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외롭고 고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저마다의 벽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  벽이 없는 뻥 뚫린 곳에서 산다는 건 살아있는 삶에서는 겪어보기 어려운 꿈같은 일이다. 단지 벽 안의 공간이 얼마나 넓은가에 따라 자유롭다, 자유롭지 않다의 의미를 나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맞서 , 하루 하루 자유를 갈망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거울과 같은 의미를 되새겨주는 소설이다. 표지와 제목을 보면서 벽 안에서 일어나는 굉장한 일, 예를들면 벽 속에 갇힌 불행한 생명체, 그들의 고독한 몸부림 정도를 떠올렸다. 카프카의 <변신>처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겪게 되는 인간 한계의 도전..이런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첫인상이 너무 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딱딱하고, 다소 건조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 책은 나를 감동시켰다. 내면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욕망과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갇혀있는 벽의 존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분석해 보았다.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주인공 '나'의 심리를 쫓아가다 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시간이나 공간의 변화에 따라 '장'이 나누어져야 읽는 사람도 한숨 돌리며 읽을 텐데,오직 하나의 글이 존재한다.   빽빽한 글씨가 350여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사촌부부와 3일간 머물기 위해 오게 된 산장에서 어느날 그녀는 혼자 남는다.  벽 너머의 세상은 이미 그녀가 건너갈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소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개 한 마리와 남겨진다. 골짜기 너머에서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벽은 더이상 걸어서는 다다를 수 없는 막연한 곳이 되었고, 그녀는 절망한다. 그렇게 2년 반 넘게 지내면서 겪게 된 일들, 심정을 스스로 적어 내려간 글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더이상 말할 상대가 없고 의지할 사람을 잃게 되는 심정을 상상해 보았다. 바쁘게 살다보면 늘 그리워하는 일상이 있다. 혼자서 마음대로 24시간을 지내보는 건데, 막상 그런 일이 닥쳐오면 기쁠지, 막막할지, 더구나 그 시간들이 영원할 것만 같다면, 나의 심정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얼마나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녀의 글을 읽었다. 아..정말 감동적인 글이다.

 

혼자가 되보면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희망을 가져볼 인간이 없다는 건, 너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개와 고양이와 소에게 의지하며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간다는 건, 생각만으로는 정말 삭막해 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일상은 살아 움직인다. 생동감이 넘친다. 자연속에서 일거리를  찾고 먹을거리를 얻어내고 ,그 안에서 절망을 배우며, 다시 일어난다. 주어진 환경에서 주저앉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가 위대하다. 행복과 안위를 느끼다가도  헛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초원과 개울 옆 산장을 오르 내리며 여름과 겨울을 나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그녀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려 했지만, 모두를 사랑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무심하기로 작정했다가 결국은 그들을 또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다시 잃게 될 것이다.마음을 줄 대상이 남김없이 사라진 데 대해 안도감이 드는 때가 잇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에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갈 길은 없다. 이 산속에 내가 사랑할 수 잇는 것이 하라나도 살아 있는 한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게 되는날, 나는 삶을 멈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부류였다면 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10.211쪽)

 

 

그녀와 함께 지낸 동물들에게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들이 재미를 더한다.  그녀가 푸근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따뜻하고 섬세한 여성인지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벽'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녀 스스로 이야기 해준다.

 

그녀가 다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읽었다. 곁의 동물 친구들, 룩스.페를린, 티거에게 닥치는 위기가 다시 희망의 상징으로 번져 나가기를 기대했다. 사람들에게 돌아와 푸근하게 안기기를 바랐다. 그런데, 흑...놀라운 결말이다. 씁쓸함이 남는다. ㅠ.ㅠ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존재하고 생명은 이어질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나는 벽안에 갇혀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벽속에서 얼만큼 자유로운지, 벽 밖으로 나갈 용기는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 그리고 깊이, 이렇게 삼박자가 꼭 들어맞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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