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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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유쾌하지만, 큰 언니처럼 카리스마도 있고 때로는 다독여 주는 듯한 느낌의 글이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편에게 사소한 잔소리를 퍼붓고, 아이들 성적에 연연하는 엄마들이 읽으면 찔리는 구석이 많을 것이다. 젊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노후에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이 읽다보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의 행복보다는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루 하루 참고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글이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기른 50대 아줌마의 이야기다. 부부 모두 건축학 박사에 물리학 박사라서 아이들 교육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성적에 연연하지 않은 쿨한 부모였다. 대신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 존중해주고 아이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부모님의 너그럽고 자유로운 교육방식에 길들여져 무사히,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기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하는 일, 제철이 아닌 과일을 먹는 것, 뜨끈한 집에서 훈훈하게 생활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얼마든지 더 많이 벌 수도 있지만 가족들이 함께 세 끼 식사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일에 대한 욕심을 줄인다. 얼마전에 요리 연구가 한 분이 나와서 ' 집밥을 많이 먹여야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말을 잘 듣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오늘 생각났다. 가족이 모여 세 끼를 먹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각자 일이 있는데 점심까지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포기한 만큼 얻어지는 게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몸소 보여준다.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 눈에는 별 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에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80쪽)

 

한국보다는 독일에서 산 시간이 더 많았기에 독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맘껏 풀어놓는다. 막연하게 동경해오던 나라였는데, 생각 밖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어 신선했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죄를 인정하고 보상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외국인을 존중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시하는 뿌리깊은 사고가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살짝 열받았다. 그래도 이래저래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제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를 철저히 가르친다. 역사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나치'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패거리를 지어 어딘가 남과 다른 사람을 비웃고 따돌리는 배타적 근성' 즉 '나치적 근성'을 경계하는 사회교육을 자연스럽게 한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나중에 좀 더 철이 들어서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아?'를 배울 적에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나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함께 고민해 보는 과정으로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간다.(168쪽)

 

그녀 부부는 주인공이 되어 떵떵 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훌륭한 배경이 되어 좋은 사회, 건강한 나라를 만들며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환경운동에 관심이 남편과 돈보다 당장의 즐거움이 우선이라고 여기는 부인이 만나 티격태격 싸우며 사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가족만의 은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풀어놓고, 사회와 역사와 환경에 대한 생각도 서슴없이 펼쳐 보인다. 아기자기한 글솜씨 중간에 독한 카리스마도 살짝 보이고,  은은한 위트도 곁들여진다. 50이 넘어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독일에 대해서, 국제결혼을 한 부부에 대해서, 일보다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똑똑한 엄마에 대해서, 그리고 진짜 행복하게 사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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