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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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모름지기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뛰어넘어  저 먼 세계, 달나라 혹은 우주 밖의 알 수 없는 세계까지 넘나들 수 있을 만큼 독특하고 새로워야 한다. 한쪽 발은 일상속에 잘 묻어두고 나머지 한쪽 발이 더 멀리 갈수록, 더 많이 튕겨져 나갈수록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작가라고 인정하고 그의 글에 열광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역시 소설의 범위를 한껏 넓혀주고,때로는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재주를 선보이기도 하는 재미있는 작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을 작년에 먼저 읽어 보았는데, 역시...독특하다. 빈 페이지를 늘어놓기도 하고, 글씨를 겹쳐서 페이지 가득 채워두기도 하고..주인공 오스카의 엉뚱한 행적 뒤에 숨어있는 무시무시한 아픔을 함께 누리면서 점점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그러면서 함께 지난 역사와 사건에 대해 떠올려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다. 

 

그의 글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장이 어렵거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분하다는 건 아니다. 빽빽하고 뭔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새로움이 녹아들어 있는, 결국은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넣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분위기의 글이다. 그리고 유머스럽다. 능청스러움이라고 해야하나.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읽다보면 작가가 혹시 장난꾸러기 소년이 아닐까, 살짝 의심스럽기도 하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믿을 수 없게 상상력이 풍부한 장난꾸러기!

 

특히 청년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쓰는 편지를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다. 모자란 인간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우스꽝스러운 표현들이 널려있다. 영어에 서툰 알렉스가 쓴 편지라서 그렇다. 그걸 그대로 분위기 살려 번역해 놓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미국문화와 우크라이나 문화가 대비되면서 벌어지는 장면들, 대화들도 은근히 재미있다.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 가끔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언뜻보면 알렉스가 미국 문화를 동경하는 듯보이지만,한편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오데사도 무척 사랑하는 듯.

 

'주인공'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실제로 주인공같지는 않은 조너선 (작가의 이름과 똑같다)은 2차 세계대전 중 할아버지를 나치의 만행으로부터 구해준 소녀의 존재를 찾아 길을 떠난다.  불확실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유대인 학살사건이 벌어진 '트라킴브로드'라는 장소를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온다. 통역을 맡아줄 알렉스와 운전을 해줄 알렉스의 할아버지, 그리고 아무짝에서 쓸모없을 것만 같은 개, 하지만 없으면 허전할 게 분명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 이렇게 세 명, 아니...세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개가 미지의 그곳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소설은 과거와 현실과 가짜의 세계가  뒤죽박죽 등장한다.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 알렉스 일행이 트라킴브로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야기, 그리고 알쏭달쏭한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알쏭달쏭한 이야기는 소설 속 조너선이 쓴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분위기가 묘하고 꽤 흥미진진하다. 죽음과 배신과 사랑이 종교와 버무려진 이야기이다.

 

좌충우돌, 그들이 여행이 계속되고 사진 속 소녀, 오거스틴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소설의 재미가 더해진다. 솔직히 이 책은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실타래가 엉킨 듯, 뒤죽박죽,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색다르다. 우선, 뿌듯하고 감동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잘못된 역사로 인해 벌어지는 슬픈 비극을 소재로 삼은 책들이 무수하게 쏟아지는 요즘, 역사의 진실을 알아가며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게 이끄는 글들은 그리 흔치 않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두 개의 소설 모두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되짚어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어렴풋하고 몽롱하면서도 사람의 심장을 적셔주는 진한 감동을 전한다.

 

마치 미로찾기를 한 기분이 들 만큼 쉽지 않게 읽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오래 오래 여운을 남긴다.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에게 쏟아지는모든 찬사들이 헛된 것이 아님을 분명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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