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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
이민희 지음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서른 쯤 되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살짝 미루고 뻔한 일상에 찌들어 사는 게 더 마음 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 쪽 눈으로는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거나, 몇 년 열심히 다니면서 인맥과 돈맥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익숙했던 일을 버리고, 낯선 새로운 길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발을 들여놓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은 원래 재미없는 거야, 어찌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겠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안정된 생활속에 안주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느낌으로 사는 아줌마라면 이 책을 쓴 작가가 엄청 부러워질 것이다. 결혼도 안 했지, 미모에, 성격도 산뜻해 보이고, 꼼꼼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위해 중요한 뭔가를 내팽개칠 수 있는 용기도 있는, 멋진 아가씨여서 책을 읽는 내내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다. 연수도 안 받고 바로 수동기어차를 빌려서 고속도로까지 달려나간 걸 보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화끈하게 밀어붙일 줄 아는, 그러면서 이쁜 것과 좋아하는 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자기만의 향기를 간직한 여인네로 보이기도 했다.
파스타와 스파게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밀가루와 달걀로 반죽해서 납작하게 밀어, 마음껏 모양을 내고, 펄펄 끓는 물에 데쳐, 소스와 야채,그리고 고기와 곁들여 먹는 음식이 바로 파스타이다. 스파게티는 파스타 중에서 아주 일부분에 해당하는 요리이다. 난 하얀크림에 듬뿍 버무려진 까르보나라를 좋아하고 가끔 매운 해산물 스파게티나 빵속에 집어넣은 담백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데, 책에 내가 모르던 다양한 파스타 요리가 소개되고 있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작가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파스타를 찾아서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마을 곳곳을 찾아다닌다. 가족중심의 사회에서 여자 아이들이 엄마들의 놀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드나들면서 할머니와 엄마의 파스타 비법을 전수받는다고 하는데 ,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가족들을 위한 파스타를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건한 마음이 생겼다. 장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존경스러움과 비슷한 거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레스토랑마다 그들만의 비법과 고집이 엿보였다.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소탈한 모습들이 참 정겨워 보인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 음식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큼 그들만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걸로 인정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함을 음식으로 보답하지 말자는 작가의 경험담을 잘 새겨두어야겠다.
잡지와 TV를 통해 알게 된 이탈리아의 레스토랑과 관련 인물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실망하고 ,가끔은 감격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듯한 여행을 하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어찌 헤아힐 수 있겠나 싶다. 아마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조차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두려워하며 우는 모습도 감추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감각이 넘치는 사진과 맛깔스러운 글에 빠져 단숨에 읽었다. 파스타 이름이 그처럼 다양한 줄도 처음 알았다. 면을 삶아서 왜 물에 헹구지 않는지, 그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뇨끼와 라비올리를 꼭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