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일을 겪으며 살게 된다면. 그곳이 정글이라면. 프랑스에서의 삶을 접고 태국의 정글에 와 살게 된 미카의 가족. 누나, 동생, 아빠 모두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숲생활을 시작한다. 부자인 삼촌에게 막대한 정글을 물려받은 미카. 물론 포기하고 현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며 살았을 듯. 미카의 가족은 편안하고 익숙한 삶을 던져 버리고 거칠고 투박한 땅에 발을 디디며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간다. 각자의 역할을 찾아 부딪히고 실망하고 도전하며 하루 하루 보낸다. 입양아라는 열등의식을 갖고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이 싸웠던 미카가 태어난 나라로 돌아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저물어가는 정글의 분위기를 다시 살려내서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불굴의 의지가 엿보인다. 환경과 함께 내면도 변한다.외모에 불만을 갖고 늘 투덜거렸던 누나 샬리는 코끼리 조련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동생 바르 역시 원숭이들과의 우정을 쌓으며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 배운다. 아빠 역시 정글에서 뿌리를 내리려 한다. 자신을 떳떳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미카는 언제나 괴로웠다. 어딜 가도 제자리가 아닌 듯 낯설었고 적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내적으로. 백인 '파랑'의 삶을 따라가고자 했지만 그에게는 뿌리를 잃지않은 태국 사람의 피가 끓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확인한다. 진지한 정글맨 렉의 도움으로 말이다. 렉은 그에게 새생명이 몸 안에서 돋아나는 경험을 선물한다. 5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과 밝혀지지 않은 의문들, 묘한 인물과 미스테리한 정글 속 분위기.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와 오해, 그리고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흥미진진 해진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혹시 정글 안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일까. 단서가 될 만한 일은 무엇인지. 미카가 끝까지 무사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된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 허무함이 밀려온다. 내용에 실망했다는 게 아니고 인생살이가 참 허망하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가끔 오해와 갈등이 끼어들기는 하나 자신의 생각이 옳고 진실은 내 안에 있다고 믿는다.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믿음인지 알게 된다. 진실을 숨겨주고 사랑을 베풀며 사람은 또 다른 사는 맛을 찾는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길이라고 한다. 렉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사뭇 신비감이 느껴진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사는 세상이라. 섬뜩하다. 하지만 미카를 보면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그가 의젓해 보인다. 저절로 나이가 많아진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 한다면 성장도 없다. 미카의 선택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책을 덮으며 느낀 건, 참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정글에서의 새로운 삶이 하나씩 제자리를 맞추어 가면서 그들의 행복도 쑥쑥 자랄 것이다. 두려움과 실망스러움이 따라올지라도 그들 가족이 함께 있기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듯.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그 일 속에 빠져드는 게 어쩌면 사람들의 꿈꾸는 삶이 아닐까. 미카는 작은 세계를 박차고 깨고 일어섰기에 꿈을 향해 성큼 다가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