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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아야츠지 유키토. 1960년생. 현재 나이 53세. 1987년 <십각관의 살인>이라는 본격 미스터리 작품으로 데뷔. 데뷔 25년차의 중견 작가. 서술이 길었네요. 나이나 활동 기간을 생각하면 사실 <기면관의 살인>이라는 본격 미스터리를 쓰기는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아요. 초심으로 돌아간 이런 작품은 잘 써도 본전, 못 쓰면 욕만 먹기 딱 좋으니까요. 우리나라 최고의 걸그룹 소녀시대가 이번에 4집을 발표합니다. 그런 소녀시대가 <GEE>나 <Kissing You> 같은 어린 소녀취향의 타이틀곡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 작품이나 노래를 원하는 팬들은 많으나, 작가나 가수로서는 조금 부끄럽고 창피하고 암튼 그렇죠. 그런 면에서 이렇게 초심의 관시리즈로 컴백한 것에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암흑관의 살인>의 고딕 호러 스타일의 관시리즈도 괜찮은데, (작가 후기를 보니) 다른 관시리즈에 비해 평가는 조금 안 좋았나 봅니다.
최신작임에도 배경은 1994년 쯤. 고립된 공간에서의 살인사건의 배경으로 현대는 확실히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핸드폰이라는 기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시골이라도 요즘 핸드폰은 대부분 터지니까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끝. 본격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설정들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민가와 떨어진 저택, 10년만의 폭설, 통신수단 단절(전화 끊김). 밖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곳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되겠죠? 손님으로 초대된 6명과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 3명. 등장인물은 딱 9명(주인은 초반에 죽습니다). 깔끔합니다. 무엇보다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추리작가 시시야 가도미는 당연히 범인이 아니겠죠. 인물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절대 없습니다.
고립된 저택. 목이 없는 시체. 그리고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최초인(작가 스스로 자랑도 하더군요) 가면을 쓴 등장인물의 등장. 얼굴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목과 손의 지문이 없는 시체에서 연상되는 트릭이 하나 있죠. 그러나 작가는 바로 아야츠지 유키토입니다. 그런 뻔한 트릭을 사용하지는 않겠죠. 암튼 이 작품은 낡은 설정(트릭)과 새로운 설정(트릭)들이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낡은 것이라고 절대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여 새롭게 재창조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가면을 쓴 설정 자체도 확실히 독특하고요. 그리고 <암흑관의 살인>에서의 그 고딕 취향도 살짝 묻어나옵니다. 무엇보다 범인 시점의 독백은 아주 긴장감을 줍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하녀 캐릭터는 또 무거운 분위기를 살짝 덜어주고요. 강약조절이 아주 좋습니다. 관시리즈를 포함한 여러 본격 미스터리를 쓴 추리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내공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사실 초기 관시리즈는 유치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십각관의 살인>). 이 작품은 그런 가벼움과 유치함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가볍게 떨쳐냅니다. 관시리즈 중에서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재미 면에서는 아직까지는 <시계관의 살인>이 최고이고요). 트릭이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보여줄 수 있는 트릭들은 다 나오는 것 같더군요. 물론 그 트릭에 속임수도 있지만요. 트릭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느낌입니다. 사건 종결 후에도 소소한 반전이나 아기자기한 재미의 배려까지 정말 본격 팬들을 위한 많은 노력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이 정도면 본격 팬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