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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존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일본 국민 스포츠인 ‘장기’를 소재로 한 판타지 호러 작품. 프로 장기 기사를 꿈꾸던 쓰카다는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다크 존’이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청군이라는 적과 싸움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물론 다크 존은 실존하는 군함도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실제 세계와는 다릅니다. 태양은 없고, 오로지 달만 3시간 뜨고 지는 이상한 세계. 그곳에서 쓰카다와 17명의 병사는 장기의 말로서 적군과 싸우게 됩니다. 인간이 아닌 괴물로서 말이죠(히드라, 메두사, 키클롭스, 골렘, 탈로스, 샐러맨더 등).
우리나라에서 하는 장기와는 내용과 규칙이 다릅니다. 뺏은 말을 다시 사용할 수도 있고, 승격도 가능합니다(작품 속에서는 능력이 더 강해짐). 7번의 대국 중에서 4번을 먼저 이기는 팀이 승리. 지는 팀은 존재 소멸. 가상 세계(?)이기는 하지만 죽을 때는 고통을 살짝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대국에 이어지는 단장(짧은 이야기)을 통해서 주인공 쓰카다의 실제 삶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과연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은 싸움의 목적은 무엇일까?(꿈인 것일까? 그렇다면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가상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의 쓰카다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다크 존과 실제 현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독특하게도 장기라는 스포츠를 판타지/호러에 접목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 장기를 몰라도 소설을 읽는데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게임을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조금 어색하거나 거부감이 들 독자들도 분명 있겠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확실합니다. 프로 장기 기사를 꿈꾸는 쓰카다. 일본 장기 시스템은 프로가 되기에는 매우 힘든 구조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기만을 바라보며 프로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 그러나 만약 프로가 되지 못한다면(낙오 된다면)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비단 쓰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위해 고군분투를 하죠. 쓰카다와 그 주변 인물들.
다크 존에서는 서로 죽이기 위해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지만, 현실의 그들을 보노라면 슬퍼집니다. 꿈의 상실. 현실에서의 실패. 도피. 지옥과도 같은 다크 존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만 있다며 기꺼이 장기의 말(도구)이 되어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 아이러니함. 우울. 이 작품은 굉장히 우울한 작품입니다. 쓰카다는 대국이 끝났음에도 다시 다크 존으로 가서 끝이 없는 싸움을 계속 하고 싶어 합니다. 현실에서는 더 이상의 행복이 없으니까요. 기시 유스케는 항상 작품 속에서 희망을 말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희망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네요. 취향 탓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판타지 호러를 좋아하는지라 즐겁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