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말을 하다 갑자기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당황스러운 적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서 허무해지기도 하지요. 머릿속에서는 모양과 색과 느낌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멈칫거릴 때 누군가 대신 잃어버린 단어를 이야기 해주면 정말 고마워요. 엘리즈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사용했던 단어들과 이별하고 있는 중이에요. 열쇠나 요구르트같은 사소한 단어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이름까지 바로 생각해내지 못해요. 엘리즈를 부를 때 이모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요. 할머니가 깜빡하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즈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가 어린 소녀지만 할머니에게 찾아오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할머니가 잃어버린 단어를 찾아드리겠다고 그물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자꾸 잃어버리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할머니지만 엘리즈는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할머니가 "그거! 그거~" 하면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대신 알아서 눈치로 단어를 찾아 드려요. 그러면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하지요. 할머니도 예전에는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었어요. 긴 단어들까지요. 그런데 그 많은 단어들이 할머니의 입술을 떠나고 말았어요. 엘리즈는 그걸 마법에 걸렸다고 표현하네요. 할머니도 언젠가는 이쁜 소녀인 적도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모습은 변하고 있지만, 할머니는 결코 단어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하네요. 할머니의 입술에 있던 단어들이 엘리즈에게 간 거라고 합니다. 정말 이쁜 표현이에요. 이쁘고 앙증맞은 그림들 속에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어요. 사람이 늙는다는 게 꼭 슬픈 건 아니겠지만, 뭔가를 잃어버리고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건 분명 낯선 일이지요. 하지만 우울한 주제를 밝고 긍정적인 느낌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이다운 순수함과 기특함을 간직한 소녀의 시각에서 본 할머니의 모습은 절대 슬퍼보이지 않았어요. 나이 들면서 잃어가는 것들이 많아진다 해도 이쁜 손녀와 함께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거예요. 70년이 지나도 닳지 않는 원피스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요. 나의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요. 밝고 귀여운 그림이 돋보이는 그림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