 드립니다 - 제8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작 ㅣ 미래의 고전 2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고만고만 하다가도 가만히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 아이들 나름대로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이 있더군요. 겉으로 보기에 너무 평범해서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매일 학원에 다니면서 투덜거리는 아이, 엄마의 잔소리와 무조건적인 명령에 불만이 가득한 아이, 사랑하는 개를 두고 유학길에 올라야 하는 아이, 좋아하는 남자친구 선물을 사주기 위해 애쓰다 엉뚱한 꿈을 꾸는 아이.
이금이 선생님의 글은 촌스럽지 않아요. 아이들 동화를 읽다보면 너무 아이취급하면서 부드럽게 쓴 글이 나오면 오돌도돌 닭살이 나와요. 아이가 직접 읽으면 못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이 읽으면 엄청 꾸미고 다듬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그러는 건 알지만, 어른인 저는 도저히 감동을 전해받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금이 선생님 작품을 달라요. 어른들이 읽어도 진심으로 웃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궁금해집니다. 뻔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막돼먹은 상상은 절대 못해요.

옆집 아이 이야기, 이웃집 엄마 이야기, 학교에서 늘 보던 아이의 모습,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것 같이 친숙한 아이...
이금이 선생님 동화집에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아이들이 등장해요.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잠못이루면서 이야기를 읽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어요. 마치 제 아이처럼 느껴지고, 당장 책속으로 들어가서 도움을 주고 싶어져요. 다섯 편의 동화 모두 우리의 이야기고, 매일 보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조폭엄마>에 나오는 엄마는 너무 친숙해요. 주변에서 자주 보았던 캐릭터고, 저의 모습이기도 하죠.딸 민지는 엄마때문에 속상한 날이 많아요. 이야기도 안 통하고,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아무렇게나 요구하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엄마 역시 아이의 꿈이 뭔지, 아이가 하고 싶은 일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공부만 잘 하라고 하죠. 하지만 둘의 속마음은 달랐어요. 조금씩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면서 한편으로는 놀라고, 점점 상대를 이해하게 되죠.
<몰래카메라>는 한참 전 방영되었던 오락프로그램을 떠오르게 하네요. 내가 하는 행동을 누가 지켜보고 있을까, 좋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뜻밖의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꿈을 꾸는 건지, 아니면 상상하는 건지,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충분히 공감되었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다가도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되고요. <이상한 숙제>는 제일 여운이 오래 남는 동화예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당장 예쁘고 매력적인 것보다는, 이해할 수 없고 도무지 공감할 수 없으면서도 심지어 밉고 피하고 싶었던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도 있어요. 잘 생기고 미소가 아름다운 너머에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모자라고 멍청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 뒤에도 똑같은 감동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여운을 주네요.
<사료를 드립니다>를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누구도 잘잘못을 따질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걸 배웠어요. 물 흐르듯이 그냥 두는 것이 모두에게 평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도요. 당장 따지고 화내면서 , 장군이를 데려왔다면 장군이와 장우는 행복해졌을까요. 세상에는 슬프고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도 있죠.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동화였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해준 따뜻한 글을 읽어서 마음이 가득 채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