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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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전화벨에 맘이 흔들리고, 혹시나 하는 두근거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상에 찌들어 하루 하루 살아가다보면 지난 날의 아픔과 기대는 저멀리 다리 건너쯤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무뎌진다. 그가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줄까?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때는 그의 손짓하나 눈빛의 흔들림까지도 내 가슴을 조이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주 가끔 그를 떠올릴 뿐이다.

 

대학 시절, 역사와 정치로 혼란스러웠던 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의 대학생활을 시작되었다. 그래도 꺼져가는 불꽃이 오래간다고 하지 않는가? 선배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교육시키려고 했고 미팅과 동아리 활동이 더 재미있었던 우리는 선배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피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들과 어울려 시대를 한탄하며 원망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술과 이야기로 밤이 다가오는 것도 잊은 채, 청춘은 슬프다는 뻔한 논리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되고, 그런 시절을 즐기면서, 때로는 탓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등록금 투쟁,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집회, 그리고 지난 날을 기리는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진지해지고, 때로는 무심해지기도 하면서 보냈던 나의 대학시절, 너무 너무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사랑인지 아닌지 몰라서 서툴게 보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혹시 그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기대하는 마음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렇게 20대 중반을 보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운 이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잔잔한 문체, 싸늘하지만 깊은 곳에 숨어있는 따스함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반가움, 안도감 덕분에 작가의 문체에 빨려들어 간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만큼 눈물을 흘려보내지 않았지만, 미루의 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괜히 훌쩍 거렸다. 이해할 수 있지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운명의 장난같은 이야기, 그래서 슬프지만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그들. 가슴이 아팠다. 단이의 죽음 역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한다.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엄청난 권력 앞에서 무능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고 아파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정윤과 명서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픔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 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면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던 슬픔, 그것을 나누면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에 빠진다. 잃어버린 것이 많았기에 아팠고, 그것을 서로 알고 있기에 애틋한 마음을 품고, 하지만 결코 더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움이 그들을 지배한다.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낯선 무언가가 점점 스며들면서  상처를 주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멀어져 간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지만 새로운 만남은 그들을 두렵게 만든다.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면서 더욱 낯설어하고  피할 수록 과거는 서글퍼진다.  죽음, 새로운 만남과 기회,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모습들. 모두 우리가 견뎌내야 할 과제다.

 

신경숙의 소설은 몽롱하다. 자꾸 미로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욱 허우적 거리게 되고 그 안에서 무언가 찾으려고 애써보지만, 그저 기억만 더듬고 나올 뿐이다. 잔잔한 문체는 나를 통째를 흔들어놓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심각해지고,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할 것 같고, 혼돈이 밀려오면서 헤매다보면 결국 만나게 된다. 그들과 함께 찾은 것은 결국 나의 모습이고, 나의 기억이다. 나의 20대, 나의 청춘,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만 들썩일 뿐이다. 그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용기가 생기지 않아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 추억은 추억일 뿐,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나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시간은 아픔을 치유해주는 존재일지도. 



 인간은 불완전해.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341쪽)  

 " 내가 그 쪽으로 갈까"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는 것, 그것 자체로 청춘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걸 두고 나를 위해 떠나올 수 있었던 상대, 비록 전부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함께 아픔을 나누고 기억할 수 있었기에 영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며 살 수 있다는 건 추억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조금 다른 판단을 했다면, 용기가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바보가 아니었다면...지금과 다르게 행동했다면, 좀 더 큰 사람이었다면...청춘은 아쉬움을 남긴다. 완벽하지 못했기에 순수했고, 욕심을 버렸기에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냥 흘러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 시절, 그래서 오래 오래 기억하며 생각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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