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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달을 쫓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여행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떠날 때마다 주어진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자기가 계획한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소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주역을 맡아야 한다. 여행 중에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역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객연조차 여의치 않은 나이니 그것도 당연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우울은 여행 중의 자신을 연기해야 하는 불안, 여행의 허구 속에서 큰 역을 맡아야 하는 중책에 대한 우울인 것이다. (p.347)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가봤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누구도 여행을 가면서 위의 시즈카처럼 생각은 하지 않겠죠. 물론 위의 글을 읽으면 ‘아하!’하고 깨닫게 됩니다. 즐거운 여행 이면에는 ‘저런 불안감과 우울감도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누구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죠. 왕따처럼 혼자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지는 않겠죠. 여행이라는 이야기 속에 누구나 당당하게 주연이 되고 싶죠. 아니 조연이라도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겠죠. 여행은, 긴 삶의 작은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고 싶듯이 여행에서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죠.
온다 리쿠의 이번 작품에는 여행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밀과 거짓, 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딱 온다 리쿠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비일상적인 일상, 마치 꿈처럼, 여행이 끝나면 이야기도 끝이 나고,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그래서 여행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 나라와 아스카를 여행하는 그런 단순한 여행 에세이 비슷한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죠.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 불리는 작가답게 이야기에는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시즈카는 이복 오빠인 겐고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겐고의 여자 친구인 유카리에게 듣고 그를 찾으러 나라와 아스타로 여행을 떠납니다. 왜? 겐고는 행방불명이 되었을까? 그러한 의문점을 쫓다 보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비밀과 거짓, 그리고 미스터리. 미스터리의 미스터리는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수수께끼는 점점 더 커집니다. 과연 이들의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남편과 헤어진 시즈카에게는 어떤 끝이? 시즈카의 이복 남매인 겐고에는 어떤 끝이? 그리고 겐고에게 버림받은 유카리에게는 어떤 끝이? 시즈카와 겐고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겐고는 왜 유카리와 헤어졌을까? 물론 이러한 비밀과 진실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또는 감추고 싶은 비밀은, 모호한 관계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모호한 이야기로 가득한 (절대)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모든 사건은 해결이 됩니다. 이야기도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새로운 여행,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되려 하고 있다.’ p.364).
반전이 있습니다. 그런 반전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이들의 여행 속에, 이야기 속에서 모호하게 남아 있던 비밀과 수수께끼들이 마지막 반전에 의해서 풀리는데, 개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전이야말로 정말 현실성 있는 반전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의 마음. 그것만큼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한 것이 있겠습니까?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테고, 다시 시작해야겠죠. 마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분들을 위한 치유의 여행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