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소년을 만들기 위해 5년동안 퇴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소년을 만들어 놨으니 알아서 잘 크겠지, 작가는 말한다. 은희경이 만든 소년! 도시의 쌀쌀함과  열일곱 소년만의 능청스러움, 그리고 어른들에게 낯선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아파트에 살고,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여자 친구도 한 둘 있는, 수많은 소년들의 일상...과는 한참 다를지도 모르겠다. 연우는 굉장히 어른스러운 듯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 지내고,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를 자기만의 울타리에 가둬놓은 아이다. 연우 친구 엄마 또래라면 뱃살도 적당히 나오고 세상 일, 별 것 아니라고 칫!  베짱도 한 번쯤 튕겨줄 수 있는 넉넉한 아줌마여야 할 텐데. 연우 엄마는 아가씨 빰칠 듯하다. 웬만한 남자들의 시선을 모을 만큼 수준급 미모를 뽐내고, 적당히 시니컬 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까지 갖춘, 은근 매력덩어리다. 자식에게도 쿨할 수 있는 엄마! 외박하고 들어온 아들에게 센스 만점 충고까지 날려줄 수 있는 멋쟁이 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이 소설을 읽으면 공감할까? 은희경이 만들어 놓은 틀에 또 한번 갇히게 될지도 모르는데..내가 알고 있는 소년들은 굉장히 철이 없다. 생각도 없다. 자기만의 인생을 꾸려나가려면 적어도 한번쯤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어른들과도 부딪히면서 스스로의 세계를 쌓아가야 하는데, 게임에 빠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어른들을 비웃고, 그렇다고 확실한 주관도 없을 뿐더러 이기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부모님들은 '너도 똑같았어!'라고 말씀하시겠지.

 

 

우리 세대는 외동자녀가 오십퍼센트를 넘어 부모의 관심을 부족함 없이 받았으므로 이기적이고, 일찍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했기 때문에 소통이 활발한 반면 개인주의자이고, 경제적인 풍족함이 지나친 소비성향을 갖게 했고, 뭐, 그래서 성실성과 끈기가 부족하고 나약하다고? 속해있는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그리고 개별적 추진력이 부족? (385쪽)

 

어쩌면 어른들은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라는 틀 안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집어넣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이 다 맞다고 우기고 아이들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우리의 아이들이 틀 안에서 놀면서 고분고분하지는 않다. 연우와 엄마는 완전 반대다. 엄마는 자유롭고 아들은 꼿꼿하다. 엄마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최대한 받아주면서 세상과 타협하려 한다. 그동안 읽어봤던 수많은 성장소설과 닮지 않았다.

 

언젠가 방에서 나오다가 재욱 형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거야. 반사적으로 그것이 나에 대한 화제라는 걸 눈치챘다. 재욱 형 말이 이어졌다.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읽게 되면 그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성숙이란 일종의 균형 잡기야.(340쪽)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어른인가?   '나'를 찾아 헤매다 죽기 직전에 이제야 세상이 뭔지,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 알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평생 자라지 못한 소년이었을까?  참 편안하게 소설을 읽었다. 평지를 걷는 듯한 느낌!  내가 알고 있는 소년과 성장과 어른이라는 이미지에 끼워 맞춰서 '그럼 그렇지!'  혼자 안심했다. 그러다 꽝!!!  뒷통수를 얻어 맞았다. 어른과 소년의 차이는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역시 소년들에게는 함부로 저지할 수 없는 열정과 객기가 있다. 그것을 어른들이 지켜주려고 늘 싸우고 갈등하나 보다. 내가 너무 경솔했다. 소년들은 고독하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모르고, 갈 수 있는 길이 너무 많아서 외롭다. 누군가 이끌어주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쁘고, 스스로의 상처를 숨기고 보듬기도 벅찬데...누가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겠는가.

 

낯선 죽음이 등장하는 소설은 괴롭다. 더구나 결말부분에 짠~ 나타나는 뜻하지 않은 이별은 잠을 설레게 한다. 하필 새벽에 끝부분을 붙잡고 씨름한 건 뭐람.. 무서웠다. 죽는 것도 무섭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 두렵다. 일상은 늘 흩어질 수 있다. 그것이 두려워 우리는 싸운다. 아이들과 싸우고 어른들끼리 싸우고..내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삶의 테투리에 상처가 갈까 두려워 싸운다. 괴롭고 행복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태수의 엄마, 채영의 아빠, 그들의 삶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들이 주는 모욕을 그대로 받아내면서도 끄떡없는 연우의 엄마가 가장 강한 사람인지 모른다. 안전한 길을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자. 남들과 다르게 살기 위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모두 버린 사람. 외롭다고 고독하다고, 더이상 사랑 할 수 없다고, 몸부림치지만, 그녀의 삶은 여전히 안전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 부럽다!

 

내가 좋아하는 것, 왜 나한테 이렇게 까다로울까. 내가 잘 모르는 이 세상. 어떻게 알아가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지금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그애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 나는 자전거를 돌려세우는 즉시, 죽어라고 멀어져온 그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페달을 밟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 어떻게 알게 된 걸까. 간절히 원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생각 따위가 왜 내 머리통에 가득 차 있는 거냐구.(368.369쪽)

 

불완전한 나를 불쌍히 여기면서 언젠가 완벽해지겠지..꿈꾸고 살고 있다. 과연 끝나기는 할까? 서른 중반의 내가 열입곱의 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부럽다!" 뿐이다. 어리고 철없고 서툰것은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받아줄 이가 있는 십대는 행복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늘 겸손하게 사는 모습! 때로는 도발할 수 있는 용기까지도 그들의 열정과 서툼이 아름답다. 나도 아직, 위로해주고 싶어질 소녀로 남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