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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상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평점 :
“술에 취하고 권력과 무정부에 취한 짐승들. 그들을 취하게 한 건 또 있었다. 지금까지 붙여진 이름은 없지만,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해왔던 것.
망각.
그게 전부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온갖 멋들어진 이름을 갖다 붙였다. 의상, 의무, 목표. 하지만 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오직 본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본능은 분노를 원했고 강간과 파괴를 원했다. 능력이 닿는 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유는 오직 그들에게 파괴의 힘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최근 읽은 소설 중 단연 압권. 「정의란 무엇인가」의 소설판이다.’) 때문에 더 유명해진 데니스 루헤인의 신간입니다. 노회찬 씨가 추천한 책이라서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살인자들의 섬》의 원작소설의 작가이기도 하거든요. 이 소설은 「살인자들의 섬」보다는 「미스틱 리버」에 좀 더 가깝네요. 대중적인 재미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서라도 해도 될 정도로 1919년 미국의 보스턴 경찰 파업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작품은 추리가 아닌 역사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데니스 루헤인은 글을 무척 잘 쓰는 작가입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을 아주 재미있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경찰 파업이 극에 다할 때의 그 조마조마함은 정말 압권입니다. 1919년 미국 보스턴의 경찰 파업? 고리타분한 남의 나라 이야기? 이 소설은 읽고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 독자는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소설 속 ‘노동 파업’이 시사하는 바는 무척 큽니다. 역사의 숙명적인 순환 앞에서 체념하기보다는 투쟁으로서 바꾸어야 한다는 그런 힘을 주는 작품입니다. 진보 정치인 노회찬 씨가 추천한 이유가 있습니다. 썩어빠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싶어요(물론 약간의 지루함은 견뎌야 하겠지만요. 장르적인 재미는 조금 배제를 했거든요).