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 청어람주니어 고학년 문고 2
임다솔 지음, 정은민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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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후손들에게 당당하게 알려줄 수 있는 과거만 갖고 있다면 얼마나 떳떳할까요. 우리에게는 숨기고 싶고, 더구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존재하죠. 짧은 현대사를 살펴볼 때 어찌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사실들이 많던지..언젠가 아이도 알게 되겠지만, 제발 나중에...충격을 덜 받을 만큼 성장한 후에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빛이의 엄마 마음도 마찬가지였겠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 

나빛이는 영화제 구경갈 마음이 한참 들떠있었어요. 좋아하는 영화도 실컷 보면서 여유로운 방학을 즐기려고 했죠.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낯선 외할머니 댁에 가야한다니..내 꿈과 기대는 어디로 ... 아직은 혼자 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나이니 엄마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죠.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퉁퉁 부어 있었던 나빛이의 마음도 이해되네요. 외할머니 댁에 도착한 다음 엄청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치매인 할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셨어요. 이상한 냄새도 나고, 뭔가 음침한 기운도 느껴지고.

 

엄마의 손은 점점 바빠졌어요. 할머니를 돌보고, 집을 가꾸고..나빛이의 마음까지 챙겨줄 여유는 없었어요. 심통 가득한 나빛이는 엄마 몰래 떠나려고 했는데...  외할머니 댁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현실과 꿈이 오락가락하며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불편한 진실은 나빛이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아요. 궁금함과 답답함이 교차하면서 자꾸 알고 싶어지게 되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은 너무도 큰 상처와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상상하기 싫어요. 떠올려보고 싶지도 않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말도 안되는 일로 잃게 된 가족들, 그들이 안고 가야할 슬픔은 너무 크고 가혹했어요. 숨기고 잊으려고 애썼지만,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었죠. 나빛이 엄마의 쌍둥이 언니가 겪은 일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의 한 부분이에요. 1980년 봄,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저는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고, 부끄러웠어요. 어린 나빛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이모를 잃은 가족들, 비극은 자꾸 반복되고, 남은 사람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없었어요. 그 일을 만들어낸 사람은 아주 잘 살고 있는 듯 보여서 더욱 화가 나고요.

 

고물상 아저씨의 등장으로 두근두근 했지만, 그 역시 상처를 품고 있는 피해자였어요. 세월이 지나 조금씩 벗어나는 듯 보여도 그들이 겪은 일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었겠죠.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함께 슬픔을 품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초등학생 아이에게 알려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역사지만, 나빛이의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을 듯해요.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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