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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돌
아티크 라히미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이름도 나이도 없다. 여자, 남자, 아이들, 각자의 역할을 말해주는 단어만 있다. 비밀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변화, 서서히 바뀌는 여자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살짝 쾌감을 느끼면서 한편 불안해진다. 혹시 들키지 않을지, 누군가 엿듣지 않을까. 두근두근. 점점 대담해지는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제 '인내의 돌'이 폭발해 깨질지 조마조마 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곳. 신을 믿고 기도와 참회가 몸에 밴 여자, 단지 아픈 과거와 억눌린 기억만이 남아있는 여자. 총에 맞아 혼을 잃은 채 누워만 있는 남편을 향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너무 활짝 열어서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터져나올까 두려웠지만, 그녀가 마음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와 회한을 다 쏟아낼 때까지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숨겨져 있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해 준 어떤 낯선 이방인이 등장할 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진 모습. 얼굴마저 드러낼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온 그녀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답답함과 후련함이 교대로 찾아온다.
그녀는 남자의 양어깨를 잡는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맘이 편안하고, 근심을 던 것 같다면...그리고 순간순간 우리를 후려치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그건 내 비밀 덕분이고, 당신 덕분이야. 당신은 날 위해 거기 있는 거야. 당신이 볼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건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내가 믿는데, 당신이 내 말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바로 그래서 당신이 살아 있는 거고, 그래 당신은 날 위해 내 비밀을 위해 살아 있어."그녀는 그를 흔들어본다. (116.117쪽)
스스로 악마라고 외치면서 그녀는 옷을 하나씩 벗는다. 절대 드러낼 수 없을 것 같은 비밀까지 모두 남편에게 말하고 나서...그리고 그녀에게 닥치는 엄청난 결말..흑..뒷내용을 상상해 보았는데, 슬프다. 어쩌면 상상속에서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인내의 돌이 깨지면서 엄청난 폭풍과 피비린내 나는 회오리가 몰려온다.
2008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마치 연극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 든다. 똑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작은 변화들.조금씩 달라지는 여자의 모습, 그녀의 심리 속으로 그냥 빠져든다. 답답한 세상을 향해 퍼붓는 함성처럼 격렬하다가도 어느새 수줍은 고백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고, 억압된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슬픈 여인의 삶을 엿보았다. 마음이 무겁지만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보았기에 절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