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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표지랑 제목이 미스터리 소설치고는 너무 심심한 거 아니야?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에 대한 첫 인상은 바로 이랬습니다. 요즘 취향이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본격 미스터리로 넘어 갔고, 또한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살해 동기나 이유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그런 이야기에 조금 지쳐있어서 처음에는 그냥 패스하려고 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소문이나 평들이 좋더군요. 또한 아버지가 아내와 딸을 죽인 이유인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라는 문구에 너무 끌렸습니다. 책 놓을 공간이 없다고 사람을, 그것도 사랑하는 가족을 죽일 수가 있을까? 살해 동기가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닌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가….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처럼 논픽션 형식의 소설입니다. 소설가이자 화자인 ‘나’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인 용의자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추적하는 작품입니다. 일류 대학, 일류 회사, 착한 아내와 예쁜 딸, 회사에서도 주변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범죄 사실 당연히 없고, 동네 주민들도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는 그런 엘리트 은행 직원이 강에서 아내와 딸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왜? 도대체 왜? 경찰뿐만 아니라 언론, 네티즌, 주변 지인들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일가족 몰살사건.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뜬금없는 사건도 아닙니다.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는 뉴스는 심심찮게 보이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동기가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 가족을 죽이다니… 심문 과정에서의 경찰의 압박을 의심할 수밖에 없죠.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경찰이 지금 장난하나? 그러나 사실입니다. 용의자가 직접 변호사를 통해서 말을 했거든요. 그렇다면 이 용의자가 장난 하는 건가? 흔히들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그런 얘기들을 하죠. 즉, 이 살인범은 정신병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야 사람들은 편합니다.
이 사건을 접한(작가의 화자인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살해 동기가 없으면 불안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다니, 너무 무섭잖아요? 불확실한 원인 앞에서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쉬운 결론을 내립니다. 미친놈이다. 정신병자다. 그래도 사실 께름칙합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너 A라는 사람 알아?”, “어 나 절친이야. 그 A에 대한 것은 다 알아.” 정말 다 알까요? 자신의 아내와 남편, 심지어 부모나 자식 정말 다 알고 있을까요?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개인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요? 그런 인간 심리의 불안감을 비현실적인 살해 동기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펼쳐 보입니다.
아주 영리합니다. 그리고 독특합니다. 작가의 한 마디처럼 정말 사회파 미스터리의 마지막까지 간 느낌입니다. 더 가면 미스터리라고 부를 수 없는 그 지점까지 말이죠. 이런 식의 결말일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가볍게 제 상식을 뛰어넘더군요. 당혹스러움도 잠깐,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발상의 전환이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메시지가 너무 좋습니다. 미스터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점뿐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 형식에 매우 잘 맞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기존의 미스터리를 답습한 미스터리가 아닌 뭔가 새로운 형식의 그런 미스터리를 만났네요. 매우 반가운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