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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온다 리쿠가 생각하는 집(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온다 리쿠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화목, 행복, 평안함 등이 떠오르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이번에는 무시무시합니다.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 무시무시한 지옥의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아니 벗어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서운 집. 집과 유령. 그리고 산자. 무언가 행복을 꿈꾸며 사람들이 ‘언덕 위의 집’을 방문합니다. 「우리 집에 잘 오셨어요」하고 집은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채광 좋은 부엌, 흔들의자, 따사로운 햇빛, 평온한 풍경. 어떤 불행이든 이 집을 비켜나갈 것처럼 정말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유령이 등장하는 순간, 평화스러운 풍경은 순식간에 끔찍한 악몽으로 변합니다. 감추고 싶었던, 아니 기억조차 하기 싫었던 끔찍한 진실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가족의 해체와 위기. 과연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습니까? 자식에게 지독한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 그런 부모를 죽인 자식. 이건 최선의 선택인 것일까요? 아니면 절대 용서 받지 못할 짓일까요? 온다 리쿠의 작품치고는 잔인성의 수위가 조금 높습니다. 가족의 해체와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작가의 강한 의지 그런 것이 보이더군요(물론 오버일 수도 있겠지만요). 재미있는 점은 꽤 잔인하고 무서운 내용임에도 작품의 흐르는 분위기는 무척 평온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귓속에 대해 달콤하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 나긋나긋한 말투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 이상하다. 이거 무서운 이야기인데, 왜 자꾸 뭔가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지. 무서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리워해야 하는 걸까?
여기다 쐐기를 박는 온다 리쿠의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 방식.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연작소설입니다. 여러 개의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집이거든요.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도 시간 순이 아닙니다. 뒤죽박죽. 시간을 훌쩍 뛰어넘기도 합니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가 되고, 현재의 이야기는 미래의 불안한 사건을 암시(사건의 진실)하기도 합니다. 지루할 듯한 이야기를 재치 있는 구성으로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궁금하거든요. 소년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야기는 끝입니다. 뭐지? 다른 이야기에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앞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궁금증이 살짝 해소가 됩니다. 암튼 이런 이야기 구성은 온다 리쿠가 근래 들어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 같은데, 살짝 재미가 들렸나 봅니다. 도대체 어떤 재미일까? 궁금한 분들을 위해 하나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살짝 남깁니다.
* 아래는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에 수록된 단편 「놈들은 밤에 기어 온다」에 대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야기의 완전한 재미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분들은 읽지 말아주세요.
「놈들은 밤에 기어 온다」는 할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손자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유령의 집’에서 보았던 ‘기어 다니는 놈’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문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이 작품에 실린 모든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앞의 이야기 「내 마음에 드는 사랑스러운 너」의 주인공 소년과 동급생입니다. 중학생 시절 이야기이니까 먼 미래의 이야기겠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 줍니다. 여기서 반전. ‘기어 다니는 놈’은 유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깜짝 놀랍니다. 아니 무섭습니다(과거의 이야기). 그런데 어찌 할아버지는 이렇게 달콤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다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반전. 현실의 끔찍한 공포.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모호한 결말 또는 열린 결말. 이 소설에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독자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산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죽은 사람일 수도 있겠죠. 지금 현재는 과거와 미래이기도 하고 이 세상과 저세상이기도 하니까요(p.211). 그렇다고 작가가 ‘언덕 위의 집’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모호하게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나름 논리적입니다. 또한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이세상과 저세상, 과거와 미래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면 말이죠. 제 설명도 무척 뒤죽박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