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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10
김진영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책 한 권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진 적이 있나?
남의 이야기지만, 어쩜 저렇게 빠져나올 공간없이 꽉 막혀있을지, 중학교 1학년 아이가 겪기에 너무 갑갑해 보이는 현실에 괜히 몸서리가 난다. 딱히 죽을 만큼의 고통을 아닐지라도 미래가 안 보이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지겨워진다면, 어디로든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할 부모가 제대로 중심을 못 잡고 아이에게 어설프게 기대어 지낸다면 아이의 짐을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고...아이는 삶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는 비관에 빠질지도 모른다.
잠깐의 실수, 그리고 영원할 것 같은 고통.
헛된 희망, 잠시의 행복, 그리고 허무하고 아픈 기억들.
중학교 1학년 소녀, 장하리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와 살고 있는 평범한 중학생,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픔이 자라고 있다. 저멀리 뿌리에서부터 전해져오는 깊은 슬픔이 삶에 배어들어 우울함을 감싼다. 거친 아버지, 자식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엄마,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꿈을 꾸며 살고 싶어하는 하리. 그들의 삭막한 동거는 위태위태함을 예견하게 한다.
언젠가 터질듯한, 그래서 매우 위험스러워보이는 순간들, 그들의 하루는 남들의 평범한 하루와 많이 닮아있다. 남자친구를 보면서 설레는 소녀, 더 잘보이려고 거짓으로 무장하는 철없음, 그리고 깊은 수렁인 줄 알면서도 한 발을 내디디고 마는 약함...장하리에게 삶은 그저 새롭고 지루하고 긴장의 연속이다. 뭔가 들킬 것 같은 두근거림을 안고 또 다른 모험에 도전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온전하게 지켜내기에는 아직 벅찬 아이. 그래서 휘청거린다.

하리의 학교생활, 가정생활, 모두 답답하다. 학생들이 열심히 쓴 글을 읽지도 않고 재활용 수거함에 던져버리는 선생님을 보면서 지금의 교육은 이런가? 씁쓸하다. 적어도 내가 학생인 시절에는 순수함과 열정이 길고 지루함을 달래주곤 했는데, 비틀어지고 왜곡된 채 아이들을 점점 더 외롭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친구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이 빠지고자 하는 흙탕물에 함께 뛰어들려 한 예주, 비겁하다.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있는 한탄이 아니다. 적어도 최선을 다하면서 투덜대야 동정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엄마의 반항, 혹은 몸부림은 더 가관이다.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온다. 약하고 여린 아이를 지켜줘야 할 때에는 적어도 책임감과 도덕성이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을테니, 안타까운 마음만 쏟아낼 뿐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상황, 현실을 부정하면서 헛된 꿈을 꾸는 순간 불행은 시작된다. 모두 이야기 할 수 있고, 전부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방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하리와 가족들에게 뭔가 새로운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부 해결하고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이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행복해 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달라지고 있다. 딱히 뭐라 말하기 힘들고, 모두 해결되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무수한 비밀과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는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