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오른손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지음, 정태원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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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갈색 머리에 붉은 눈, 찢어진 귀, 개의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이, 코르크스크루처럼 뒤틀린 다리, 잘린 것처럼 작은 키의 부랑자’ 살인을 당당하게 저지르고도 유유히 사라진 살인자의 모습입니다. B급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살인마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요즘 대세는 화이트칼라의 지적인 모습의 살인마이지만, 영화『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의 단순 무식하게 전기톱을 휘두르는 그런 살인마도 여전히 섬뜩하죠. ‘퍼즐 미스터리’라는 설명을 들은 후에 읽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이거 추리소설 맞아? 싶을 정도로 기이하고 무서웠습니다. 사람을 죽인 살인마가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공포소설인가? 설마 살인마가 귀신이나 유령은 아니겠지. 혼자 열심히 생각을 하며 읽습니다. 이러다보니 자연적으로 결말에 대해서도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의사인 해리 리들의 수기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시간이 뒤죽박죽입니다. 과거와 과거의 더 과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가 어떤 예고도 없이 마구 뒤섞여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악마를 연상시키는 살인마는 갑자기 사라지고, 주변 인물들의 증언도 뭔가 이상하며, 경찰들의 수사도 미궁 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빠져나가고 싶지만 더 깊은 어둠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과 분위기의 추리소설(참고로 이 소설은 1940년대에 발표된 고전입니다)은 그 어디에서도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이 잠깐 생각나기도 했는데, 다릅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 존 딕슨 카가 만나면 이런 작품이 나올까요? 현실이 아닌 악몽을 꾸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악몽은 꿈이잖아요. 꿈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어도 상관없잖아요? 그렇다면 이건 정말 악몽일까요?

  아니죠. 이 소설은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2위, 미국 추리 작가들이 뽑은 역대 추리소설 베스트 5위에 뽑힌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이야기의 3분의 2지점을 지나면서부터 퍼즐 미스터리로서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니, 유령 아니야? 인간이라면 절대 사라질 수가 없어. 과연 살인마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리고 죽은 시체의 오른손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살인마는 사라졌는데, 왜 연쇄살인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요? 의심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그리고 형사도 탐정도 아닌 평범한 주인공을 따라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들.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 모든 사건은 유령의 농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트릭이나 반전이 아주 참신한 것은 아닙니다(고전이니까요. 이제는 익숙한 것들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이 소설은 트릭이나 반전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 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악몽과 미스터리의 환상적인 만남’이라는 표현은 너무 진부할까요? 논리도 상식도 없을 것 같은 악몽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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